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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자전거와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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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4-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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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 10대 탈학교생 queer_kid@hanmail.net

나는 종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지였던 세계는 미디어를 통해 이미 보고 습득한 뻔한 공간이 되었다. 세상이란 게 얼마나 뻔한가”라고 노트에 끼적이곤 했다. 얼마 전의 일본 여행은 잡다한 매체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마치 자신이 체득한 결과물로 착각했음을 깨닫게 한 계기였다. 일본에서 가장 놀라운 문화적 체험은 자전거가 다니는 도시의 풍경이었다. 매캐한 도로 위에 자전거와 자동차가 뒤엉킨 모습을 일본에서 볼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본의 자전거 문화는 자전거를 애용하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신주쿠에 3일 동안 머물렀던 나의 경험이 일본 열도 전체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일본의 메트로폴리탄 거리마다 주차된 자전거 부대는 도시에 사는 다수의 인구가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나라 거리에서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왜 두 나라간의 자전거 이용자 수가 극명히 차이가 나는 것일까? 추측하건대, 700원 하는 교통비가 부담돼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던 나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살인적인 교통요금이 자전거를 타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적 환경을 보아야 한다.

서울은 항상 공사 중이다. 도로 공사, 지하철 공사, 건축 리모델링 등 어디를 둘러보아도 공사 중인 서울에서 마음 놓고 페달을 밟을 곳은 없다. 울퉁불퉁한 도로와 잠시도 안심할 수 없게 만드는 높은 턱들을 달리다보면 핸들이 꺾이고 냅다 자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도 내 무르팍에는 자전거를 타다 턱에 걸려 넘어져 깨진 상처가 흉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도시가 이상할 만치 깨끗하고 자전거를 타기에 알맞은 낮은 턱과 고른 도로를 자랑한다. 이런 도로 사정을 보면,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를 금방 실감하게 된다.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의 이동권은 도시에서 자전거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한국의 경우 인도에 사람이 넘쳐 도로로 달릴 경우 잠시 방심하는 순간 자동차의 거친 클랙슨 소리와 빨리 비키라는 운전자들의 욕설을 듣게 된다. 능숙하게 자전거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전거를 타기 전 자동차의 위협에 겁부터 먹는다. 일본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친구가 말하길 일본은 사람, 자전거, 자동차 순으로 이동을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자전거를 이용하기 알맞은 도시 공간이란, 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문화가 일상 속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여성이 아닌 내가 생각하기에 생리 중인 여성이 자전거를 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여성을 위한 자전거를 찾아보았지만, 여자는 정비된 도로의 멋진 가로수만 달리라는 말인지 팬시적으로 디자인된 몸체에는 충격을 완화하는 ‘쇼바’가 없었고, 옵션으로 달린 바구니는 장바구니로 사용하라는 것인 듯싶었다.


자전거마저 성차별을 조장하는 사회와 자전거를 타기엔 너무도 위험한 환경 속에서 자전거 도로만 조성해서는 교통문화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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