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그리운 까마중

518
등록 : 2004-07-15 00:00 수정 :

크게 작게

[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글 · 사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여린 이파리만 달려 있는 까마중을 보여주며 “이게 까마중”이라고 설명했을 때, “그래?” 하고 반응하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기가 아주 편하다. 그는 적어도 까마중이란 풀 이름은 들어본 사람인 것이다. 실제로는 “까마중이 뭔데?” 하고 되묻는 사람이 훨씬 많다. 봄 산길에서 만나는 둥굴레나 은방울꽃도 슬쩍 이파리를 들춰 꽃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세상이니, 이상할 것은 없다. 그것이 현실임을 깜박 잊곤 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촌놈인 것이다.

농장의 작물들 사이에 그냥 자라도록 내버려둔 까마중(사진)이 요즘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까마중은 둥글매끈한 까만 열매가 까까머리 스님의 머리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까마중은 흑진주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는 깜장이다. 까마중은 가지과의 식물로, 가지와 비슷한 이파리를 갖고 있다. 꽃 모양도 비슷하다. 가지나 까마중을 아는 사람이라면, 같은 가지과의 미치광이풀도 한번 보면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형제들은 분명 어딘가가 닮았다.


미치광이풀은 독초인데, 나는 가지과의 식물 모두가 독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른들은 가지를 날로 먹으면 입술이 부르튼다고 주의를 주곤 하셨다. “날가지를 먹으면 이가 삭는다”거나, “혓바늘이 돋는다”는 속담은 전국에 퍼져 있다. 그래도 입이 워낙 심심하면 가지를 날로 먹기도 했는데, 실제 입술이 부르튼 적은 한번도 없다. 까마중의 맛은 단맛에 약간 아린 맛이 섞여 있다. 그래도 어릴 적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다가, 혹은 밭둑을 거닐다 까마중을 만나면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군것질거리가 변변찮던 시절의 이야기다. 까마중은 따서 놔두고 먹으면 곧 쪼글쪼글해져 맛이 없어진다. 이파리 시들듯 열매도 시들기 때문이다.

<야생초 편지>를 쓰신 황대권 선생은 까마중을 ‘먹달’이란 이름으로 기억했다. 지역마다 다른 이름이 있겠지만, 내 기억으론 ‘먹떼알’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싶다. 먹은 검다는 뜻이고, 떼알은 홑알에 반대되는 말이다. 까마중은 5~10개씩 송이를 지어 열리니 ‘떼알’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어릴 적에는 오줌을 잘 누지 못하는 사람이 약으로 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동의보감을 열어보니, “피로를 풀어주고 잠을 적게 자게 하며, 열로 부은 것을 치료한다”고 쓰여 있다.

먹떼알처럼 우리가 즐겨먹던 것으로 ‘주머니떼알’이라고 부르던 것이 있었다. 늦여름 고추밭이나 가을 콩밭에서 만날 수 있던 것인데,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애기꽈리’가 정확한 이름인 것 같다. 꽈리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 꽈리보다는 크기가 작다. 또 꽈리는 열매나 열매를 감싼 주머니가 모두 붉지만, 애기꽈리는 익어도 열매나 주머니의 초록색이 연노랑으로 바랠 뿐이다. 주머니에 1개씩 열매가 들어 있는데, 까마중보다는 지름이 2~3배 크다. 예전에는 아주 흔하던 것인데, 벌써 십년 넘게 구경을 못하고 있어 까마중을 만날 때마다 그리워진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