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미소년 · 미소녀에 탐닉하는 클럽과 레스토랑은 이 도시의 슬픔인가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요즘 서울 홍익대 앞에서 가장 핫(hot)한 클럽으로 ‘ㅎ’이 떠올랐다. 얼마 전 그곳에서 열린 이상한 교복 파티 때문이었다. 아티스트 강영민의 초대로 나도 그날 그 파티에 갔다. 수소문 끝에 빌려 입은 한 여고 교복에 프라다 구두를 신고 그 위에 워모라고 부르는 줄무늬 덧양말을 신고 갔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내 자신이 딸아이 졸업 파티에 놀러간 정신나간 학부모처럼 여겨졌다. ‘걸스카우트’라고 불리는 정체 불명의 섹시한 소녀들이 일본 여고생들을 연상시키는 발랄한 ‘세라복’을 단체로 맞춰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의 몸놀림과 옷차림은 기묘하게 선정적이어서 나는 다소 충격을 받고 말았다. 말까지 더듬었다. “쟤, 쟤, 쟤들이 진짜 걸스카우트야?” 얼빠진 듯 1시간 정도 멍청히 서 있다가 나는 서둘러 ‘ㅎ’을 빠져나왔다.
나중에야 이들의 정체를 알게 됐다. 걸스카우트는 홍대나 이태원 일대에서 의상 파티를 즐기는 미소녀 그룹인데, 새로운 클럽 주인들은 클럽을 띄우기 위해서 걸스카우트에게 도움을 청하고, 걸스카우트는 그때그때마다 다른 컨셉트의 의상을 맞춰 입고 나가서 새벽까지 신나게 놀아준다. 그 중 가장 화끈했던 파티는 란제리와 가죽 의상으로 맞춘 S&M 파티와 아티스트 낸시 랭과 함께한 ‘섹시 뱀파이어 나이트’ 쇼였다. 재미있는 건 회원 모두 특별한 의상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춤추며 도발하는 걸 즐기는 나르시서스이기 때문에 돈 같은 건 받지 않는다는 것.
아티스트 강영민은 이들 ‘열린 우리 소녀당’에게 흥미를 느껴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골든걸’이라는 당 대표는 이런 멋진 말을 남기기도 했다. “소녀는 늙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그런데 청담동에 나가보니 그곳에서도 미소녀, 미소년을 이용한 레스토랑 마케팅이 붐인 것 같았다. 스시 클럽 ‘ㅇ’에는 홀 정중앙에 작은 유리방 하나가 만들어져 있는데, 어느 날 가보니 그 안에 금발의 미소녀 하나가 갇혀 있었다.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마네킹인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번째 스시롤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두평 남짓한 유리방에 갇혀 지루함에 몸부림치는 금발 소녀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처음엔 귀신을 본 듯 깜짝 놀랐고, 그 다음엔 전신주에 올라가 꺼이꺼이 우는 귀신을 본 듯 왠지 슬픈 생각이 들었다. 유럽물을 많이 드신 이곳 주인장이 내 집처럼 편안한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서 러시아 소녀를 특별히 고용했다는 매니저의 설명을 듣고도 뭐가 뭔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그에 비하면 ‘ㄷ’의 마케팅은 다소 귀여운 편이다. 이곳은 아주 모던한 인테리어에 최신 라운지 음악을 틀어주는 스타일리시한 밥집인데, 재미있는 건 스노보더나 언더그라운드 밴드 출신의 미소년들이 서빙을 해준다는 것. 게다가 테이블 위에는 그들의 신상명세서가 놓여 있다.
이제는 섹스를 소고기 덮밥이랑 같이 파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콜라를 마시며, 스시를 먹으며 대낮의 공공 장소에서 태연하게 관음증을 충족시킬 수도 있다. 굳이 섹스를 찾아 유곽에 드나들거나 성적 판타지를 찾아 청계천을 헤맬 필요가 없다는 점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이 관상용 식물처럼, 프라다 핸드백처럼 유리벽 안에 전시되는 일만큼은 여전히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한편, <11분>처럼 '섹스도 성스러울 수 있냐'고 묻는 시대착오적인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건, 변호사인 내 친구에 의하면 자위용 성적 판타지를 만들기엔 '걸스카우트 파티'보다 <11분>이 더 낫더라는 것. <11분> 광고판을 매단 버스는 오늘도 도심을 질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