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글 · 사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주말농장에 옥수수를 심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아내가 올해는 꼭 옥수수를 심어보자고 했다. 어렵게 구해 심은 강원도 찰옥수수 씨앗은 어찌된 일인지 싹이 트지 않았다. 결국 밖에서 모종을 사다 심었다. 옥수수는 늦여름에 먹는 간식거리다. 어린 시절 계절간식은 봄부터 먹는 개떡이 가장 일렀고, 다음이 하지감자였다. 옥수수는 풋콩, 수수 들과 함께 늦여름에 먹었다. 초가을엔 올기쌀, 찬바람이 불 때부턴 고구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며칠 전 고향집에 들렀더니 어머니께서 개떡을 쪄 내놓으셨다. 쑥이나 모시잎을 삶아 쌀가루나 보릿가루를 섞어 반죽한 뒤 손으로 둥글납작하게 개어 만든 게 개떡이다. 국어사전은 ‘개’를 “참 것이나 좋은 것이 아니고 함부로 된 것”이라고 풀이한다. 하지만 개떡도 쑥버무리에 비하면 손이 좀 더 간다. 쑥버무리는 삶은 쑥에 싸라기 가루를 섞어 채반에 찐 것이다. 지금은 곳곳에 쑥이 널려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은 쑥도 아주 귀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수십리 떨어진 산골로 쑥을 뜯으러 갔다가 발에 차이는 해골바가지에 자지러지게 놀랐던 기억을 떠올리시곤 했다.
주말농장 가는 길에 있는 보리밭은 늘 보릿고개를 생각나게 한다. 1956년 4월17일 신문은 “전국 농가의 4분의 1인 50만 가구가 식량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한다”는 농림부 장관의 발표를 실었다. 그러니, 그 무렵 잘 자란 보리밭은 얼마나 고마웠을 것인가? 내가 어릴 적에는 이맘때 설익은 보리이삭을 쪄서 비벼낸 보리를 군입을 다셨다. 설탕이 비싸서, 설탕 대신 굵은 소금처럼 생긴 사카린으로 단맛을 낸 찐보리는 제법 먹을 만했다. 사카린은 인체에 유해하다 하여 지금은 식품첨가가 금지돼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음식에 단맛을 내는 데는 대부분 사카린을 썼다. 1970년대 들어 보릿고개의 어둠은 빠르게 걷혀가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보릿고개는 1977년에 사라졌다. 그러나 부모님은 당신들이 어려웠던 시절을 자식들이 잊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송진 냄새가 나는 송기(소나무 속껍질)를 직접 씹어볼 기회를 갖기도 했다. 막 잘라낸 소나무 가지의 속살은 시원하지만 아무리 씹어도 맛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어른들은 송기를 먹어놓으면 속이 아주 든든했다고 추억한다. 아마 소화가 잘 안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송기죽을 많이 먹으면 변이 마치 흰떡을 뽑아놓은 것 같다고도 했다. 봄바람이 따스해지면 아직 논갈이를 하지 않은 빈 논 바닥엔 뚝새풀(사진)이 잘도 자랐다. 바람이 불면 들녘은 온통 뚝새풀의 파도로 살랑거렸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침마다 염소를 매러 논으로 나갔다. 뚝새풀이 씨앗을 맺으면 염소는 더는 풀을 뜯지 않으려 했다. 그때부턴 사람들이 논으로 나가 바가지로 뚝새풀 씨앗을 훑어담았다. 키로 까불라서 실한 것들만 모은 뒤 그것을 볶아 물과 함께 주린 배를 채웠다. 보릿고개 때 이야기다. “쌀겨를 볶아 먹으면 골머리가 아프지만, 뚝새풀 씨앗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맛도 고소했다”고 어머니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주말농장 주변의 논들에도 요즘 뚝새풀이 춤을 춘다.

주말농장 가는 길에 있는 보리밭은 늘 보릿고개를 생각나게 한다. 1956년 4월17일 신문은 “전국 농가의 4분의 1인 50만 가구가 식량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한다”는 농림부 장관의 발표를 실었다. 그러니, 그 무렵 잘 자란 보리밭은 얼마나 고마웠을 것인가? 내가 어릴 적에는 이맘때 설익은 보리이삭을 쪄서 비벼낸 보리를 군입을 다셨다. 설탕이 비싸서, 설탕 대신 굵은 소금처럼 생긴 사카린으로 단맛을 낸 찐보리는 제법 먹을 만했다. 사카린은 인체에 유해하다 하여 지금은 식품첨가가 금지돼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음식에 단맛을 내는 데는 대부분 사카린을 썼다. 1970년대 들어 보릿고개의 어둠은 빠르게 걷혀가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보릿고개는 1977년에 사라졌다. 그러나 부모님은 당신들이 어려웠던 시절을 자식들이 잊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송진 냄새가 나는 송기(소나무 속껍질)를 직접 씹어볼 기회를 갖기도 했다. 막 잘라낸 소나무 가지의 속살은 시원하지만 아무리 씹어도 맛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어른들은 송기를 먹어놓으면 속이 아주 든든했다고 추억한다. 아마 소화가 잘 안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송기죽을 많이 먹으면 변이 마치 흰떡을 뽑아놓은 것 같다고도 했다. 봄바람이 따스해지면 아직 논갈이를 하지 않은 빈 논 바닥엔 뚝새풀(사진)이 잘도 자랐다. 바람이 불면 들녘은 온통 뚝새풀의 파도로 살랑거렸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침마다 염소를 매러 논으로 나갔다. 뚝새풀이 씨앗을 맺으면 염소는 더는 풀을 뜯지 않으려 했다. 그때부턴 사람들이 논으로 나가 바가지로 뚝새풀 씨앗을 훑어담았다. 키로 까불라서 실한 것들만 모은 뒤 그것을 볶아 물과 함께 주린 배를 채웠다. 보릿고개 때 이야기다. “쌀겨를 볶아 먹으면 골머리가 아프지만, 뚝새풀 씨앗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맛도 고소했다”고 어머니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주말농장 주변의 논들에도 요즘 뚝새풀이 춤을 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