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과 함께 재패니매이션 상륙
등록 : 2000-12-06 00:00 수정 :
올 겨울 애니메이션 극장가는 여느 때보다 다채롭다. <포켓 몬스터> <102 달마시안> 등 아이들을 겨냥한 애니메이션도 있지만 <치킨 런>이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성인들이 봐도 웬만한 실사영화보다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기대되는 것은 일본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다. <…나우시카>는 지난 7월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개방된 이후 본격적인 재패니이션 상륙을 알리는 첫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84년 극장에서 개봉되어 공전의 히트를 치며 시들해진 일본 애니메이션을 순식간에 부흥시켰다. 80년대 국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미야자키의 <미래소년 코난>처럼 핵전쟁으로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가 배경이다. 나우시카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소녀로 썩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자정작용을 발견하고 그 자정작용이 지상을 다시 낙원으로 만들 때까지 인간들의 폭력에서 보호하기 위해 싸운다. 마지막에 지구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는 나우시카는 신화적 암시까지 담아내면서 애니메이션을 아이들의 놀잇감에서 어른들의 연구 텍스트로 승격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작품이다.
<월레스와 그로밋>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아드만사가 다시 흙을 빚어 만든 <치킨 런>은 닭들의 ‘출애굽기’다. 잔인하고 탐욕스런 트위디 여사의 닭농장. 이곳에서 아침에 알을 내놓지 못하는 닭들은 저녁 때 식사 테이블로 직행한다. 하루하루 단두대를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닭의 운명을 거부하는 암탉 진저는 동료들을 설득해 탈출을 해보려고 하지만 언제나 실패로 돌아간다. 달걀 판매로 성이 차지 않는 트위디는 아예 치킨 파이로 돈을 벌기 위해 오븐을 조립하기 시작하고 절망에 찬 진저 일행 앞에 ‘날으는 슈퍼 치킨’ 로키가 등장한다. <…나우시카>처럼 <치킨 런> 역시 가족주의 일색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사뭇 다른 작품이다. 캐릭터의 깜찍함과 실사영화를 방불케 하는 유연한 움직임에서는 디즈니에 못지않지만 일종의 ‘민중봉기’이자 ‘여성해방투쟁사’인 주제는 디즈니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부분이다. 등장하는 80여 마리는 CG가 아닌 흙으로 빚어진 닭으로 CG로는 흉내내지 못할, 부드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개성을 드러낸다. ‘고독한 방랑계(鷄)’이자 교활한 이중첩계인 로키의 목소리는 멜 깁슨이 연기했다.
<102 달마시안>은 96년 실사영화로 개봉된 <101 달마시안>의 속편에 해당하는 영화다. <101 달마시안>을 본 아이들의 요구에 달마시안을 사주었던 부모들이 영화와는 전혀 다른 달마시안의 본성 때문에 고생하면서 이 작품을 비난하기도 했다지만 <102 달마시안>에서 사랑스러운 강아지의 모습에 다시 한번 빤히 속아넘어 갈 듯하다. 전작에서 악녀로 등장했던 크루엘라(글렌 클로즈)가 정신치료를 받고 이번 작품에서는 착한 엘라로 변신했다. 대신 모피 디자이너로 분한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다른 종의 강아지들이나 스스로를 개라고 착각하는 앵무새 등이 합세해 전편보다 다양한 ‘동물 액션’을 선보인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아이들을 가장 흥분시킬 작품은 TV애니메이션을 극장용으로 만든 <포켓 몬스터>일 것이다. 지난해 만든 단편 <피카추의 여름방학>과 장편 <뮤츠의 역습>을 묶어서 상영하게 되는 <포켓 몬스터>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서 그리 높지 못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와 99년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어른들에게도 흥미를 끌 만한 <뮤츠의 역습>에서는 인간의 노예가 되길 거부하는 포케몬 뮤츠가 등장한다. 흉포한 뮤츠는 다른 포케몬을 납치해 자신의 복제 포케몬을 만들고 지우와 피카추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뮤츠의 계획에 맞서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