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호아킨 코르테스가 안겨준 천박하고도 종교적인 정서적 오르가슴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다정(多情)도 병(病)이라고, 내가 그를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덮어놓고 안아버려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예술 장르 중에도 그런 것이 있는데, 플라멩코가 그렇다. 나는 그 정처 없는 구슬픈 서정과 미칠 듯한 열정 때문에 플라멩코라면 덮어놓고 좋아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며 천대받던 집시들의 춤과 음악이 바로 플라멩코인데, 이들의 공연을 보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과 슬픔에 매혹되어 내부에서 뭔가 끓어오르면서 온몸이 떨리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한 순간을 ‘두엔데’(duende)라고 부르는데, 어떤 관객들은 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옷을 찢거나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접신의 경지까지 오른다고 한다.
나는 그 두엔데라는 황홀경을 지난 봄 베니스에서 처음 느꼈다. 장동건과 함께 여행 화보를 찍고 있는 중이었는데, 마침 축제 기간이던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에서 본 플라멩코 공연은 9박10일이라는 짧지 않은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심장을 파고드는 구슬픈 플라멩코 음악에 맞추어 몸에 잘 맞는 검정 수트를 입은 남자 댄서가 춤을 췄는데 관객을 압도하는 힘이 굉장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배우로 한창 연구되고 있는 배우 장동건조차도 비를 맞으며 1시간 이상 꼼짝도 못했다. 그는 말했다. “저런 게 진짜 카리스마죠. 다른 여자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있을 때조차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저 남자만 보게 되잖아요.” 그가 그런 말을 하는데,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온몸이 벌벌 떨려서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플라멩코에 ‘뻑’이 가 있는 내가 호아킨 코르테스의 이번 서울 공연을 놓쳤을 리 없다. 게다가 나처럼 남자의 관능미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대단히 미학적인 취미를 가진 여자라면 더욱더 놓칠 수 없는 무대였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18만원이라는 거금이 결코 아깝지 않은 멋진 무대였다. 내 경우 공연 내내 수도 없이 정서적 오르가슴을 느꼈다는 점에서 18만원이라는 화대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그의 춤은 그만큼 충분히 아름답고 역동적이며, 동시에 천박하고 종교적이었다. 그가 순수한 플라멩코 댄서(집시 출신이긴 하지만 스페인 국립 발레단에서 정규 무용 수업을 받았다)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나오미 캠벨 같은 여자랑 스캔들이 나는 할리우드판 유명 인사가 다 됐다는 점에서 두엔데라는 슬픈 황홀경을 맛보기엔 좀 역부족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공연 정점에서 그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검정 스판 팬츠와 코트만 입고 등장해서는 느리게 춤을 출 때 집시 출신 댄서의 깊은 감정이 나의 감각기관으로 흘러들어와 나를 또 울리고 말았다.
다만, 두 가지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하나는 관객들이 나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고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며 충분히 즐기지 못하더라는 것이고(어디 잘 하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팔짱 끼고 보면 솔직히 자기가 낸 공연비만 아깝다!), 두 번째 세종문화회관 마루에 문제가 있어 호아킨 코르테스가 공연 중간 잠깐 나오지 못한 때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 시간 동안 그는 허리에 통증을 느껴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그날 공연을 함께 봤던 내 바람둥이 친구는 술자리에서 이렇게 소리 질렀다. “그런 세계적인 허리가 우리나라에 와서 다쳤다는 사실이 나는 미안하고 쪽팔려 죽겠어. 그런 허리는 우리 모두가 아껴야 할 세계적 유산이란 말이야!”

사진/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