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학파가 바라본 질병의 생성·발전·소멸의 역사… 질병은 인간이 규정한다
질병과 인간의 투쟁은 어찌보면 과학의 역사다. 생명을 앗아가고 몸을 황폐화시키는 병마에 인간이 대항하는 방법은 과학보다는 주술이 먼저였고, 점차 이성이 트이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주술은 차차 과학, 즉 의학으로 대체돼왔다.
그러나 과학이 주술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거대한 질병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과학보다는 주술에 매달렸다. 지금 보면 예전의 주술적 치료방법은 사실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상당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런 선택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질병과 그에 대처하는 인간의 행동양식에는 당시 사회의 관념, 지식, 구조가 깊이 얽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질병은 인간세상에서 바라보는 추상적 총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질병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코미디
20세기 아날학파의 대표적 학자들은 그렇게 질병을 해석했다. 이 아날학파의 역사학자들이 의학을 과학의 관점이 아닌 역사학자의 관점으로 기술한 책이 최근 소개됐다. <고통받는 몸의 역사>(지호출판사 펴냄/ 1만5천원/ 02-713-5170)는 자크 르 고프 등 역사학자 20여명이 함께 쓴 질병과 인간의 관계를 역사적 관점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한센병, 페스트, 암 등 인간역사 동안 인간을 위협해온 주요 질병들과 인간의 관계를 이들은 인간이 질병을 규정한다는 분석틀로 풀이한다. 그들의 분석처럼 질병이 언어처럼 인간에 의해 생성, 발전, 소멸한다는 점은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난다. 물론 질병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질병의 실체를 구체화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암이란 병은 히포크라테스가 언급하기도 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랜 병으로 1950년대 초반까지는 다른 질병들에 비해 큰 관심을 못끌었다. 그러다가 의학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이 현대의 난치병으로 남으면서 암은 이제 인류 최대의 공포가 됐다는 점에서 이런 현상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인간은 때때로 마음속으로 질병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두려워한다고 지은이들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질병을 돈버는 기회로 포착하는 잽싼 장삿속이 따라붙기도 한다는 것이다. 책은 읽다보면 역사서가 아니라 웃기기 그지없는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 발전과정의 값비싼 대가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가령 예전 사람들은 페스트의 원인을 쥐에게 돌렸다. 페스트의 온상은 불결한 생활환경이었지만 인간에게 더 손쉬운 공격방법은 쥐였기 때문이다. 한센병(나병)에 대처하는 방법에도 과학적 추론보다는 사회편의적 방법이 우선이었다. 정확한 원인규명 대신, 중세사람들은 한센병이 금욕적이지 못한 생활태도나 기독교를 박해하면 생긴다고 믿고 환자들을 몰아세웠다. 17∼18세기 유럽에서는 또한 막연한 불안감이 한시적인 질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신경과민증상을 치명적인 질병이라고 여기며 ‘바페르’란 이름까지 붙여 소동을 벌인 것이다. 죽음이 있는 한 의사들은 떼돈 번다?
이런 질병 투쟁의 역사 못잖게 재미있는 부분은 엽기적으로 느껴질 만큼 황당한 각종 옛날 치료법 이야기들이다. 한때 유럽의 의사들은 모든 병에 무조건 피를 뽑아 치료하거나 설사약을 처방하기도 했고, 수혈할 때는 양피를 쓰기도 했다. 프랑스 궁정에서는 코피를 흘리면 무조건 피를 뽑았을 정도다. 질병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부의 불순물을 뽑아내야 한다며 피뽑기와 함께 무조건 관장을 하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책은 이런 무지와 맹신에 맞서 과학이 발전하면서 질병과 의학, 인간의 관계가 변화해온 양상을 기술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계속 남는다고 지은이들은 꼬집는다. 바로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의 불안감을 이용하는 탐욕이 존재하는 한 이런 주술들은 또다른 형태로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다소 냉소적으로 “생명이 유한하고 오래 살려는 욕망이 있는 한 의사들은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떼돈을 벌 것”이라고 평한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20세기 아날학파의 대표적 학자들은 그렇게 질병을 해석했다. 이 아날학파의 역사학자들이 의학을 과학의 관점이 아닌 역사학자의 관점으로 기술한 책이 최근 소개됐다. <고통받는 몸의 역사>(지호출판사 펴냄/ 1만5천원/ 02-713-5170)는 자크 르 고프 등 역사학자 20여명이 함께 쓴 질병과 인간의 관계를 역사적 관점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한센병, 페스트, 암 등 인간역사 동안 인간을 위협해온 주요 질병들과 인간의 관계를 이들은 인간이 질병을 규정한다는 분석틀로 풀이한다. 그들의 분석처럼 질병이 언어처럼 인간에 의해 생성, 발전, 소멸한다는 점은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난다. 물론 질병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질병의 실체를 구체화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암이란 병은 히포크라테스가 언급하기도 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랜 병으로 1950년대 초반까지는 다른 질병들에 비해 큰 관심을 못끌었다. 그러다가 의학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이 현대의 난치병으로 남으면서 암은 이제 인류 최대의 공포가 됐다는 점에서 이런 현상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인간은 때때로 마음속으로 질병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두려워한다고 지은이들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질병을 돈버는 기회로 포착하는 잽싼 장삿속이 따라붙기도 한다는 것이다. 책은 읽다보면 역사서가 아니라 웃기기 그지없는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 발전과정의 값비싼 대가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가령 예전 사람들은 페스트의 원인을 쥐에게 돌렸다. 페스트의 온상은 불결한 생활환경이었지만 인간에게 더 손쉬운 공격방법은 쥐였기 때문이다. 한센병(나병)에 대처하는 방법에도 과학적 추론보다는 사회편의적 방법이 우선이었다. 정확한 원인규명 대신, 중세사람들은 한센병이 금욕적이지 못한 생활태도나 기독교를 박해하면 생긴다고 믿고 환자들을 몰아세웠다. 17∼18세기 유럽에서는 또한 막연한 불안감이 한시적인 질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신경과민증상을 치명적인 질병이라고 여기며 ‘바페르’란 이름까지 붙여 소동을 벌인 것이다. 죽음이 있는 한 의사들은 떼돈 번다?

(사진/중세에는 모든 치료에 사혈(피 뽑기)이 이용됐다. 중세 수녀들이 란싯로 사혈을 하는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