시인이 풀어쓴 ‘소나무문화사’… 온갖 기록과 생태를 종합, 곳곳의 사진도 볼거리
새 생명이 태내에 잉태되면 어머니는 솔숲에 정좌를 하고 솔바람을 온몸으로 쐬는 솔바람 태교로 아기를 맞았다. 열달을 채운 뒤 소나무로 지은 집에 아기가 태어나고, 부모는 푸른 생솔가지를 금줄에 꽂아 잡귀를 막았다. 산모의 첫 국밥에는 마른 솔잎을 띄웠고, 아기가 태어난 지 사흘째인 삼날에는 소나무로 삼신할미에게 장수를 빌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봄되면 물오른 송기를 갉아먹으며 군것질을 대신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소나무 껍질로 허기를 잊었다. 그렇게 소나무와 함께 살아가다 인생이 다해 흙으로 돌아갈 때 주검은 소나무관에 담겨 솔숲에 묻히게 마련이었다. 떠나보내는 이들는 떠난 이의 무덤가에 동그랗게 소나무를 심어 그의 마지막 안식처를 꾸몄다.
안 쓰이는 데가 없는 나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나무처럼 친숙한 나무가 또 있을까. 소나무가 없는 산의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 땅에 소나무숲이 우거지기 시작한 것은 3천여년 전. 한반도에 우리 민족이 터를 잡고 살아가기 시작한 시절부터 소나무는 이 땅에 사람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마치 공기처럼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동반자였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뭇나무 가운데에서 소나무를 ‘장(長)나무’라고 부르며 으뜸으로 쳤다.
시인 정동주씨는 이처럼 소나무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로, 우리나라 사람을 ‘소나무 사람’이라고 부른다. 스스로도 경남 사천 자신의 집에 200여 그루의 소나무들을 직접 구해 심었을 만큼 그는 소나무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나라 소나무 문화를 살피고 모아 한권의 책 <소나무>(거름 펴냄/ 9800원/ 02-702-1316)로 펴냈다. 나라 꼭대기 백두산 금강송부터 남쪽 끝 제주의 곰솔까지, 사람들이 안녕을 비는 신앙의 대상인 당산나무로서의 소나무부터 추사 김정희가 지조의 상징으로 그린 <세한도>의 소나무까지, 소나무와 관련된 모든 기록과 생태를 종합한 ‘소나무문화사’와도 같은 책이다. 사진작가 윤병삼씨가 곳곳을 누비며 렌즈에 담은 온갖 소나무 사진들도 시원한 볼거리로 등장해 책 ‘보는’ 맛을 더해준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소나무와 관계를 맺고 소나무를 이용해왔는지, 소나무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구수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첨단의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 책이 들려주는 소나무 이야기는 너무나 생소할 수도 있다. ‘보릿고개’와 ‘초근목피’란 낱말을 들으며 자랐던 윗세대들에도 이제는 아련한 향수처럼 가물한 기억의 한 자락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잊혀진 이야기들은 막연히 ‘없이 살던 시절’의 이야기를 뛰어넘는 재미와 교훈이 있다. 도무지 버릴 구석이 없는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하기 그지 없는 소나무의 쓰임새만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책은 술술 쉽게 뒷장을 넘기게 만든다. 다른 어떤 나무보다도 소나무는 쓰임새가 많은 나무다. 우선 송진이 나무가 썩는 것을 막아주고 비틀림이 적기 때문에 최상급 목재로 애용돼왔다.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봉정사 극락전도 소나무집이고, 조선 궁궐은 아예 소나무로만 짓는 법도가 있었을 정도였다. 조선 왕조는 소나무를 함부로 베는 이를 엄하게 처벌했고 실제 <경국대전>에 소나무의 보호와 관리규정을 집어넣기도 했다. 소나무는 또한 좋은 약재이자 식량이었다. 소나무 속껍질은 달짝지근 시원한 것이 식량으로도 충분했고, 솔가루를 물에 타 밥을 짓기도 했다. 헛배부른 사람들에게는 송화산을 꿀물에 타서 먹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옛 시조에서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달 돌아온다”던 솔불, 송나무 옹이에 엉겨붙은 송진덩어리인 관솔은 소나무 많은 우리나라에는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다 잘 꺼지지도 않아 들기름불 살 돈 없는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조명수단이었다.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인 송연은 먹을 만드는 데 더없이 알맞아 이것으로 만든 송연묵은 조선시대 중국에 수출할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가 이처럼 소나무의 뛰어난 쓰임새와 더불어 강조하는 바는 소나무에 배어 있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사랑이다. 우리나라 땅이름 가운데 소나무 송(松)자가 첫 음절에 들어가는 마을은 모두 600여곳.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나무 사랑은 각별하다. 옛 사람들은 소나무 자체를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소나무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읽었다. 꼿꼿한 선비들이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사랑한 것도 소나무였고, 하늘에서 신이 내리는 푸른 나무로 믿어왔던 것도 소나무였다. 단아하면서 산뜻한 ‘한국의 곡선미’ 역시 소나무의 굽은 모습에서 깨친 미학이라는 정씨의 풀이를 읽다보면 “소나무와 한국인은 일란성 쌍둥이”라는 지은이의 주장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수긍하게 된다. ‘소나무 망국론’은 간교한 술책
지은이가 이런 점에 비춰 특히 강하게 지적하는 부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 뇌리에 남아있는 ‘망국송’, 또는 ‘소나무 망국론’이란 그릇된 인식이다. 일제가 강제로 조선을 합병한 뒤 퍼뜨린 이 이야기들은 일제가 솔의 이미지를 망가뜨려야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의식을 뒤흔들 수 있다고 퍼뜨린 간교한 술책이지만 여전히 남아서 세상을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과 나라가 승했을 때는 솔 역시 청청했고, 사람이 불행했던 시기에는 솔도 함께 병들었다. 소나무가 많이 줄었다해도 아직은 지천에 깔려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제 우리나라 삼림면적에서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30%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은이는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민족 정서와 문화의 상징이란 점을 잊지 말고 소나무를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한국이란 나라가 존재하는 한 누구나 애국가를 부를 때면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의 기상을 느끼고, 가곡 <선구자>를 통해서는 일송정 푸른솔을 맘에 그리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쉽기 때문이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사진/경남 밀양의 소나무숲(사진작가 윤병삼).)
