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처음으로 이슬람 암살대의 존재를 전했을 때 유럽인들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전혀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라며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암살대는 지금으로부터 1천년 전쯤 실제로 존재했으며, 모든 것이 진실이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 장로의 이름은 하산 빈 사바로 이란 엘부르즈산맥에 ‘알라무트’라는 성채를 구축해놓고 있었다. 암살 예비군의 이름 아사신은 이제 암살자를 의미하는 ‘assassin’으로 웹스터사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나아가 아사신은 대마를 뜻하는 ‘하시시’가 어원으로서, 암살 예비군들이 실제로 하시시를 코로 마시고 감각이 마비된 상태에서 죽이는 것도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확인되고 있다.
1천년 역사를 헤아리는 이슬람 암살대의 존재는 이제 한 나라 대통령의 암살은 물론 초강대국의 심장부를 겨냥해 대형 테러를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양상으로까지 발전했다. 나아가 컴퓨터로 운영되는 거대 시스템을 겨냥한 하이테크 테러로 최대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데다, 첨단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세계 인류에게 디지털 속도로 그 테러의 목표와 효과를 선전하는 것도 가능한 디지털 하이테크형 테러 시대로 돌입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21세기형 테러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규모와 발상의 세계화
2. 기술적 측면에서 디지털 하이테크화
4. 본격적 전쟁 수행 수단으로 변화
5. 문명전쟁 양상에 따라 이슬람 세력의 전면화
6. 전통적 테러와 하이테크 테러를 수시로 오가는 탄력적인 활용 양상
7. 선전효과의 극대화에 주력
이런 21세기형 테러의 특징을 모두 관철하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오사마 빈 라덴이다(‘오사마’라는 이름은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신뢰하던 한 유능한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002년 9·11 테러로 세상에 확실하게 그 존재를 각인시킨 오사마 빈 라덴은 현재 이라크 전쟁의 후폭풍으로 벌어지는 이라크 반미항전 세력의 테러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권에서 벌어지는 테러의 정신적 대부로 군림하고 있다.
테러를 통한 지하드를 주장하는 오사마 빈 라덴의 전략은 1998년 2월20일 발표된 ‘아잠기구’의 ‘듀아’와 그대로 맥을 같이한다. 아잠기구는 아프가니스탄과 보스니아 지역 이슬람주의 전사들의 모태로서 서구로 이민한 이슬람교도 공동체 안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지주 역할을 해오고 있다. 듀아는 이슬람의 부름에 신자들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기도이자 강론으로서, 전세계 이슬람교도들이 금요기도회에서 이를 낭독한다. 아잠기구의 이 듀아는 서구에 대한 총력적인 지하드가 이슬람주의 지도자들로부터 합법성과 권위를 인정받게 됐다고 선언했다.
9·11 테러는 테러리즘의 규모와 성격을 전지구화 · 하이테크놀로지화 · 무차별화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세상에 선언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오, 알라여! 전세계에 퍼져 있는 중요하고 전략적이고 막강한 영향력을 갖춘 이슬람교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시어, 그것이 컴퓨터 지식이든 금융에 관한 능력이든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 전세계의 적들에게 보복을 가하도록 하소서!”
“오, 알라여! 이 보복을 통해 빈 라덴과 아라비아만 출신의 용감한 전사들이 페르시아만 국가에 있는 외국 군대에 타격을 가할 수 있도록 이끌소서!”
“오, 알라여! 침략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파괴되고 혼란에 빠지게 하시어 그들이 옛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시고, 그들에게 큰 손실을 입혀 걸프전이 무의미함을 느끼도록 하소서!”
테러는 역사적으로 약자가 사용하던 투쟁 형태 중 하나였다. 현재 중동 지역의 이슬람권에서 특히 테러리즘이 극도로 활성화된 이유 역시 역사적인 배경에서 비롯된다. 멀리는 우마이야조와 압바스조의 세속적인 칼리프 권력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투쟁에서부터, 가깝게는 걸프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거대 파워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특히 18세기 이후 서구와의 관계에서 본격적으로 세력 균형의 역전을 경험하면서 이슬람권의 이런 절망적 상황은 거의 2세기 넘게 지속되고 있는데다, 무장력과 국력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지는 양상으로 치닫았던 것이다. 이와 함께 상대적으로 이슬람권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이 진전되지 않아 내부적 모순과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서 잠재적 폭발성을 더욱 높인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의 성직자와 학자, 지식인들은 점차 현실을 변혁하는 길로서 이슬람적 가치관의 급진적 적용과 확산에 몰입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79년 성공한 이란혁명은 이런 이슬람권에 새로운 희망과 복음으로 작용했다. 세속주의와 서구화를 모두 거부하고, 현세에서도 ‘신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논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 암살은 바로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졌다. 실제로 알 지하드는 사다트 암살과 함께 봉기를 일으켜 이집트에 이란 회교공화국과 같은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지상에서 이슬람 대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 테러와 무장봉기, 식량폭동, 여객기 납치 등도 모두 신의 뜻을 지상에서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첨단 기술과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는 이란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동 사태에 개입하고 걸프전쟁을 계기로 이슬람 중심부에 더 깊숙이 진입하는 데 대한 반발이자 대항전쟁의 성격을 띤다. 