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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멍청한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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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8-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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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이 만난 세상]

겸/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한국 사회는 학력과 학벌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돼 부당한 차별을 받아야 하고, 시장경제 체제에 종속된 교육은 서열화된 입시 체제 내에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야기한다. 너무도 지당한 이 말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겠지만, 이젠 흔해빠진 말이라 고등학교 중퇴자인 나에게조차 위와 같은 표현은 너무 나이브하고 때론 입에 발린 말처럼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내게는 효능을 잃어버린 ‘학벌지상주의 나빠’식의 레토릭을 대신해 간결한 한마디로 그 상황을 정리할 만한 말이 있다.

“멍청한 대학생!”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멍청한’의 뒷자리에 사회 구조나 학부모가 아닌 하필 ‘대학생’이 위치했는가이다. 그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나와 함께 비효율적인 교육과 살인적인 사교육 시장을 욕하던 친구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학벌주의라는 거대 담론을 어떻게 체제화하고 합리화하는가를 볼 때, 동어반복적인 비판보다 훨씬 학벌의 살벌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친구들은 또래보다 조금 일찍 사회에 눈을 뜬 만큼 영민하고 누구에게 뒤지지 않게 자기 앞가림도 잘한다.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청소년 시기 학교를 사회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똑똑해 대학도 이른바 명문대로 진학했고, 다들 “나는 진심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간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이 학문하는 지성인 양성 공간이 아닌 권력기관임을 모를 리 없는 그들의 말이 순수하게 해석될 순 없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을 일을 찾아 공부하던 꽉 막힌 중·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이라는 안정된 체제를 사회라는 무자비함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안주했다. 그리고 사교육이 교육의 시장화라고 외치던 그들이 취미 생활을 위한 돈벌이로 학벌을 팔아 과외를 하는 모습을 보며 이젠 멍청이가 다 되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학벌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아는 그 사실 앞에 ‘내가 어쩌란 말인가?’ 바로 이것이 학벌의 진정한 무서움이다.


난 내게 학벌주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대학생이 아니고, 지금은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으므로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수험생의 위치가 된다면 나 또한 오로지 명문대를 지망하며 수능시험이 나의 존재 이유가 될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하긴 쉽지만 가진 것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뿐더러 알고 있는 사실을 실천하기란 힘들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자신이라면 더더욱.

공교롭게도 내 친구들은 대부분 명문대학에 다니거나 졸업했으며, 못해도 수도권이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대학을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 섣불리 얘길 꺼냈다간 비대학생의 피해의식으로 비치거나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반복하는 꼴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자신에겐 미래가 없다며 열등감에 싸여 자퇴를 고민하거나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명문대 친구’들과 지내며 학벌에 대해 입 다물고 있는 나와 주위 사람들을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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