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보고서에 드러난 '불확실성'의 폐해…인체 유해 가능성 숨겨 희생자 속출
가령 <바이러스>나 <브레이크 아웃>과 같은 질병을 소재로 한 SF재난영화의 한 토막을 생각해보자. 이 영화는 광우병을 소재로 한 무시무시한 SF이다. 1984년 어느 날 영국 서섹스 지방에서 소를 기르는 한 농장에서 알 수 없는 이상한 괴질이 나타났다. 소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을 나타내면서 삽시간에 죽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소들은 뇌에 종양이 생기고,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죽었다. 정부는 즉각 그 농장을 격리시키고 역학조사반을 파견해서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1984년에 133마리, 이듬해에도 같은 숫자의 소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나타내고 죽었다. 결국 과학자들은 2년 뒤인 1986년에 이 증상을 소에서 나타나는 뇌의 질병(BSE), 즉 광우병이라는 새로운 질병이라고 결론지었다.
대개 SF영화에서는 여기까지가 도입부에 등장한다. 그런 다음 본격적인 줄거리에는 사람과 관계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야 일반 독자들의 흥미를 북돋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쇠고기가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추정성 보도가 나오고, 쇠고기 소비는 급격히 감소한다. 몇달 만에 육류 수출길이 막히고 축산농가들은 파산지경에 빠진다. 그리고 이쯤해서 정부 고급관리들이 등장한다. 이 정도까지 이야기를 하면 눈치빠른 독자들은 벌써 “알겠다!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가 인체에 유해한지를 놓고 어떤 음모가 벌어지는 모양이군” 하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이 SF도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
영국에서 현실로 밝혀진 광우병 SF
과학자들은 광우병과 인간의 관계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확실한 결론은커녕 질병의 감염경로나 다른 동물에 대한 감염 여부 등 숱한 문제들이 밝혀지지 않았다. 당장 불안한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경제관료들은 광우병으로 인해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가 위축되는 불행한 사태를 우려한다. 영화의 한 장면, 관계자 회의에서 정부 책임자는 심각한 어조로 말한다. “시민들에게 이런 상황을 그대로 알려서는 안 돼. 엄청난 혼란만 일어날테니까.” 다급해진 정부관계자들은 설령 광우병에 감염된 고기를 먹더라도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과학자의 입장을 은근히 편든다. 어차피 인체 유해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면 무해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서 일단 민심을 수습하고, 그런 다음 천천히 조사를 해도 되지 않겠는가. 결국 권위있는 영국 보건국(CMO)에서 서둘러 쇠고기는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다는 발표를 한다. 장면은 바뀌어서 1990년대가 되었다. 광우병은 점차 수그러들고 영국 정부는 거듭 광우병이 인간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그런데 1995년 어느 날 사람에게서 광우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고, 첫 사망자가 나왔다. 몹시 충격적인 일이었다. 언론은 비등했고, 시민들은 깊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병의 이름은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이라 붙여졌고, 조심스럽게 광우병과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에 특별위원회(SEAC)는 소의 광우병과 사람의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사이에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공식발표했다. 유럽연합(EU)은 영국의 쇠고기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사망자는 점차 늘어나고 영국 시민들은 거의 정신적인 공황에 빠지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나타난다. 불안한 시민들은 단순한 배탈만 걸려도 유언장을 쓰고, 병원에 입원해달라고 아우성쳤다. 이른바 대중적인 패닉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1997년에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과학자들은 두 질병 사이에 확실한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SF영화에서는 이 대목에서 용감한 여기자가 사건을 파헤쳐 못된 정부 관리와 나쁜 과학자들에 의해 꾸며진 음모를 밝혀내거나, 정직한 과학자가 내부고발을 하면서 전모가 낱낱이 밝혀진다. 그리고 잘생기고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의사가 등장해서 극적으로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관객은 정확한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인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못된 관료와 나쁜 과학자들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영화에서나 있는 이야기이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팝콘 봉지를 챙기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SF의 한 장면이 아니라 실제로 영국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물론 중간에 삽입한 몇 장면들은 있을법한 재구성이지만 말이다. 우리도 이미 언론을 통해 광우병 사태를 접했듯이 광우병에 감염된 소의 고기를 먹은 사람들 사이에서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라는 뇌질환이 나타났고 이미 80명 이상이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아무도 어느 정도 희생자가 발생할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도축된 소의 숫자는 수백만 마리에 달하며, 광우병으로 인한 총손실액은 현재까지 40억파운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주의와 권위주의의 엄청난 결과
최근 영국 광우병 조사위원회는 2년여 동안의 연구결과를 종합한 공식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무려 16권이며 총4천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얼마 전 영국에서 간행되는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11월4일치)는 편집자 서문에서 공식 보고서가 폭로하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위험의 가능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감춘 ‘비밀주의와 가부장적 권위주의’라고 지적하면서 그동안 영국 정부와 관계 과학자들의 잘못된 위험관리 정책을 통렬히 비판했다. 다시 말해서 정부 관리와 과학자들이 위험(risk) 여부에 대한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시민들에게 불확실성을 솔직하게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과학자와 시민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잘못된 ‘위험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의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영국의 정부관계자와 일부 과학자들은 광우병에 감염되었거나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소의 고기를 사람이 먹었을 때 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불확실성’을 그대로 전달하기를 꺼렸다. “과학을 잘 모르는 대중이 지나치게 겁을 먹어서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이 벌어지는 사태”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사태를 솔직히 밝혔을 경우 대중이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이성적인 결정을 내릴 판단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식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서 비롯된다. 특히 과학기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 가능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태에서 이런 문제가 두드러진다. 대중은 과학에 무지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알아서 위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오만과 잘못된 전문가주의가 그 토대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온갖 선거는 국민투표에 맡겨도 과학기술과 연관된 위험에 관해서는 시민들에게 진상 공개를 꺼리고 이른바 전문가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배타적인 결정을 내리는 기이한 현상이 일반화하고 있다.
