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패션을 창조하고 철학가와 논쟁하는 남자라면 공유하는 게 낫지 않을까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도덕군자와 매번 사랑에 빠지는 바람둥이 가운데 한 남자를 택해야 한다면 나 같으면 당연히 후자를 고르겠다. 요즘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이병헌 캐릭터를 두고 세 자매를 차례로 정복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마초이즘을 흉보는 여성들이 있는 모양인데, 솔직히 말하면 세 자매로서는 전혀 손해보는 게 없다. 그런 남자는 여성의 쾌락을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여자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미점을 발견해주고, 가장 결핍된 것을 채워준다. 게다가 먼저 이별을 말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상처받을 일도 없다.
요즘 이병헌의 카사노바적 면모를 공부하는 남자들이 부쩍 많아졌다는데 개중에는 심기가 몹시 불편한 남자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이렇게 냉소한다. “전술은 무슨 전술? 그 얼굴에 은색 벤츠와 아담한 빌딩까지 소유하고 있으면 게임 끝난 건데….” 천만의 말씀. 카사노바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평생 동안 122명의 여성들과 애정 행각을 벌인 진짜 카사노바는 그다지 잘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다소 느끼하게 생긴 추남형에 가깝다. 하지만 옷 하나만큼은 정말로 끝내주게 입었다. 패션에 탐닉했던 유행의 선구자로서의 카사노바를 알게 된 건 <감각의 순례자, 카사노바>라는 책을 통해서였는데, 심지어 그는 미적 재능이 뛰어나 스스로 디자인한 의상을 입기도 했다. 때로는 조각천을 연결해서 재미난 옷을 지어 입고 파티에 가기도 했다. 원래 귀족 신분도 아니고 돈도 없었지만 카사노바는 그 시대 어느 누구보다 멋쟁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그 화려한 옷차림이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는 사회적 관습을 훌쩍 넘어 패션에서 자기만의 개성을 찾았던 진짜 댄디였다. 그에게 패션은 자신의 정신적 귀족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었으며, 자존심을 지켜주고 성적인 신호를 보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게다가 카사노바는 단순한 호색한이 아니었다. 유머러스하고 문학, 정치, 경제, 예술, 요리 등 모든 방면에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서 어느 누구를 만나도 재미난 대화가 가능했던 남자다. 한마디로 무척이나 유식한 바람둥이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식사 자리에서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가 볼테르와 ‘맞짱’을 뜰 정도였다. 그는 볼테르의 계몽주의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볼테르가 부르짖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과잉’이라고 몰아붙이고 인간이 세계와 이성적인 교류를 한다는 건 우습다고 말했다는데, 계몽주의 시대에 그렇게 모던하고 쿨한 자기 철학이 있는 남자가 있었다니 정말 놀랍지 않나? 요즘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쿨 카사노바’를 자처하며 연예의 기술을 가르치는 어떤 강사님이 인기라는데, 이 대목에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있겠다.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카사노바 같은 로맨티스트는 가능하면 여러 여자들이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것이야말로 여성들을 위한 진정한 호혜평등의 정신이다. 그러니 그의 자유 의지를 막아선 안 된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런 남자의 날개를 꺾어 혼자만 독점하고 싶다면 방법은 세 가지다. 먼저 변죽만 울리고 끝까지 육체를 허락하지 않는 거다. 두 번째, 화장술과 성형술을 익혀 매번 새로운 여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거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은 한 수 더 뜨는 거다. 그가 한번도 맛보지 못한 금지된 쾌락을 끝도 없이 제공하면서 결코 당신의 여자가 아니라는 암시를 주어 남자의 정복욕을 계속적으로 자극한다. 물론 세 가지 방법 다 엄청나게 피곤하다. 그래서 일이라든가 자아개발 같은 하찮은 일을 도모할 겨를이 없다.

사진/ 올댓시네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