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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파괴된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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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6-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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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이 만난 세상]

겸/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저번 ‘자전거와 차별’이라는 글을 쓰고 이틀 뒤 내 자전거는 대학로 자전거 주차장에서 실종됐다. 이명박 시장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내가 사는 대학로는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한다며 멀쩡한 거리의 보도블록을 모두 헤집어놓았다. 공사로 인한 매캐한 먼지더미와 끔찍한 소음으로 대학로를 걷다 보면 녹초가 되어버리곤 한다. 자전거 실종사건(?) 당일 외출을 하려고 자전거를 주차해놓은 곳에 가보니 보도블록 공사로 묶여 있던 자전거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고 내 자전거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곧바로 공사를 담당하는 토목과에 문의했지만 그들의 특기인 ‘책임전가’에 바빴고, 자전거가 실종된 현장을 보고도 자신을 골탕먹이기 위한 음모론 정도로 취급했다. 결국 중고 자전거 정도의 값을 보상받긴 했지만, 끝끝내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선심 쓰듯 보상금을 내주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과실이기보단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라는 관 행사에 맞춰 졸속으로 도로공사를 끝내려다 일어난 예정된 부작용에 가까웠다.

환경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이명박 시장이 진정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인지 환경파시스트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울시 전체를 공사판으로 만들어버린 그의 독단적인 졸속 행정으로 받은 피해는 이뿐만 아니다. 난 아르바이트 근무지와 이주노동자 농성투쟁단이 있는 명동을 가기 위해 청계천을 종종 지나간다. 그때마다 청계천 복원 공사로 파헤쳐져 사람도 차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뒤섞여 있는 아슬아슬한 풍경을 마주한다. 그날은 3년 동안 나와 함께한 정든 자전거를 잃어버린 뒤 새 자전거를 구입하여 청계천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드문드문 가로등이 설치된 한밤중의 위험한 청계천을 지나다 갑자기 타고 있던 자전거가 공중부양했다. 나와 자전거는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을 하고 인도도 차도도 아닌 거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때마침 달려오던 대형 트럭이 급정거하지 않았다면 한밤중에 어이없는 사고로 죽음을 맞이할 뻔했다. 충격을 받은 자전거의 앞쪽은 완전 박살나 타이어가 터져 있었고, 손목과 무릎을 꺾여 한동안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었다. 피가 줄줄 흐르는 무릎을 대충 닦고 방금 지난 곳을 살펴보니 얼굴만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도로를 어찌나 무식하게 부숴놨던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지나가기 힘들뿐더러 돌부리에 걸려 엎어질 경우 누군가 발견하지 않는 이상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청계천에 대한 나의 추억은 기껏해야 삶이 서글퍼질 때면 천지인의 <청계천 8가>를 들으며 눈물 흘리던 기억 정도지만, 파괴돼가는 조악한 청계천의 풍경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더 이상 “핏발 솟은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맹인부부 가수의 노래도” 찾아볼 수 없는 쓸쓸한 청계천의 풍경이 가슴 아픈 이유는 멍든 손목 때문이 아니라, 환경을 내세운 시의 개발독재로 인해 쫓겨나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상인들의 서글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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