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의 멸망은 ‘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국가 지역 핏줄의 3가지 가운데 2가지의 단절을 가져왔다. 나라는 망해 월나라의 식민지가 됐다. 양쯔강의 뱃길을 중심으로 무역국가로서 번영을 구가하던 수도 오(오늘날의 쑤저우)도 파괴됐다. 역사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월나라 사람들은 오나라에 대한 복수심으로 오나라의 건축물을 철저히 파괴했다. 부차가 세운 고서대도 부서지고, 수도 오도 파괴를 면할 길이 없었다.’ 사마천은 이 파괴 이후의 양상을 ‘오나라의 폐허’(吳墟)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너진 성벽은 과연 여기가 한때 번화하던 오나라 수도였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게 했다. 석양은 핏빛으로 물들었다‘라고 표현한 이도 있다.”
이 참극에서도 3가지 가운데 하나는 가장 확실하게 살아남았다. 핏줄, 바로 오씨라는 성씨다. 그러나 오씨라는 성이 살아남기 위해 치러야 했던 고통은 매우 컸다.
“왕족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전쟁에서 죽거나 포로가 되고 유랑민이 됐다. 부차의 아들인 태자 화와 그 아들도 패망 몇해 전 포로로 붙잡혀 월나라로 끌려갔다. 새로 세워진 태자 우와 고멸 등 왕자들도 월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으며, 다른 왕자 전문은 피살됐다. 또 다른 왕자인 경기와 그 가족은 송나라와 초나라로 달아났다. 그 밖에 많은 왕족들이 월나라의 박해와 노예가 되는 길을 피해 달아나야 했다. …오씨 대부분은 집을 떠나 월나라의 노예가 되거나 월나라 사람 밑의 예속민이 돼야 했다. 월나라 벽지로 강제이주돼 노역을 해야 했던 사람도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나라 멸망 뒤 오씨를 살아남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왕권을 둘러싸고 내부 싸움을 벌였던 왕들과 그 후손이 아니라 양위파 계찰과 그 후손이다. 역사를 다시 보자.
오나라의 초석을 닦은 손책, 손씨 가문은 춘추시대에 망한 오나라를 다시 부활시켜 천하통일을 노린다.
“오나라가 망할 때 계찰의 장손 오복번은 노모와 처 그리고 식솔을 이끌고 도망쳐 동정호 부근으로 갔다(역사서를 보면 계찰은 이전까지는 성이 없이 계찰로 불리다가 오나라 멸망 뒤부터 ‘오계찰’로 표기되는 변화가 일어난다). 지금 호산으로 불리는 무봉산 남쪽에까지 간 그는 월나라 사람들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성과 이름을 감추고 자신의 가운데 이름을 따서 ‘복씨’라고 성을 바꿨다. 그리고 세세손손 그곳에 은거한 채 살았다. 바깥 세상과도 절연한 채 집안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갔다. 맨 처음 남매끼리 결혼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 문중결혼으로 가계를 이어가던 그들은, 그러나 자신들의 조상을 잊지 않았다. …그 가문은 1500여년이나 흐른 남송 때 다시 ‘오씨’라는 성을 되찾는다.
계찰의 둘째아들 오정생 일파는 가장 가문이 융성해진 경우이다. 제나라로 피난한 그는 제나라 공주와 결혼해 아들을 낳은 뒤 ‘나라를 되찾는다’는 결의를 담아 아들 이름을 ‘후번’이라고 짓기도 한다. 오후번은 나중에 노나라의 상국이 되고, 그 아들 오번은 공자의 제자 안회의 제자가 된다. …”
이 계찰의 아들 다섯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오씨 가운데 대종을 이루게 된다. 왕권 다툼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왕들과 그 후손들이 투항 등으로 다른 성씨로 정착하는 등의 변화를 많이 겪은 데 반해 그와 그의 자손은 오씨의 정통으로서 가문을 가장 활발하게 흥성시킨 셈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오씨는 그 뒤 한국과 대만, 일본을 거쳐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왕조가 사라진 이후에도 성씨로 남아 존속하는 사례 가운데 하나로 진(秦)나라의 진씨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조 진나라가 비교적 단명했기에 그 연속성에 대한 관심도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씨의 연원에 대해선 오씨와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구별짓기는 쉽지 않다. 대략 3가지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1. 영(?)성 연원설
2. 희(姬)성 연원설
3. 로마 연원설
영성 연원설은 진시황 진왕조와의 관련성을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경우이다. 영은 원래 진시황의 성이다. 진시황의 이름이 정이었으므로 풀네임이 영정(?政)으로 된다. 이 설은 사마천의 <사기> ‘진본기’(秦本記)의 기술을 근거로 하고 있다.
