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나라나 건축은 경제논리에 지배되기 마련이다. 특히 서민들을 위한 집단주택들은 대부분 콘크리트 상자 모양의 아파트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나라들에서 경제성을 따져 싼 건축비용으로 손쉽게 짓는 이런 서민아파트들은 도시건축을 획일화하고 도시의 경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때문에 주요 선진국들은 서민용 주택건축 문화를 바꿔 도시의 아름다움을 되살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건축의 공공성이 중요한 서민주택이나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공건물 건축에는 유명 건축가들이 작업에 참여하도록 정부가 재정적, 법규상으로 지원한다.
프랑스의 ‘일산’쯤 되는 파리 근교의 신도시 세르주 퐁투와즈 지구와 마른 라발레 지구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리카르드 보필과 마놀로 누에즈 야노브스키 등의 건축가들이 참여한 이 신도시는 프랑스의 대표적 건축유산인 베르사이유 궁전과 개선문, 오페라 극장 등의 고전적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보필이 설계한 ‘민중을 위한 베르사이유 아파트’는 과거 왕족이 누리던 베르사이유 궁전의 건축문화를 현대의 서민들이 아파트에서 느끼도록 하자는 발상에서 지어졌다. 신도시 피카소 지역의 입구 건물(사진 맨 위)도 프랑스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개선문의 이미지로 지어졌다. 역시 피카소 지구에 자리잡은 원형아파트(위에서 두 번째)는 파격적인 시도로 아파트 건축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건물로 유명해졌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페퍼클립 로테르담’(사진 위에서 세 번째)도 서민아파트의 칙칙한 이미지를 건축적으로 풀어낸 경우다. 저소득층 집합주택은 공업화 생산방식으로 지어지기 때문에 특히 획일성과 경직성의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네덜란드에서는 많은 건축가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고 정부가 다각적으로 지원해 서민아파트의 획일성을 극복하고 있다. 페퍼클립 로테르담은 이처럼 정부와 건축가의 공조로 저소득층 아파트의 외관을 혁신한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값싼 건축자재인 다양한 색깔의 조립식 콘크리트 판넬로 건물 외벽을 마감해 외관을 산뜻하고 깔끔하게 만들었다.
대한주택공사 부설 주택연구소 책임연구원인 이규인(38) 박사는 “서민들의 주요한 생활공간인 아파트는 건축의 공공성이 크기 때문에 도시 전체의 미적인 자산으로 새로운 건축질서를 이끌어낼 수 있는 효과가 크다”며 “선진국들은 이런 아파트들에 경제적 가치와 함께 미적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건축가들이 건설에 참여하고 미적인 부분에 건축비가 투입될 수 있도록 재정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런 노력들은 국가 전체의 문화수준을 반영하는 지표가 되고 한 나라의 건축문화 수준을 높여 도시민들에게 쾌적한 도시경관을 제공하게 된다. 우리 사회와 정부도 이런 점을 빨리 인식해 지금의 서민주택 건설풍토를 바꿔야 한다고 이 박사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