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퀴어 마인드’ 가진 내 친구들은 TV의 돈덩어리 게이들과 달라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나는 지금 ‘지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우기고 싶은 걸까? 수개월 전 이 지면에 ‘패션과 뷰티에 관한 스타일리시한 게이맨들의 충고’에 대한 글을 썼지만, 요즘 케이블TV에서 새롭게 급부상한 게이 프로그램 <퀴어 아이>를 보는 내 심정은 그다지 편치 않다.
패션, 미용, 인테리어, 요리 등 고급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일하는 다섯명의 게이가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이성애자 남성들을 멋지게 변화시킨다는 내용의 <퀴어 아이>는 처음엔 나를 들뜨게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다섯명의 게이들은 ‘걸어다니는 돈덩어리’에 불과했다. 호들갑을 떨며 ‘월마트 따위에서 옷을 사는 보통의 남자들의 촌스러운 감각’을 저주한 뒤 이걸 사라 저걸 사라 부추기는 다섯명의 장사꾼들이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이 방송에서 게이들이 제안한 ‘러키 진’ 청바지는 매출이 17% 늘었고, ‘도메인’ 소파는 4배 가까이 더 팔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게이 전성 시대는 좋은데, 왠지 게이들이 미디어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들의 화려한 겉모습(<퀴어 아이>)과 성생활(<퀴어 애즈 포크>)에만 파고들어 상업적으로 열심히 포장만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더러운 속성에 지쳐 일찍이 연예계를 은퇴한 내 친구 A. 그는 자동차 한대 없이 청담동을 누비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어떤 땐 화려한 스트라이프 셔츠에 잘 빠진 턱시도를 입고 지하철을 타기도 하는데, 사람들 시선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그토록 열심히 자기를 가꾸는 인간은 정말 흔치 않다. 걸핏하면 밤을 새기 일쑤고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판이다. 그런데도 언제나 만화처럼 웃으며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얼마 전에 그는 ‘강남인이 강북인이 되려면 비자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청담동 패션피플들의 측은한 눈길을 무시하고 대치동에서 구기동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하기 전날 A는 평소에 자주 가던 슈퍼마켓이나 세탁소, 비디오가게 등을 돌며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다녔는데, 그 주인들이 죄다 눈이 휘둥그레져 “이사 간다며 인사하는 동네 사람은 난생처음”이라며 되레 깊이 감동을 하더라는 것이다. 내 친구 A가 그때처럼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때가 없었다. 나는 말했다. “남자들 눈이 멀었어. 너처럼 좋은 아이가 왜 애인이 없는지…. 할리우드에 가서 벤 스틸러라도 납치해올까?”
지난 겨울 내가 소개팅 자리를 주선했던 영화인 B와 헤어 스타일리스트 C도 내가 인간적으로 참 좋아하는 게이들이다. B에게는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문득문득 사람을 뭉클하게 만드는 다정함이 있고, C에게는 무엇이든 간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 우아함이 있어서 좋다. 그 첫 만남에서 화장에 속눈썹 파마까지 한 토종 타이인 같은 얼굴로 “너 어느 학교 나왔어? 나는 이대 출신 아닌 애들은 상대도 안 하는데…” 하는 따위의 기이한 유머를 구사하는 바람에 ‘좀 이상한 인간이다’ 싶었던 D. 나중에도 역시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건 자기애가 무척 강하고 매사에 열정이 넘치는 솔직한 남자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 이성애자들이 게이들에게 배울 만한 점은 고작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쇼핑 노하우’ 정도가 아니다. ‘퀴어 아이’가 아니라 ‘퀴어 마인드’를 봐야 한다. 어둡고 낮은 곳에서 배운 삶의 열정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