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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퀴어는 누구나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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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6-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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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이 만난 세상]

겸/ 10대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올해 초에 홍익대의 한 클럽에 놀러갔다. 리듬에 맞춰 적당이 몸을 흔들어대고 있을 때 노란 생머리의 백인 여성이 다가왔다. 우리는 눈인사를 하고 손을 맞잡거나 서로를 향해 손짓을 하며 자연스럽게 커플 댄스를 췄다. 흥이 사라질 쯤 나와 그녀는 스테이지를 빠져나와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난데없이 “여자친구 있어요?”라고 물었다. 난 별 생각 없이 “나는 게이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적잖게 놀란 표정이었지만, 곧 평정을 찾고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우리 키스할래요?” 고민했지만, 그녀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좋아요”라고 답했다. 길고 깊은 키스를 마친 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자하곤 처음 키스하는데, 이렇게 기분 좋은 건지 몰랐어요. 남자보다 훨씬 낫네!” 이 경험은 19년 게이 인생 편력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난 (여자)친구로 지내던 한 친구를 짝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경험들은 동성애자로서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다시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여전히 난 남성에게 더 성적인 욕구를 느끼고 있었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 더욱이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성 욕구만으로 성적 지향을 규정할 순 없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난 어디에서든 나를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최근 쿨한 문화쯤으로 여겨지는 바이섹슈얼은 섹스 파트너를 개인의 선택권으로 한정한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동성애적 관계를 섬세하게 성찰하지 않는 이들의 섹슈얼리티는 ‘커밍아웃의 정치성’이 배제되어 있다. 그러니 나를 바이섹슈얼이라 할 바에 차라리 게이나 퀴어라고 밝히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다.


며칠 전 짧게 머리를 자른 나의 (여자)‘친구’는 지하철을 타거나 거리를 지날 때 사람들의 집요한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 나름대로 분석해본 결과 그들의 시선은 ‘외관상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류 불능의 상태를 견딜 수 없어하는 것이고, 그런 존재는 타자를 구분짓던 자신의 사고체계에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나는 누구나 퀴어가 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이성애적 윤리에 반대하는 존재가 퀴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이성애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유주의적 바이섹슈얼을 퀴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자보다 예쁜 여자’ 하리수를 퀴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차라리 난 ‘여성도 남성도 아닌’ 존재로 사람들에게 성 구분의 혼란을 안겨주는 나의 친구를 퀴어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성애만을 정당화하는 시스템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누구나 퀴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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