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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멋지게 입고 시위에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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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4-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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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낡은 관습과 못된 제도에 대한 도전은 패션으로도 가능하다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요즘 세계 패션계에서는 1920년대가 빅 트렌드로 떠올랐다. 허리선이 엉덩이께로 내려온 로웨이스트 원피스를 입고, 짧은 단발머리에 니트 모자를 쓰고, 신나는 재즈 선율에 맞추어 밤새도록 춤을 추거나 야외에 나가 테니스를 쳤던 아메리칸 플래퍼들이 톰 포드나 알렉산더 맥퀸, 진태옥 같은 디자이더들에 의해 2004년 s/s 컬렉션에서 재현된 것이다.


흔히들 ‘광란의 20년대’ ‘재즈의 시대’라고 표현하는 1920년대를 이끈 주역은 플래퍼(flapper·1920년대 유행에 민감하고 현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 여성)라고 불린 쾌락적인 방탕아들이었다. 대규모 전쟁의 상처를 잊기 위함인지 그들은 아예 흥청망청 놀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그 덕분에 재즈와 춤의 부흥이 왔고,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들이 남자들과 함께 야외로 나가 테니스를 치는가 하면 심지어 오토바이를 타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복식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스커트 길이가 춤추기 좋을 만큼 짧아지는가 하면 허리선이 엉덩이까지 내려온 일자형 원피스가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당시 여자들은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들에게 자신들의 직장을 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몸의 곡선을 없앤 원피스에 남자들과 똑같이 보이고 싶은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처음으로 나이와 계층을 넘어 짧은 머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 파장이 얼마나 컸으면, 당시 중국에서는 단발머리에 대한 세금 부과를 제안하는가 하면, 일본 경찰들은 아예 볼셰비키라고 선언했을까.

그런데 민족사의 암흑기이던 1920년대 조선 풍경도 예사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이 거리의 새로운 유행을 주도하고 있었다. 당시 여학생들은 뒷머리를 틀어올린 서양식 트레머리에 장옷 대신 양산을 쓰고 정강이께에 오는 짧은 통치마를 입고 양말에 굽 높은 구두를 신었는데, 기생들이 이를 흉내내고 다닐 정도로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세태를 탓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이 존재했다. <모던수필> 중에서 박팔양이 쓴 ‘진실한 의미의 모던이 되자’는 산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모던 보이, 모던 걸 하면 철없이 시쳇것만 좋아하는 천박한 남녀들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최신식 유행의 짧은 옷을 입고 괴상한 모자를 쓰고 굽 높은 구두를 신는 것이 현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낡은 인습과 옳지 못한 제도에 대해서 그것을 철저히 비판할 총명한 머리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박팔양은 “실천은 가장 전투적으로!”를 외치는데, 그게 <조선일보> 1929년 4월10일치에 실린 글이라는 점이 더욱 재밌게 느껴진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2004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가장 모던한 부류’는 어떤 사람들인가?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50대 기성작가들이 ‘걸핏하면 시청 앞에 모여 왁왁대는 천둥벌거숭이’라거나 더 심하게는 ‘홍위병’이라 야단치던 젊은이들을 떠올렸다. 요즘 어른들에게 가장 걱정스러운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이야말로 ‘가장 모던한 부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유행을 선도할 수 있을 만큼 옷을 잘 입어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낡은 관습과 못된 제도에 대한 도전은 ‘자발적 시위’나 ‘투표’로도 할 수 있지만, 패션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같은 구호 아래 각자 따로 놀았다. 서로 상종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이 함께 놀기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멋지게 차려입고 시위에 나가는 게 최신 트렌드가 된다면? 아마 그 파장은 엄청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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