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글 · 사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화단에 울타리를 대신해서 많이 심는 회양목은 언뜻 보면 녹색 이파리만 무성한 나무처럼 보인다. 하지만 클로버 사이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을 때처럼 찬찬히 살펴보면, 이파리들 사이에 부엉이 모양으로 생긴 열매가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회양목이란 나무를 알게 된 게 30년이 넘는데, 그런 열매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안 지는 불과 몇년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이처럼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 투성이다.
그런 예는 많다. 벚나무의 이파리에는 잎자루 부근에 작은 젖꼭지 모양의 돌기가 양쪽으로 달려 있다. 꿀샘이라고 하는데, 벚나무는 여기에서 달콤한 수액을 분비한다. 요즘 한창 붉게 익어가는 주목의 열매는 아주 달콤한데, 그 안에 들어 있는 까만 씨앗에는 독이 있어 먹으면 탈이 난다. 새들은 그것을 알아, 달콤한 과육만 먹고 씨앗은 먹지 않기 때문에 주목은 후손을 퍼뜨릴 수 있다. 바위취의 꽃은 꽃잎 몇개가 먼저 떨어져나간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한 마리 곤충처럼 생긴 그 비대칭의 꽃이 원래의 꽃이다. 그런 식물의 세계가 새롭게 눈에 보일 때마다 나는 엔도르핀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올해 나는 주말농장에 나팔꽃을 심어,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다. 꽃이 피기 전 봉오리(사진)는 위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말아놓은 붓처럼 생겼다. 새벽부터 그것이 풀리면서 꽃이 피는데, 영국인들은 ‘아침의 영광’, 일본인들은 ‘아침의 얼굴’이라고 부를 만큼, 나팔꽃은 눈부시다. 나팔꽃은 덩굴을 뻗어나갈 자리가 없으면 잘 자라지 못한다. 농장에는 1m가 조금 넘는 대나무 4개로 피라미드 모양의 지주를 세워줬다. 그것을 다 감아오르고 나니 덩굴들이 새끼 꼬듯 서로를 꼬아나갈 뿐 더는 이파리를 펼치지 못했다. 집에서 화분에 심은 것도 덩굴을 뻗을 곳이 부족하자, 성장을 멈춰버렸다.
나팔꽃은 어느 방향으로 감아오를까? 나팔꽃을 기준으로, 그러니까 아래 뿌리쪽에서 위를 향해 보면, 시계 방향으로 덩굴이 감아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나팔꽃이 다 그렇다. 나팔꽃의 사촌인 메꽃, 바닷가에서 자라는 갯메꽃도 그렇다. 올 들어 여러 덩굴식물들을 살펴봤는데 박주가리, 들콩, 칡 등 흔히 볼 수 있는 덩굴식물 대부분은 나팔꽃처럼 시계 방향으로 감아오른다. 나팔꽃과 반대 방향으로 감아오르는 것은 환삼덩굴이었다. 모든 나팔꽃이 시계 방향으로 감아오르는 것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욕조의 물을 뺄 때 북반부와 남반구는 반대 방향으로 소용돌이가 생긴다. 그렇다면 혹시 나팔꽃도 남반구에서는 북반구와 반대 방향으로 감아오르는 것은 아닐까? 지난 봄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칠레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이미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틈나는 대로 공원들을 돌며 덩굴식물들을 관찰하다 마침내 새하얀 꽃을 아직 피우고 있는 서양메꽃을 찾아냈다. 떨리는 가슴으로 살펴봤더니 실망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처럼 시계 방향으로 감아오르고 있었다. 들콩도 마찬가지였다. 내 가설은 얼토당토않은 것이었지만, 식물을 관찰하는 일은 늘 즐겁다.

나팔꽃은 어느 방향으로 감아오를까? 나팔꽃을 기준으로, 그러니까 아래 뿌리쪽에서 위를 향해 보면, 시계 방향으로 덩굴이 감아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나팔꽃이 다 그렇다. 나팔꽃의 사촌인 메꽃, 바닷가에서 자라는 갯메꽃도 그렇다. 올 들어 여러 덩굴식물들을 살펴봤는데 박주가리, 들콩, 칡 등 흔히 볼 수 있는 덩굴식물 대부분은 나팔꽃처럼 시계 방향으로 감아오른다. 나팔꽃과 반대 방향으로 감아오르는 것은 환삼덩굴이었다. 모든 나팔꽃이 시계 방향으로 감아오르는 것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욕조의 물을 뺄 때 북반부와 남반구는 반대 방향으로 소용돌이가 생긴다. 그렇다면 혹시 나팔꽃도 남반구에서는 북반구와 반대 방향으로 감아오르는 것은 아닐까? 지난 봄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칠레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이미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틈나는 대로 공원들을 돌며 덩굴식물들을 관찰하다 마침내 새하얀 꽃을 아직 피우고 있는 서양메꽃을 찾아냈다. 떨리는 가슴으로 살펴봤더니 실망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처럼 시계 방향으로 감아오르고 있었다. 들콩도 마찬가지였다. 내 가설은 얼토당토않은 것이었지만, 식물을 관찰하는 일은 늘 즐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