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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당당한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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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6-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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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리기]

전세일/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원장

한 생명체가 발생하려면 정자와 난자가 필요하다. 한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자와 하나의 난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아예 약 40만개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어떤 여자아이가 태어날 때는 그 갓난아기 몸 속에 이미 40만개나 되는 난자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그녀가 성숙해서 월경이 시작되면 난소에 들어 있는 40만개의 난자 가운데 성숙한 것을 한달에 하나씩을 자궁 속으로 내보낸다. 임신 기간에는 배란이 안 되지만 임신이 안 되면 매달 하나씩 나온다. 난소는 두개가 있기에 이달에 왼쪽 난소에서 나왔다면, 다음달에는 오른쪽 난소에서 나오는 식으로 달라진다. 여자가 월경하는 기간은 대략 35~40년이니까 평생 배출되는 난자는 평균 500개를 넘지 않는다. 800분의 1밖에 쓰지 않는 셈이다. 그래서 여성의 신체는 생리적으로 비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남자의 경우는 어떤가. 남자는 한번 사정에 평균 3cc의 정액이 나온다. 그런데 1cc에 1억 마리의 정자가 들어 있으니 한번에 3억 마리 이상이 나오는 셈이다. 사람이 생기기 위해서는 딱 한 마리의 정자만 필요하다. 3억 마리가 나왔다가 한꺼번에 희생되고 만다니 놀라운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자의 수가 50% 이하로 떨어지면 아예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50%라고 하면 1cc에 5천만 마리가 와글거리는데도 임신은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약 3억 마리가 잠시 나왔다가 금세 죽더라도 그 최후의 한 마리를 성공시키기 위해 공동으로 무슨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단한 협동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주위에서 만난 사람 중에 혹시 바보처럼 보이더라도 그도 적어도 3억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긴 승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당당한 1등들이다.

일단 사정된 정자 3억 마리는 일제히 난자를 향해 안간힘을 다해 달려간다. 약 2시간쯤 뒤에 대부분은 도중에 탈락하고 만다. 겨우 200마리 정도의 정자만이 최후 주자로 난자에 도착해 자기를 뽑아달라고 꼬리를 친다(정자는 올챙이처럼 꼬리를 갖고 있다). 난자는 200마리를 심사해 최종 합격자를 뽑는다. 이때 사용하는 심사 기준은 ‘가장 우수한 유전자’이다. 난자는 어떤 정자가 가장 우수한 유전자를 지녔는지 판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의학계에서 밝혀졌다. 우수한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난자의 진화학적 속성이다. 그래서 아이들 머리 좋고 나쁜 것은 엄마 책임이라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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