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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돈없이 여름별장 갖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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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7-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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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패브릭과 조명, 길거리 물건으로 쉽게 하는 셀프 인테리어 팁 몇 가지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요즘 같은 요지부동의 불황 시대에 나도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돈 안 쓰고도 멋과 풍류를 즐기는 법’에 대해서라면 나도 조금 보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신 있는 건, 돈 안 들이고 별장처럼 꾸미는 셀프 인테리어다.


사진/ BAZAAR
우리집에 와본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산장이나 별장에 놀러온 것 같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집 자체가 북한산 아래에 있고, 비구니가 관리하는 절집의 사랑채 같은 곳이다. 없는 돈에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을 찾다 보니 이런 특이한 이력의 전셋집으로 구하고 말았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안주하는 삶보다 히피나 유목민, 코즈모폴리턴 같은 부류들을 동경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인테리어에 그런 취향을 그대로 반영했다. 우리 집이 타이나 베트남에 있는 누군가의 여름 별장처럼 보이는 것도 실은 그 때문이다.

나는 베트남이나 네팔 같은 동남아를 여행할 때마다 열심히 사두었던 패브릭을 인테리어에 적극 활용했다. 어떤 공간을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할 때 벽에 몇 가지 컬러를 입히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데, 나는 더 간편하게 몇개의 벽면에 내가 좋아하는 패브릭 천을 그냥 달기만 했다. 특히 나처럼 무거운 가구를 저주하고, 한 공간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패브릭만큼 좋은 대안은 없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 산 물고기 문양의 블랙 앤드 화이트 천은 침대와 마주한 벽면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 동대문에서 산 하얀 광목천은 드레스룸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아프리카에서 산 얼룩말 문양의 천은 낡은 소파를 덮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그 때문인지 우리 집에 놀러왔던 어떤 남자는 정주하지 않는 여자의 살림살이처럼 보여서 자신을 무척 불안하게 만든다고 했다. 하하, 그 또한 내가 원하던 바다.

그 다음 중요한 건 조명이다. 천장에 달려 있는 형광등만큼 나를 맥빠지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건 없다. 공간 분할도 안 되고 밤에도 모든 현실을 낱낱이 보여주기 때문에 무조건 싫다. 나는 침실 독서용, 책상용, 드레스룸용, 액자 전시용, 식탁용, 그리고 분위기 잡고 술 마시기 위한 용도 등 다양한 부분 조명등을 따로 설치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명은 거실용 러그 위에 올려놓은 지구본등과 식탁 위에 설치한 중국등이다. 동남아 여행지나 용산 전자상가에서 산 싸구려 등이나 스탠드, 그리고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의 노동력을 이용했기 때문에 돈도 별로 안 들었다. 한 가지 제안하자면 집들이 때 친구들에게 자기 취향이 반영된 멋진 등을 선물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누가 누가 더 싸고 멋진 조명기구 찾아오나” 같은 경합을 붙여도 좋겠다.

그 밖에 몇 가지 보너스 팁. 1. 주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문을 떼어내고 서부 영화에 나오는 바처럼 가죽 발을 걸었다. 발은 남대문에서 산 액세서리용 가죽끈을 하나하나 이어붙이는 무척이나 지루한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2. 부엌 창을 가리는 싱크대를 과감하게 떼어내고, 을지로에서 산 업소용 진열대와 알루미늄 선반과 고리로 멋진 대용품을 만들었다. 3. 붉은 벽돌과 목공소에서 맞춘 나무 판자를 이용해서 책장을 만들었다. 4. 황학동 벼룩시장과 재활용센터, 동네 길모퉁이를 뒤지면 거의 공짜로 나만의 멋진 인테리어 소품을 구할 수 있다.

실은 다른 사람이 버린 물건도 많이 주워왔다. 그 중에서 가장 훌륭했던 건 식탁용 의자와 화단용 진열대(주울 땐 어디에 쓰던 물건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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