사태의 불확실성도 공개해야 한다
영국 정부의 광우병에 대한 잘못된 위기관리 정책은 단지 영국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공식 보고서는 그동안 받아들여졌던 광우병의 발병원인도 뒤집었다. 양의 중추신경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인 진전병(震顫病)이 동물성 사료를 통해 소에 전파된 것이 아니라 70년대에 우연히 발생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후추열매 정도의 작은 고기덩어리로도 질병이 전염될 수 있으며 그동안 영국 정부가 취한 조처는 전혀 적절치 못했고, 따라서 이 질병이 다른 나라로 번질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영국 정부가 사태의 불확실성을 시민들에게 솔직히 공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상당한 혼란과 경제적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곧 혼란이 진전되고 발병 원인, 감염 경로, 인체 유해성 등에 대해 치밀하고 폭넓은 조사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10여년 동안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 특히 80여명의 인간 광우병 희생자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광우병뿐일까? 오늘날 우리 주위를 한번 둘러보기만 해도 유전자조작식품, 핵폐기물처리장, 생태계파괴 등 과학기술과 연관된 숱한 위험들이 있다. 특히 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과 연관된 위험의 파급력은 현 세대를 넘어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까지 미친다. 영국을 거울삼아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올바른 위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둘러보아야 할 것이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사진/인간 광우병은 위험 커뮤니케이션이 낳은 재앙이다.식품점에서 구입하는 작은 고깃덩어리로도 질병이 전염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광우병과 인간의 관계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확실한 결론은커녕 질병의 감염경로나 다른 동물에 대한 감염 여부 등 숱한 문제들이 밝혀지지 않았다. 당장 불안한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경제관료들은 광우병으로 인해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가 위축되는 불행한 사태를 우려한다. 영화의 한 장면, 관계자 회의에서 정부 책임자는 심각한 어조로 말한다. “시민들에게 이런 상황을 그대로 알려서는 안 돼. 엄청난 혼란만 일어날테니까.” 다급해진 정부관계자들은 설령 광우병에 감염된 고기를 먹더라도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과학자의 입장을 은근히 편든다. 어차피 인체 유해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면 무해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서 일단 민심을 수습하고, 그런 다음 천천히 조사를 해도 되지 않겠는가. 결국 권위있는 영국 보건국(CMO)에서 서둘러 쇠고기는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다는 발표를 한다. 장면은 바뀌어서 1990년대가 되었다. 광우병은 점차 수그러들고 영국 정부는 거듭 광우병이 인간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그런데 1995년 어느 날 사람에게서 광우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고, 첫 사망자가 나왔다. 몹시 충격적인 일이었다. 언론은 비등했고, 시민들은 깊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병의 이름은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이라 붙여졌고, 조심스럽게 광우병과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에 특별위원회(SEAC)는 소의 광우병과 사람의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사이에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공식발표했다. 유럽연합(EU)은 영국의 쇠고기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사망자는 점차 늘어나고 영국 시민들은 거의 정신적인 공황에 빠지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나타난다. 불안한 시민들은 단순한 배탈만 걸려도 유언장을 쓰고, 병원에 입원해달라고 아우성쳤다. 이른바 대중적인 패닉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1997년에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과학자들은 두 질병 사이에 확실한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SF영화에서는 이 대목에서 용감한 여기자가 사건을 파헤쳐 못된 정부 관리와 나쁜 과학자들에 의해 꾸며진 음모를 밝혀내거나, 정직한 과학자가 내부고발을 하면서 전모가 낱낱이 밝혀진다. 그리고 잘생기고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의사가 등장해서 극적으로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관객은 정확한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인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못된 관료와 나쁜 과학자들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영화에서나 있는 이야기이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팝콘 봉지를 챙기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SF의 한 장면이 아니라 실제로 영국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물론 중간에 삽입한 몇 장면들은 있을법한 재구성이지만 말이다. 우리도 이미 언론을 통해 광우병 사태를 접했듯이 광우병에 감염된 소의 고기를 먹은 사람들 사이에서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라는 뇌질환이 나타났고 이미 80명 이상이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아무도 어느 정도 희생자가 발생할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도축된 소의 숫자는 수백만 마리에 달하며, 광우병으로 인한 총손실액은 현재까지 40억파운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주의와 권위주의의 엄청난 결과

(사진/광우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쇠고기의 위험도 미리 막아야한다. 동물성 사료를 먹은 소를 도살하고 있다)

(사진/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으로 24살에 숨진 영국의 클레어 콤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