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이 만난 세상]
▣ 겸/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올여름 나만의 피서법은 일주일에 두번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워터보이즈>를 감상하는 일이다.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드라마로 제작된 드라마판 <워터보이즈>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본 특유의 코믹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물오른 청춘들이 마지막 학창시절 학교 축제에서 수중발레를 공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공부도 수영도 못할뿐더러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주인공, 앞뒤 재지 않는 막무가내 소년, 항상 먹어대기만 하는 뚱보, “남자 수중발레라니”라며 비웃다 결국 합류하게 되는 학생회장, 물에 뜨지도 못하는 맥주병. 수중발레 부원인 5명 모두 어찌 보면 나사 하나 빠진 듯한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아이들이지만, 수중발레라면 학교와 집안의 압박도 입시의 부담도 박차는 열혈청춘들이다.
<워터보이즈>의 가장 큰 미덕은 고정된 성역할을 뒤집어 수중발레에 미친 소년들을 보는 유쾌함이다. 게다가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나를 대신해 물장구치며 노는 매끈한 몸매의 미소년들을 보며 더위를 피하고 시각적 욕구마저 충족할 수 있다. 사실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가 권투가 아닌 발레를 하기까지의 과정에 비하면 <워터보이즈>의 소년들이 여성의 전유물인 수중발레를 하기 위한 난관 중 남성이라는 젠더는 별반 위협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그들의 문제는 학교와 집안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 연애(물론 이성연애!)고 이를 거쳐 성장하는 보편적인 드라마트루기를 지닌 청춘드라마답게 대부분의 갈등은 뜬금없이 해결되고 친구들과의 우정은 돈독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빌리 엘리어트>에 발레를 하려는 빌리를 응원하는 귀여운 게이 프렌드가 있었다면 수중발레를 하려는 그들에게는 존폐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마다 그들을 서포팅하는 게이바의 마담들이 존재한다. 기존의 성 관념에서 벗어난 성적 소수자들이 이들을 서포팅하는 것은 발레와 수중발레가 ‘사내답지 못한 짓’거리라는 은유를 내포한다. 명절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는 나와 동생을 위해 장난감을 사오셨다. 나는 레고, 동생은 마론인형.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사온 레고보다 예쁜 마론인형이 더욱 탐이 나 레고는 제쳐두고 인형의 머리를 다듬고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혔을 만큼 난 인형놀이를 좋아했다. 인형놀이는 내 ‘계집애’ 짓거리의 시작에 불과했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고무줄과 공기였고, 공깃돌을 제외한 축구공, 야구공, 농구공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집을 비우면 엄마의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한 채 밖으로 돌아다녔다. 그땐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지만, 학교를 들어간 뒤부터는 달랐다. 보통 남자아이와는 달리 튀는 존재였던 난 ‘계집애’ 같다는 말을 듣기 싫어 놀이, 행동, 말투 등을 보통 남자아이처럼 흉내내었던 것 같다. 드라마라곤 생전 챙겨본 적이 없는 내가 이다지 <워터보이즈>에 열광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계집애’ 같은 놈으로 불려왔던 치욕(?)을 시종일관 유쾌 상쾌 통쾌하게 웃어대며 가볍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일 듯싶다. 그것은 ‘계집애’ 같은 짓을 부끄러워하는 ‘세상의 바보들’을 향해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쨌든 올여름은 <워터보이즈> 소년들의 발레 레그에 깔깔거리는 재미로 보낼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흥미로운 점은 <빌리 엘리어트>에 발레를 하려는 빌리를 응원하는 귀여운 게이 프렌드가 있었다면 수중발레를 하려는 그들에게는 존폐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마다 그들을 서포팅하는 게이바의 마담들이 존재한다. 기존의 성 관념에서 벗어난 성적 소수자들이 이들을 서포팅하는 것은 발레와 수중발레가 ‘사내답지 못한 짓’거리라는 은유를 내포한다. 명절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는 나와 동생을 위해 장난감을 사오셨다. 나는 레고, 동생은 마론인형.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사온 레고보다 예쁜 마론인형이 더욱 탐이 나 레고는 제쳐두고 인형의 머리를 다듬고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혔을 만큼 난 인형놀이를 좋아했다. 인형놀이는 내 ‘계집애’ 짓거리의 시작에 불과했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고무줄과 공기였고, 공깃돌을 제외한 축구공, 야구공, 농구공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집을 비우면 엄마의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한 채 밖으로 돌아다녔다. 그땐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지만, 학교를 들어간 뒤부터는 달랐다. 보통 남자아이와는 달리 튀는 존재였던 난 ‘계집애’ 같다는 말을 듣기 싫어 놀이, 행동, 말투 등을 보통 남자아이처럼 흉내내었던 것 같다. 드라마라곤 생전 챙겨본 적이 없는 내가 이다지 <워터보이즈>에 열광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계집애’ 같은 놈으로 불려왔던 치욕(?)을 시종일관 유쾌 상쾌 통쾌하게 웃어대며 가볍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일 듯싶다. 그것은 ‘계집애’ 같은 짓을 부끄러워하는 ‘세상의 바보들’을 향해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쨌든 올여름은 <워터보이즈> 소년들의 발레 레그에 깔깔거리는 재미로 보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