시인 정동주씨는 이처럼 소나무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로, 우리나라 사람을 ‘소나무 사람’이라고 부른다. 스스로도 경남 사천 자신의 집에 200여 그루의 소나무들을 직접 구해 심었을 만큼 그는 소나무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나라 소나무 문화를 살피고 모아 한권의 책 <소나무>(거름 펴냄/ 9800원/ 02-702-1316)로 펴냈다. 나라 꼭대기 백두산 금강송부터 남쪽 끝 제주의 곰솔까지, 사람들이 안녕을 비는 신앙의 대상인 당산나무로서의 소나무부터 추사 김정희가 지조의 상징으로 그린 <세한도>의 소나무까지, 소나무와 관련된 모든 기록과 생태를 종합한 ‘소나무문화사’와도 같은 책이다. 사진작가 윤병삼씨가 곳곳을 누비며 렌즈에 담은 온갖 소나무 사진들도 시원한 볼거리로 등장해 책 ‘보는’ 맛을 더해준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소나무와 관계를 맺고 소나무를 이용해왔는지, 소나무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구수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첨단의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 책이 들려주는 소나무 이야기는 너무나 생소할 수도 있다. ‘보릿고개’와 ‘초근목피’란 낱말을 들으며 자랐던 윗세대들에도 이제는 아련한 향수처럼 가물한 기억의 한 자락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잊혀진 이야기들은 막연히 ‘없이 살던 시절’의 이야기를 뛰어넘는 재미와 교훈이 있다. 도무지 버릴 구석이 없는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하기 그지 없는 소나무의 쓰임새만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책은 술술 쉽게 뒷장을 넘기게 만든다. 다른 어떤 나무보다도 소나무는 쓰임새가 많은 나무다. 우선 송진이 나무가 썩는 것을 막아주고 비틀림이 적기 때문에 최상급 목재로 애용돼왔다.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봉정사 극락전도 소나무집이고, 조선 궁궐은 아예 소나무로만 짓는 법도가 있었을 정도였다. 조선 왕조는 소나무를 함부로 베는 이를 엄하게 처벌했고 실제 <경국대전>에 소나무의 보호와 관리규정을 집어넣기도 했다. 소나무는 또한 좋은 약재이자 식량이었다. 소나무 속껍질은 달짝지근 시원한 것이 식량으로도 충분했고, 솔가루를 물에 타 밥을 짓기도 했다. 헛배부른 사람들에게는 송화산을 꿀물에 타서 먹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옛 시조에서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달 돌아온다”던 솔불, 송나무 옹이에 엉겨붙은 송진덩어리인 관솔은 소나무 많은 우리나라에는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다 잘 꺼지지도 않아 들기름불 살 돈 없는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조명수단이었다.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인 송연은 먹을 만드는 데 더없이 알맞아 이것으로 만든 송연묵은 조선시대 중국에 수출할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가 이처럼 소나무의 뛰어난 쓰임새와 더불어 강조하는 바는 소나무에 배어 있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사랑이다. 우리나라 땅이름 가운데 소나무 송(松)자가 첫 음절에 들어가는 마을은 모두 600여곳.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나무 사랑은 각별하다. 옛 사람들은 소나무 자체를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소나무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읽었다. 꼿꼿한 선비들이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사랑한 것도 소나무였고, 하늘에서 신이 내리는 푸른 나무로 믿어왔던 것도 소나무였다. 단아하면서 산뜻한 ‘한국의 곡선미’ 역시 소나무의 굽은 모습에서 깨친 미학이라는 정씨의 풀이를 읽다보면 “소나무와 한국인은 일란성 쌍둥이”라는 지은이의 주장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수긍하게 된다. ‘소나무 망국론’은 간교한 술책

(사진/소나무는 우리 전통예술에서 가장 주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였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송하취생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