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김매는 주말

513
등록 : 2004-06-10 00:00 수정 :

크게 작게

[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글 · 사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피사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논배미를 볼 때마다, 어른들은 “저렇게 일을 하고도 입으로 밥이 넘어가냐”며 혀를 끌끌 차곤 했다. 농사꾼에게는 게으름이야말로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악덕이라고 그들은 내게 가르쳤다. 그런 말을 얼마나 많이 듣고 자랐는지 나는 아직도 어른들의 말에 주눅들어 있다. 한 주라도 농장에 가지 않으면 큰 죄를 짓는 느낌이 든다.

몇평 안 되는 주말농장이지만 제대로 하려면 끝없이 잔손이 간다. 한 주만 농장 가는 것을 빼먹어도 곧 티가 난다. 요즘은 새로 심을 것도 없어서 상추·쑥갓 등 쌈거리를 거두고, 키가 자라는 대로 고추나 토마토를 지주에 잘 묶어주는 게 일의 전부다. 게으름을 탄로나게 하는 것은 김매기다. 재배하는 작물은 그렇지 않은데 풀들은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지, 아무래도 사람 손을 피해 빨리 자손을 번식시키려니 생육이 빠른 것 아닌가 싶다.


논농사든 밭농사든 김매기는 제법 손이 많이 간다. 어릴 적에는 모내기를 앞둔 철이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로 형제들이 모두 동원돼 모판의 피(벼과의 식물)를 뽑곤 했다. 햇빛에 비추어 이파리 가운데 하얀 줄이 있는 게 피고 그렇지 않은 게 벼인데, 여간해서는 구별해내기 어렵다. 그렇게 모판의 피를 날마다 뽑아내지 않으면 벼농사가 피농사가 돼버린다. 모내기를 한 뒤 피를 뽑으려면 손이 몇배나 더 간다. 요즘엔 잡초의 씨앗이 싹트지 않게 하는 농약을 뿌리는 것으로 김매기 일손을 크게 줄였다. 논둑이나 밭고랑 사이에 난 잡초는 식물전멸제인 그라목손을 뿌린다. 오래 그러다 보니 땅이 다 죽어버렸다.

쌀겨농법이나 오리농법은 농약 없이 벼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김매기 일손을 줄이려는 시도다. 쌀겨에는 기름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논에 뿌리면 논바닥에 햇빛을 차단해 잡초의 발아를 억제한다. 또 쌀겨에 들어 있는 식물 호르몬의 일종인 아브리신산이 잡초가 싹트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어, 70~80%는 잡초 발생을 줄여준다고 한다. 많이 알려진 오리농법은 오리가 흙탕물을 일으켜 잡초 발생을 억제하기도 하지만, 해충을 잡아먹는 살충 효과도 기대한 것이다.

칠갑산의 콩밭 매던 아낙네는 무슨 풀을 매고 있었을까? 우리 농장 밭에는 비름과 쇠비름, 명아주 따위가 가장 많이 자란다. 예전에는 먹기도 했던 것들인데, 요즘은 입맛이 여간 독특한 사람이 아니면 비름 외에는 먹지 않는다. 들깨 모종 가운데는 배초향이 섞여 자란다. 배초향은 모종이 어릴 때는 들깨와 구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한참 자라서 들깨보다 먼저 꽃이 피면 그때서야 알아채는데, 이때는 뽑아내려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잡초는 보는 대로 뽑아버리지만 몇개씩 뽑지 않고 놔두는 것도 있다. 까마중(사진)이다. 한여름부터 둥근 열매가 까맣게 익는 까마중은 도시에서 자란 이들도 한번쯤은 맛을 보았을 것이다. 간절하게 먹고 싶을 정도로 맛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추억을 씹을 수 있다. 열매가 열리기 전에는 이 까마중을 구별하지 못해서 사람들이 다른 잡초와 함께 다 뽑아버리는 것이 조금 아쉽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