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대신해 상품 가치 올리는 경기장 밖의 승부사 에이전트의 세계
휴대전화를 하나 사려 해도 복잡한 세상이다. 웬 요금 체계는 그렇게도 다양한지. 심야시간 할인대를 선택해야 전화요금을 적게 낼 것 같기도 하고, 업체 직원이 권하는 체계가 제일 싸게 먹힐 것 같기도 하고. 주변에 이런 것에 관해 정통한 친구가 있는데 향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권해볼 만한 직업이 있다. 바로 에이전트(AGENT). 말 그대로 대리인으로 나서보는 것도 괜찮다는 얘기다.
선수를 고객이 아닌 사업 파트너로
94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LA다저스 진출 이후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 중 하나가 스티브 김(한국명 김철원)으로 대변되는 에이전트다. 에이전트라는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직종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거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박찬호와 합종연횡 전선을 폄으로써 이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올 시즌 18승을 거두는 등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의 꾸준함을 보여준 박찬호가 내년 어느 정도의 천문학적인 거금을 거머쥐느냐는 스캇 보라스의 협상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박찬호의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은 메이저리그 연봉 계약권을 스캇 보라스에 건네고 자신은 국내 광고권 등 여타의 계약에만 관련돼 있다. 지난 11월 초 박찬호의 중국야구 클리닉 같은 경우는 스티브 김이 성사시킨 것이다. 스티브 김은 “이제 한발짝 물러나 큰 파이를 만들고 그것을 박찬호에게 나눠주고 싶다. 중국야구 클리닉도 그런 차원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애초에 자신이 계획했던 스포츠마케팅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이젠 박찬호를 고객이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에이전트의 대행 업무는 이처럼 연봉협상만 있는 게 아니다. 선수 개인의 스폰서십 유치라든가, 재산 관리, 세무 및 법률 서비스 제공 등이 있다. 뿐만 아니다. 계약을 맺은 선수의 훈련 프로그램과 의료 혜택 지원 등도 필요하다. 선수의 잠재 능력을 일찍이 파악해 상품가치를 높여주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데 박찬호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94년 박찬호가 마이너리그에 있을 당시 굴지의 스포츠업체 나이키는 박찬호가 자사 제품 스파이크를 신는 조건으로 1년에 5천달러를 제시했는데 스티브 김의 파죽지세 협상 자세 덕에 몸값이 크게 뛰어올랐다. 스티브 김은 당시 “박찬호는 동아시아 시장 전체를 잡을 수 있는 뛰어난 상품”임을 역설했고 단순히 신발을 신는 조건을 뛰어넘어 패키지 계약(야구 교실, 사인회 개최 등)을 성사시켰다. 에이전트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 셈이다. 변호사 다음으로 많은 게 미국사회에서 에이전트가 아닐까 싶다. 미국과 캐나다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에이전트는 줄잡아 1500명이 넘는다. 그러나 그중 큰돈을 벌고 있는 에이전트는 몇 되지 않는다. 야구의 경우 메이저리그로부터 에이전트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풀타임 메이저리거(시즌 내내 25명 보호선수 명단에 들어 있는 선수) 1명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선수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은 뒤 증빙 서류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제출해야 하는데 사무국은 해당 에이전트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 전과 유무 등을 심사한 뒤 일정액의 공탁금을 부과한다. 공탁금은 대개 1만5천달러에서 15만달러까지 다양하다. 물론 누구나 에이전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단의 반대쪽에 서서 메이저리그를 이끄는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선수에 대한 수수료율이 얼마인지, 계약이 불평등한지 등을 심사해 만약 선수에게 불리하다고 할 경우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성공한 에이전트는 소수… 선수 출신들 활약
프로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에이전트를 두는 것은 미국에서 일반적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선수 개인이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은퇴한 조지 브레트라든가, 로빈 욘트는 가족 또는 가까운 친구로부터 조언을 받아 계약협상에 나섰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앨런 트라멜 등은 자신이 직접 해결한 케이스다. 에이전트를 그린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실제 모델이었던 미식축구의 레이 스타인버그도 처음에는 친구의 법률상담으로 시작했다. 7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의 볼트 홀 법과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스타인버그는 75년 NFL 1순위로 지명됐던 쿼터백 스티브 발콥스키를 당시 신인 사상 최고 금액 65만달러에 애틀랜타 팰컨스에 입단시키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그 계약을 시작으로 스타 고객들을 모시기 시작한 스타인버그는 현재까지도 IMG 등 굴지의 기업형 스포츠매니지먼트 그룹이 살아남은 시장에서 업계 4위로 자리잡고 있다. 구단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계약을 성사시켜 ‘못 말리는 악마’로 불리는 스캇 보라스는 메이저리그 선수 70여명을 고객으로 보유하고 있다. 박찬호는 물론 애틀랜타의 그렉 매덕스, LA다저스의 케빈 브라운, 샌프란시스코의 롭 넨 등 우수 선수들의 대부분이 보라스 사단이라고 하겠다. 2억달러 얘기가 나오며 새로운 팀을 찾아나서고 있는 알렉스 로드리게스 또한 보라스의 손님이다. 이들 70여명의 계약 대행 수수료를 5% 정도로 잡더라도 연간 600억원 이상의 수입이 발생하는 메가 파워 집단이다.
