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이 만난 세상]
겸/ 10대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인터넷을 시작할 즈음이 처음 쿨한 개인주의와 접한 때였으니, 그야말로 난 쿨한 문화적 토양에서 자라난 세대이다. 그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공터에서 ‘딱조’(딱지가 아니라, 아이들의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과자에 하나씩 들어 있는 장난감이다)치기, 술래잡기, 숨바꼭질 등 몸과 몸이 부딪치는 놀이를 대신해 아이들은 메신저와 휴대전화의 기계장치에 접속했다. 쿨하지 않은 문화를 경험해보지 못한 난 도대체 왜 쿨해져야 하는지 몰라 한참 당혹스러웠다. 물론 당시 대부분의 생활을 구성했던 가족과 학교의 끈끈하다 못해 폭력적인 집단주의의 그늘 안에 살았지만, 이전처럼 그것들이 소년, 소녀들의 욕망을 묶어둘 올가미는 될 수 없었다.
그때 난 도시의 네온사인을 피해 골방에서 왕가위의 영화를 보고, 울부짖는 라디오헤드의 노래를 듣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방황하는 주인공이 그려진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자랐다. 자아를 갉아먹는 문화에 지루해질 쯤엔 체 게바라나 섹스피스톨스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음악감상실에 죽치고 앉아 너바나와 레이지의 노래를 들으며 세련되게 저항을 소비하기도 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자란 세대는 이와 비슷한 문화권에서 1990년 후반을 보내고, ‘발 없는 새’ 장국영의 거짓말 같은 죽음을 목도하며 쿨한 개인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내게 그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담탱’의 사랑받는 범생 역과 교문을 등진 뒤 ‘후진’ 학교에 대해 욕을 퍼붓던 적당한 삶에서 벗어나 이른바 ‘학생운동’이라는 것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 하나 아무리 소리쳐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열정은 곧 식었고, 정치에 대한 냉소와 ‘대책 없는’ 아나키스트로 선회하게 됐다.
당시 막강한 소비 세대에 불과한 소년, 소녀들은 노래방·PC방·카페를 놀이터 삼아 소비의 거리를 떠돌거나 갖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거리에는 소음에 불과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피해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와 살짝 닿는 것도 거북해 몸을 이리저리 피해다니기 바쁜 소년, 소녀들이 활보했다. 거리의 인파 속에 고독한 개인인 그들은 왕가위의 스텝 프린팅 기법에 의해 찰영된 주인공처럼 다들 지치고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고 싶어도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을까 타인을 감싸 안지 못하는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그냥 타인과 적절한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고 가식적인 웃음으로 쿨하게 협약의 악수나 할 뿐이었다. 안도현의 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진부한 물음 같지만, 쿨을 권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 하나의 경구와 같이 느껴진다. 다 탄 연탄재마냥 차가운 나의 가슴을 이제라도 새 탄으로 갈아 뜨거운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소비의 거리를 배회하는 소년, 소녀들에게도 뜨겁게 살자고 말하고 싶다.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당시 막강한 소비 세대에 불과한 소년, 소녀들은 노래방·PC방·카페를 놀이터 삼아 소비의 거리를 떠돌거나 갖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거리에는 소음에 불과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피해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와 살짝 닿는 것도 거북해 몸을 이리저리 피해다니기 바쁜 소년, 소녀들이 활보했다. 거리의 인파 속에 고독한 개인인 그들은 왕가위의 스텝 프린팅 기법에 의해 찰영된 주인공처럼 다들 지치고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고 싶어도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을까 타인을 감싸 안지 못하는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그냥 타인과 적절한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고 가식적인 웃음으로 쿨하게 협약의 악수나 할 뿐이었다. 안도현의 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진부한 물음 같지만, 쿨을 권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 하나의 경구와 같이 느껴진다. 다 탄 연탄재마냥 차가운 나의 가슴을 이제라도 새 탄으로 갈아 뜨거운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소비의 거리를 배회하는 소년, 소녀들에게도 뜨겁게 살자고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