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글 · 사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고향집 뜰엔 많은 꽃이 자랐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어느 집에나 있던 꽃은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분꽃, 족도리꽃 따위였다. 그것들은 일부러 씨앗을 뿌리지 않아도 해마다 그 자리에 다시 나곤 했다. 주로 붉은색 계통의 꽃이 많았던 것은 붉은색이 사악한 귀신을 물리친다는 옛사람들의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채송화나 족도리꽃은 그냥 관상용이지만, 말린 씨앗을 가루내어 분을 만든 분꽃이나 꽃을 말려두었다가 지혈제로 쓴 맨드라미는 다른 쓰임새가 있었다. 봉숭아는 관상용이면서 손톱 단장용이었다.
주말농장은 집안에 뜰을 갖지 못한 도시 사람들이 집 밖에 따로 만든 뜰이다. 그러니 채소만이 아니라 꽃도 함께 가꾸는 게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요즘 농장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봉숭아가 활짝 핀 밭이다. 지나는 사람마다 부러운 눈길로 줄지어선 봉숭아를 바라보곤 한다. 나는 밭에는 심지 않았지만, 지난 봄 마당 있는 동생네 집에 놀러간 길에 봉숭아 모종 5개를 얻어다가 집 옆 빈터에 심어놓았다. 장마 전부터 하나둘 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꽃 모양이 봉황을 닮아 봉선화라고 부른다’는 얘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올해는 내가 아들 녀석 손톱에 직접 봉숭아물을 들여주기로 했다. 봉숭아꽃은 빨강, 분홍, 흰색, 보라 등 여러 색깔이 있다. 하지만 어떤 색깔의 꽃이든 그 안에 들어있는 염료는 모두 붉은색을 낸다. 또 이파리에도 염료가 많이 들어 있으므로 이파리도 꽃과 함께 쓴다. 여기에 백반 또는 소금을 넣는 것은 색이 진하고 고르게 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봉숭아 물을 들일 때 괭이밥 이파리를 함께 찧어 넣었다. 심장 모양의 이파리 세개가 한 자리에 붙어나는 괭이밥은 사람들이 가끔 토끼풀(클로버)로 착각하는 식물로, 봄이면 노란 꽃이 피고 여름이면 작은 오이 모양의 열매가 열린다. 이파리나 열매 모두 시큼한 맛이 난다. 옥살산(수산)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옥살산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는 염색학 전문가들에게도 시원한 설명을 듣기 어려웠다. 울 염색회사인 아즈텍의 박상운 상무는 “동물성 섬유인 모직 염색엔 황산, 초산, 개미산 같은 ‘산’을 촉염제로 쓴다”고 했다. 손톱이나 모직물은 다 같은 단백질이다. 그렇다면 괭이밥의 옥살산도 손톱에 봉숭아 염료가 잘 달라붙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고 생각된다. 어릴 적에는 손톱에 봉숭아 찧은 것을 올려놓은 뒤 아주까리 이파리로 손가락을 감싸고 무명실로 묶었다. 요즘엔 랩으로 감싸고 종이 테이프로 붙이니까 간편해지기는 했는데, 멋은 옛만 못하다. 세시풍속을 모아적은 <동국세시기>에는 음력 4월에 처녀들과 어린아이들이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고 돼 있다. 주책스럽게 나는 올해도 왼손 새끼손가락 손톱을 물들였다. 딴 뜻은 없다. “잡귀야 물렀거라” 하는 것일 뿐. 봉숭아꽃을 따는데,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 씨앗 주머니에 장난스레 손이 간다. 봉숭아의 영어 이름은 ‘touch-me-not’(건드리지 마세요)이다.

예전에는 봉숭아 물을 들일 때 괭이밥 이파리를 함께 찧어 넣었다. 심장 모양의 이파리 세개가 한 자리에 붙어나는 괭이밥은 사람들이 가끔 토끼풀(클로버)로 착각하는 식물로, 봄이면 노란 꽃이 피고 여름이면 작은 오이 모양의 열매가 열린다. 이파리나 열매 모두 시큼한 맛이 난다. 옥살산(수산)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옥살산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는 염색학 전문가들에게도 시원한 설명을 듣기 어려웠다. 울 염색회사인 아즈텍의 박상운 상무는 “동물성 섬유인 모직 염색엔 황산, 초산, 개미산 같은 ‘산’을 촉염제로 쓴다”고 했다. 손톱이나 모직물은 다 같은 단백질이다. 그렇다면 괭이밥의 옥살산도 손톱에 봉숭아 염료가 잘 달라붙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고 생각된다. 어릴 적에는 손톱에 봉숭아 찧은 것을 올려놓은 뒤 아주까리 이파리로 손가락을 감싸고 무명실로 묶었다. 요즘엔 랩으로 감싸고 종이 테이프로 붙이니까 간편해지기는 했는데, 멋은 옛만 못하다. 세시풍속을 모아적은 <동국세시기>에는 음력 4월에 처녀들과 어린아이들이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고 돼 있다. 주책스럽게 나는 올해도 왼손 새끼손가락 손톱을 물들였다. 딴 뜻은 없다. “잡귀야 물렀거라” 하는 것일 뿐. 봉숭아꽃을 따는데,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 씨앗 주머니에 장난스레 손이 간다. 봉숭아의 영어 이름은 ‘touch-me-not’(건드리지 마세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