현재 메이저리그의 한국인 에이전트는 공식적으로 한명도 없다고 보는 것이 좋다. 스티브 김이 스캇 보라스와 연합전선을 펴고 있고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또한 사사키와 이치로(이상 시애틀)의 에이전트인 토니 아타나시오가 법률 에이전트로 선수노조에 등록돼 있는 형편이다. 김병현의 에이전트 전영재씨는 김병현의 입단 당시 법률 관련 업무를 아타나시오에 맡기고 처음부터 자신은 뒤로 물러나 광고 계약 등에 치중하는 처지다. 박찬호는 팀61, 김병현도 더스포츠라는 국내 매니지먼트사를 두고 있다. 이외에 최희섭, 권윤민(시카고 컵스) 등의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홀오브드림스라는 스포츠매니지먼트사에 소속돼 있는 이치훈씨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있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이상훈은 골프 마케팅으로 유명한 IMG와 계약을 맺고 있다.
에이전트 계약을 통해 미국에 진출하지 않고 중개인, 또는 미국 구단에 관계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에이전트 없이 생활하기도 한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김선우는 98년 입단 당시 재미 대한야구협회장이자 레드삭스의 극동 담당 스카우트 업무를 맡고 있는 박진원씨의 중개로 유니폼을 입었다. 김선우는 데뷔 초 TSI라는 곳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으나 곧 파기하고 현재 에이전트 없이 지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간 관계”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들에게 중요한 가이드라인은 무엇일까. 연봉 협상에서 파이 키우기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미국 야구 적응인데 처음부터 물설고 낯설은 고장에서 가이드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박찬호의 성장은 바로 미국사회에의 적응이라 할 수 있는데 스티브 김의 전략은 이후 미국에 진출하는 선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티브 김이 박찬호의 LA다저스 입단에 일조하며 내세운 전략이 바로 ‘한국인 박찬호가 아니라,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미국인 박찬호’였다. ‘성공한 미국인’이라는 얘기는 미국, 그것도 로스앤젤레스라는 지역사회의 역할 모델로서 박찬호가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느냐는 것. 실제로 박찬호가 그간 한국과 미국의 지역사회에서 장학금 등 수익의 일부를 내며 사회적 역할 모델을 강조하고 있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에이전트 스티브 김이 이런 몫을 강조하며 박찬호의 초기 이미지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해왔다면 이제 후반기 성공은 스캇 보라스가 바통을 쥐고 연봉 대박을 터뜨리는 데 있다고 하겠다.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 열풍으로 에이전트라는 낯선 직업이 소개된 이후 박찬호-스티브 김-스캇 보라스로 이어지는 선수-에이전트 관계는 80% 이상은 성공작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 속의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는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간 관계”라는 요지의 보고서를 냈다가 회사에서 잘렸는데 그 회사는 이상한 회사다. 적어도 한국 출신 선수들을 보유하려면 제리 맥과이어 같은 이도 필요한데 말이다.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사진/에이전트는 선수들 총체적으로 대리해 상품가치를 높인다.미식축구 선수의 에이전트를 모델로 만든 영화<제리 맥과이어>.)
에이전트의 대행 업무는 이처럼 연봉협상만 있는 게 아니다. 선수 개인의 스폰서십 유치라든가, 재산 관리, 세무 및 법률 서비스 제공 등이 있다. 뿐만 아니다. 계약을 맺은 선수의 훈련 프로그램과 의료 혜택 지원 등도 필요하다. 선수의 잠재 능력을 일찍이 파악해 상품가치를 높여주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데 박찬호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94년 박찬호가 마이너리그에 있을 당시 굴지의 스포츠업체 나이키는 박찬호가 자사 제품 스파이크를 신는 조건으로 1년에 5천달러를 제시했는데 스티브 김의 파죽지세 협상 자세 덕에 몸값이 크게 뛰어올랐다. 스티브 김은 당시 “박찬호는 동아시아 시장 전체를 잡을 수 있는 뛰어난 상품”임을 역설했고 단순히 신발을 신는 조건을 뛰어넘어 패키지 계약(야구 교실, 사인회 개최 등)을 성사시켰다. 에이전트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 셈이다. 변호사 다음으로 많은 게 미국사회에서 에이전트가 아닐까 싶다. 미국과 캐나다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에이전트는 줄잡아 1500명이 넘는다. 그러나 그중 큰돈을 벌고 있는 에이전트는 몇 되지 않는다. 야구의 경우 메이저리그로부터 에이전트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풀타임 메이저리거(시즌 내내 25명 보호선수 명단에 들어 있는 선수) 1명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선수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은 뒤 증빙 서류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제출해야 하는데 사무국은 해당 에이전트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 전과 유무 등을 심사한 뒤 일정액의 공탁금을 부과한다. 공탁금은 대개 1만5천달러에서 15만달러까지 다양하다. 물론 누구나 에이전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단의 반대쪽에 서서 메이저리그를 이끄는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선수에 대한 수수료율이 얼마인지, 계약이 불평등한지 등을 심사해 만약 선수에게 불리하다고 할 경우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성공한 에이전트는 소수… 선수 출신들 활약

(사진/국내에 에이전트의 활약상을 널리 알린 스티브김)

(사진/미국 스포츠계에서 에이전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구실을 한다.박찬호(가운데)와 합종연횡 전선을 형성한 에이전트 스티브 김(왼쪽)과 스캇 보라스(오른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