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자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이유
역사는 언제나 이긴 자의 기록이다. 패배자는 역사에 발 디딜 자리가 없다. 그런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광해군이라 할 수 있다. 그가 형제를 몰살하고 왕위에 오른 이방원보다 더 포악했다는 근거는 별로 없다. 또 세조처럼 멀쩡한 조카를 내쫓고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17년 동안이나 왕세자 수업을 받았다.
오히려 그는 임진왜란의 대위기 때 몸을 던져 선조를 보위했고, 왕위에 올라서는 이른바 기미(굴레와 고삐)정책이라 부르는 중립외교로 명·청 교체기라는 동아시아의 격변기를 제대로 읽고 신중하게 대처해 명·청과의 등거리 외교를 실천했다.
그럼에도 그가 폐주(쫓겨난 왕)나 혼주(어리석은 왕), 패륜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광해군>의 지은이는 단지 그가 철저히 패배했고, 쿠데타를 통해 그를 몰아낸 서인 세력이 200년 이상 조선의 권력을 오로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를 폐위한 ‘원칙론자’인 서인들은 조선 왕이 삼전도에서 오랑캐 누르하치에게 세번 큰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당하고, 땅과 백성이 짓밟히고 나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명(중화)을 높이고, 청(오랑캐)을 낮춰 ‘대의명분’을 지키는 일에 몰두했다. 서인들이 광해군을 깎아내리려 했던 점은 실록의 두 번째 초고인 ‘중초본’에서 잘 드러난다. 1621년 6월6일 중초본에는 광해군이 청과의 관계에 대해 “이것이 과연 적(청)과 화친을 하자는 뜻이겠는가”라고 말한 대목이 있으나, 서인들은 정작 <광해군일기>에서 이 대목을 빼버림으로써 광해군이 오랑캐와 손잡은 왕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이 책을 광해군 시대의 일로 읽지 말라고 말한다. 남북 정상이 사상 첫 회담을 열 때 주변의 네 강국이 숨가쁘게 움직여야 하는 21세기 벽두의 한반도, 그 엄혹한 상황을 현명하게 타개해나가는 가르침으로 삼으라는 것이 지은이의 간곡한 부탁이다.
●광해군●
한명기 지음
역사비평사(02-741-6127)펴냄, 9천원

한명기 지음
역사비평사(02-741-6127)펴냄, 9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