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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원숭이도 추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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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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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8년 영국 런던 앵포르멜 전시회에 출품됐던 원숭이의 추상화)
“도대체 어디까지가 미술이냐.”

현대미술이 점점 과격한 실험과 이론으로 미술의 개념을 바꾸던 절정기는 50∼60년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브 클라인이 있었다. 빈 액자를 그대로 작품으로 전시하기도 했고, 종이에 ‘비물질적 회화 감성대’라고 써서 판매한 뒤 받은 돈을 센강에 던지는 등의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이름을 따 공식 특허를 받은 푸른색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 물감을 알몸의 모델에 바르고 캔버스에 몸도장을 찍는 그림으로 유명했다. 이 작업을 하는 순간에는 자신이 작곡한 <단일음 교향곡>을 곁들여 연주했는데, 이 곡은 연주자가 같은 음만을 10분 동안 연주하고 그뒤 10분 동안은 침묵이 흐르는 곡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클라인이 입에 물감을 머금고 나와 캔버스에 뱉어 사인하는 것으로 작업은 끝난다.

클라인의 ‘기행’에 가까운 새로운 미술 제작 방식들은 워낙이나 독특해서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동시에 현대미술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괴상한 해프닝과 궤변론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어처구니없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영상으로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몬도가네>에 클라인의 이 알몸 페인팅이 등장했을 정도였다. 클라인을 비롯한 이런 괴상한 작가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일군의 현대미술가들은 ‘튀는 행동’만으로 명성을 얻어 미술적 의미 없는 작품을 양산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대중의 불만과 의문은 지금까지도 현대미술에 따라다닌다.

대중이 현대미술의 이러한 난해함과 언어유희적 포장에 반감을 가지게 되면서 현대미술의 허상을 조롱하는 듯한 재미있는 사건들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 57년 벌어진 ‘원숭이 그림’ 사건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런던동물원에서 가장 똑똑한 침팬지에게 붓질하는 법을 가르치고 이 침팬지가 그린 그림을 모아 전시회까지 열었던 일이다. 당시 미술평론가들은 이 전시회가 현대미술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한 모략이라고 공격했지만 이 그림이 현대미술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는 점에서 화제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또다른 해프닝은 미국 피닉스동물원의 코끼리가 그린 그림을 당시 추상표현주의의 최고 스타 작가였던 드 쿠닝이 동물이 그린 그림인 줄 모르고 “독창성이 있고 힘이 넘친다”고 평했던 일이다. 당시 추상표현주의의 권위자였던 제롬 위트킨 역시 “그림이 매우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절제된 힘이 넘치는 우아한 작품이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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