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이 만난 세상]
▣ 겸/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휴대전화 없이 생활한 지 4주가 되어간다. 4주 전 찜통더위를 피해 한강변에 도착했을 때 호주머니, 가방, 몸 구석구석을 다 뒤져봤지만 휴대전화를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 손아귀에 쥐어 있던 그것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와 두고 올 만한 곳을 머릿속으로 추적해보았지만, 휴대전화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때 난 빨리 찾아야겠다는 조급함보다는 그동안 나를 옭아맨 족쇄에서 풀어난 듯, 일순간 가벼운 해방감을 느꼈다.
다음날 변덕스럽게도 난 누군가 나를 급히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휴대전화를 하루빨리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인터넷으로 분실된 휴대전화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그러다 요즘 분실된 휴대전화는 용산에서 밀거래되고 있으며 기계조작을 통해 새롭게 유통되니 되돌려 받기 힘들 것이라는 내용을 접하곤 거의 넋이 나가버렸다. 왠지 나의 전화기를 주운 사람이 다시 돌려줄 가능성은 전연 기대할 수 없어 보였다. ‘아직 할부금도 다 못 냈는데 차라리 누굴 주든지 팔아버릴걸 억울해, 그거 주운 사람 한동안 재수 없을 거다’라며 혼자 불평하고 있을 때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내용인즉, 당시 함께 있던 친구가 내 휴대전화를 돌려받았으니 찾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난 당연히 기뻐해야 했지만 묘한 짜증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심지어 아쉬움마저 들었다. 결국엔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4주째 친구에게 맡겨진 휴대전화를 찾으러 가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
요즘은 기술이 워낙 발달해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동영상을 내려받아 보는 등 수많은 기능이 내장돼 있지만 오직 통화와 문자의 착수신 기능만 수행하는 나의 휴대전화기는 내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과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밀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자 누군가의 방해 없이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요란한 진동소리로 일상을 망치는 사생활 침범자였다. 한번은 친구의 전화기를 가지고 놀다 300명이 넘는 주소록을 보곤 “와, 넌 아는 사람도 참 많다”라고 부러움을 표했더니, 그는 “어느 날 혼자 한강에 갔을 때 누군가와 편안히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전화번호 목록 하나하나 다 뒤져보았지만 그 누구도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아마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있음직하다. 대화하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먼저 연락할 수 없는 상대로부터의 연락을 기대하며 하릴없이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나, 더 이상 나의 주소록에 저장돼 있을 필요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는 나, 하루 종일 거추장스럽게 들고 다녀도 울리지 않는 기계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그것은 자연스레 우리의 일상에 속속 스며든 편리함을 가장한 족쇄 같았다. 그동안 휴대전화기가 부재한 자리는 메일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고, 이젠 수동적으로 그 기계에 무언가 기대하거나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혼자 있고 싶을 때나 누군가와 만나고 있을 때 더 이상 방해받지 않았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시 휴대전화기를 찾게 되면 난 해지할 것이다. 3년 만에 애정결핍증에 걸린 착수신 기계로부터 벗어날 순간이다.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요즘은 기술이 워낙 발달해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동영상을 내려받아 보는 등 수많은 기능이 내장돼 있지만 오직 통화와 문자의 착수신 기능만 수행하는 나의 휴대전화기는 내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과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밀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자 누군가의 방해 없이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요란한 진동소리로 일상을 망치는 사생활 침범자였다. 한번은 친구의 전화기를 가지고 놀다 300명이 넘는 주소록을 보곤 “와, 넌 아는 사람도 참 많다”라고 부러움을 표했더니, 그는 “어느 날 혼자 한강에 갔을 때 누군가와 편안히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전화번호 목록 하나하나 다 뒤져보았지만 그 누구도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아마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있음직하다. 대화하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먼저 연락할 수 없는 상대로부터의 연락을 기대하며 하릴없이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나, 더 이상 나의 주소록에 저장돼 있을 필요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는 나, 하루 종일 거추장스럽게 들고 다녀도 울리지 않는 기계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그것은 자연스레 우리의 일상에 속속 스며든 편리함을 가장한 족쇄 같았다. 그동안 휴대전화기가 부재한 자리는 메일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고, 이젠 수동적으로 그 기계에 무언가 기대하거나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혼자 있고 싶을 때나 누군가와 만나고 있을 때 더 이상 방해받지 않았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시 휴대전화기를 찾게 되면 난 해지할 것이다. 3년 만에 애정결핍증에 걸린 착수신 기계로부터 벗어날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