“주나라 효왕이 섬서성에 살던 목축업자 비자에게 봉읍을 주어 영씨의 제사를 계승하게 하고 이름을 진영(秦?)이라 했다.”
이 진영의 후손이 나중에 진왕이 된다. 그러니까 진나라 멸망 뒤 진나라 왕족의 성씨를 가지고 있던 집단이 진씨라는 성씨로 정체성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진시황의 혈족임을 정확하게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시조쪽은 중원의 한족보다는 주변민족일 가능성도 강력하게 시사한다.
전쟁으로는 왕조를 지킬 수 없었다
희성 연원설은 진씨가 주공 단의 후예로 희성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주공 단의 큰아들 백금이 노나라 노씨의 시조가 되고, 다시 그의 지차 자식 가운데 진읍에 봉해진 자손에서 진씨의 시조가 나왔다는 것이다.
로마 연원설은 매우 독특하다. 한나라 초기 반초의 서역 경략 뒤 로마로부터 사신과 사람이 지속적으로 오가는 등 교류가 활성화됐으며, 서기 4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중국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로마인들이 진씨 성을 갖게 됐다는 주장을 편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서역을 비롯해 유럽쪽에서 중국을 ‘지나’(차이나, 진)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3가지 연원설을 가진 진씨는 어쨌든 한나라 이후 부침을 겪으며 존속 발전해오다가 점차 관중 지방과 중원에서 확장돼 강남, 서천, 요령 등지로 무대를 넓혀갔다고 한다. 그 뒤 서역적 기풍과 세계주의적 분위기가 강하던 당나라 때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안록산의 난 이후 진씨 등 진나라 후손들은 본격적으로 강남으로 진출해 두각을 나타낸다.
그 옛날 진나라는 조나라와 전쟁을 벌여 이긴 뒤 포로 40만명을 죽인 적이 있다. 그 뒤 이번에는 초나라 항우의 군대에 사로잡힌 진나라 병사 20만명은 초나라 멸망의 보복으로 생매장당한다. 이런 피로 피를 씻는 전쟁으로는 어느 왕조도 영원히 자신을 지킬 수는 없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인간이 영원히 지킬 수 없는 국가(왕조) 대신 가문으로 영원에 도전하기 시작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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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지금도 살아있다당나라의 영역을 나타내는 지도. 당나라는 초기는 사회적 번영을 통해, 후기는 인구의 대규모 강남 이주를 통해 성씨의 비약적 발전을 가능했다. 성씨는 역사 발전에 따라 점차 늘어났다. 오씨의 예에서 보듯 역사의 진전에 따라 새로이 지파가 생겨나고 새로운 창성이 이뤄져 늘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사라지는 성씨도 있지만 그보다는 새로 생겨나는 성씨가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예를 보자. 서기 1100년대 무렵 북송 시대에 편찬한 <백가성>(百家姓)에는 438개 성이 수록돼 있다. 그러다가 명나라 때에 이르러 <천가성>(千家姓)에는 총 1968개 성이 실린다. 그 뒤 현대에 이르러 편찬된 <중화성씨대사전>은 중국의 56개 민족의 성이 총 1만1969개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성씨 관련 서적인 <중화고금성씨대사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는 성씨가 총 1만2천개라고 추산한다.
왕조와의 연관성 아래 부침과 흥망을 같이해온 성씨는 오씨나 진씨 이외에도 많다. 일단 춘추전국시대 나라 이름으로 등장한 것들은 거의 모두 성씨로 진화해 생존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춘추전국시대의 주(周)나라, 진(晉)나라, 제(齊)나라, 위(魏)나라, 한(韓)나라, 노(魯)나라, 정(鄭)나라, 채(蔡)나라, 송(宋)나라, 당(唐)나라 등은 다 성씨로 살아남았다.
물론 멸망한 뒤 다시 세워져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룬 나라도 있다. 삼국지 시대를 통일한 사마의 가문 진(晉)나라, 춘추시대 때 사라졌다가 이연 부자에 의해 건국돼 통일을 이룩한 대제국 당나라, 역시 춘추시대 때 사라졌다가 조광윤에 의해 건국돼 당나라 이후의 통일천하를 이룬 송나라 등이 그렇다. 이와 달리 이민족이 세운 나라의 이름은 아무리 통일을 이루는 성과를 올렸어도 성씨로 이어지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몽고족이 세운 원(元)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淸)나라 등이 그렇다. 또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이 대단히 드물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고(高)씨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설이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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