이런 정치군사적 맥락과 함께 현재 진전되고 있는 세계화와 첨단기술, 매스미디어 등 갖가지 요소가 결합해 복합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테러가 전쟁의 한 수단으로 본격적으로 정착하는 흐름은 대단히 위험하고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점점 빨라지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전쟁 수단으로 변화하는 테러는 인류의 안정적인 평화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을 듯한 기세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과거 기관총과 수류탄 따위로 무장하던 테러리스트들은 이제 발칸포, 대전차로켓포, 대전차미사일, 휴대용 대항미사일, 박격포, 컴퍼지션 시리즈의 플라스틱 폭탄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종래와 달리 집단이 아니라 소수, 그것도 개인이 이런 무기류를 동원해 테러에 나서는 것이 가능한 시대로 돌입했다. 무엇보다 이런 첨단 무기류로 무장한 개인 테러리스트들이 필요에 따라 전통적인 목적테러에 나서거나, 현대적 양상이라 할 수 있는 군중 잠입형 돌발테러를 감행하는 다각-복합-속도 테러의 국면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나아가 핵무기를 비롯해 화학무기, 세균무기 등 다량살상 무기를 테러집단이 입수하고 장악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 상황도 주목해야 한다. 총력전의 관점에서 본다면, 단 한명의 테러리스트가 수십·수백만명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이고 그 선전효과를 한꺼번에 수십억명에게 전파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서구 지지 국가 향한 세균테러도 가능
이슬람 급진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테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봇물 터진 듯 세력을 확산하고 있다. 이 사태는 단순히 누가 현재의 상황에서 승리하느냐의 문제를 넘어섰다. 이슬람권의 미래 방향을 극단론으로 밀고 가는 식으로 이미 결론나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를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급진파의 승리는 중·장기적으로 (그들 내부의 논리를 따른다면) 엄혹한 상황을 극복하고 최후의 승리를 이룩한 대지하드로서 자리매김하게 돼, 이슬람권의 미래 지표 설정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칠 것이 확실하다. 단기적으로는 급진파들은 승리를 위해 그 어떤 수단도, 대상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테러를 무제한적으로 동원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비아랍권-서구세력 지지 국가에 대한 세균무기류의 극악한 테러도 논리적으로나 정황적으로 가능하다. 무서운 시대는 끝내 오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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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가 본 테러리즘마호메트는 적어도 같은 유일신을 신봉하는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를 적대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대 이슬람 급진파의 시각과 전혀 다르다. 마호메트는 어느 의미에선 테러리즘의 ‘피해자’였다고 할 수 있다. 헤지라 원년인 서기 622년 그가 비밀리에 메카를 탈출해 메디나에 이주한 것도 메카 세력의 암살 위협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청부살인자 그룹의 위협도 받았으며, 최종적으로 부족 전체의 암살 결의가 떨어져 있었다. 마호메트가 이슬람을 확산시키면서 무력주의를 채택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때의 무력주의는 전투 또는 전쟁의 개념에 가깝지 ‘무차별 테러’라든가 ‘전쟁 수단으로서 테러’라는 관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는 정식으로 전투를 벌이고 공개적으로 전쟁을 수행했지, 대항 논리로서 암살 등 테러적 행위에 의존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전쟁에서 이긴 뒤에도 과거의 적에 대해 상당한 관용을 베푼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메카를 점령한 뒤 수없이 여러 번 암살자를 고용하고 스스로 마호메트 자신을 노렸던 사프완도 용서했으며, 이슬람교도들의 귀나 코, 혀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춤을 추는 등 끔찍한 이슬람교 탄압에 앞장섰던 힌트라는 여장부도 사면하는 등 숱한 관용을 보여준 것으로 기록돼 있다.
현대 이슬람 급진파들이 극도로 적대시하고 있는 유대교도와 기독교도에 대해 마호메트는 생전에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우선 마호메트는 우상숭배자와 달리 유대교도와 그리스도교도는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메디나의 헌장’에 따르면 유대교도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우리와 동맹하는 유대교도는 우리의 원조나 보호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그들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되고, 그들에게 칼을 드는 자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 살인은 반좌법에 의해 처벌된다.”
마호메트는 그리스도교 국가인 비잔틴제국과 전쟁을 벌이곤 했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인 정책을 유지한 성격이 강하다. 그가 쓴 서한은 그리스도교도의 권리와 의무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그들의 손에 있는 모든 것, 교회, 예배당, 수도원은 그들에게 귀속된다. …그들의 권리, 권한에 어떠한 변경도 가해지지 않는다. 그들이 진지하게 처신하고 그들의 의무에 충실히 행동하는 한, 신과 그 사도의 보호는 보증된다. 그들은 박해에 굴복하지도 않으며, 박해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마호메트는 그리스도교 순교도시인 네주란의 사절단이 메디나에 와서 미사를 올릴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고 요청하자, 메디나의 모스크를 빌려주기도 했다. 마호메트가 현대에 다시 와 이슬람 급진파의 테러를 본다면 대단히 놀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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