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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2000년, ‘부성’이 거세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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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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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리에 서기를 두려워 하는 자기애 강한 남성이 우리 시대 문학의 아이콘으로

남자들이 아버지가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아니고 문학상에서의 이야기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가 아닌 2000년대, 우리 소설에서 나타나는 아버지들은 더이상 전통적인 아버지상을 거부한다. 서울구경 시켜준다며 발바닥 위에 애를 놓고 어르는 아버지, 구들장이 울리도록 방귀를 뀌어대는 <태백산맥>의 아버지는 이제 없다. 30대 중반, 소설 속 신세대 아버지들은 전 세대의 아버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나를 버린단 말이지.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나를, 저 많은 아기들을 나에게 다 넘기고 뉴욕으로 가서 화가가 된다고. 나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버린다고 했는데, 자기를 위해서는 나를 버리는군.” 배수아의 <프린세스 안나>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키크고 잘생기고 부유한 건축설계사다. 거기에 사냥을 즐기고 자유없이 못 사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다.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세 아이를, 처제와의 사이에서 한 아이를 만든다. 그리고는 화가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결국 미국 노인전용 주유소의 종업원이 되지만 설혹 희망했던 화가가 되지 못한다 해도 그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보부상으로 떠돌며 바람을 피워도 일년에 한번은 제자리에 돌아오던 <미망>의 시아버지와는 전혀 다르다. 물론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60년대에 시작하지만 200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배수아가 본 아버지는 이런 것이었다.

억지결혼, 혼외정사, 이혼, 버려진 아이들


심지어 이들 새로운 아버지들은 애초부터 2세를 거부한다. 자기 핏줄이기를 바라며 아기 발가락까지 뒤집어보던 M(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이나, 은실네 아들 봉필이는 날 빼다박았네 서로 우기던 동네 남정네들(박영한의 <은실네 바람났네>)과는 대조적이다. 은희경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강진희의 남자 현석의 입을 통해 선언한다. “내가 늘 말하잖아. 결혼도 안 하고 나 같은 자식도 안 낳을 거라고.” 이미 90년도 초반부터 주인석도 “나 같은 자식은 낳지 않겠다”(<희극적인, 너무도 희극적인>)라고 말하는 주인공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희극적인…>의 주인공은 ‘나 같은 자식’을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데 실패한다. 실패해서 아버지가 되어버린 남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은희경은 “결혼한다, 애정없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강진희의 또다른 남자 종태는 신문기자다. 종태는 자기를 짝사랑하는 여자와 어찌어찌하다가 아이를 만든다. 임신의 대가로 그는 억지결혼을 하지만, 결혼이 그의 연애사업에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멋있는 미혼남에서 멋있는 유부남으로 변했을 뿐이다. 또다른 자식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피임에 완전을 기하는 것이 그가 첫 실패에서 배운 교훈이다.

생각없이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되어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해도 이들 새로운 아버지들은 사회적으로 ‘아버지’의 자리에 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최근 출간된 차현숙 소설집 <오후 3시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에 수록된 단편소설 ‘2와 2분의 일’에서 그려낸 아버지의 모습이 그러하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남자주인공은 제대로 자식 노릇을 해본 적도, 아버지 노릇을 해본 적도 없는 철부지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를 한명의 어엿한 지식인이고, 계속해서 인생공부를 해나가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인생공부를 하는 방식은 연애다. 그는 유명한 여류화가와 혼외정사를 하며 “연애만큼 좋은 인생공부가 없어”라고 합리화한다. 그는 아내에게도 “당신도 기회있으면 연애 좀 해봐”라고 권한다. 이에 아내는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복수한다. 이혼하자는 것이다. 이혼을 가볍게 생각한 남자는 생각지 못한 함정에 빠진다. 남자는 이제까지 몰랐지만 남자의 어머니는 치매증상이 있고 집안의 남은 돈은 동생이 날렸다. 거둬보지 않던 자기의 아이들과 동생의 아이들은 보호의 손길을 바란다. 아내가 떠나면 이 모든 걸 자기 혼자 꾸려내야 한다. 20대의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온 어린 아버지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남자는 성교로서 아내를 묶어두려고 시도한다. 자신이 자식으로서의 책임, 아버지 구실을 하지 않아도 되는 길은 그 일을 대신할 아내를 두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귀결로, 아버지에게 거부당한 자녀들은 이제 더이상 신성한 존재가 아니다. 일찍이 <토지>에서 박경리는 “혈육이란 뜨겁고 신비한 것”이라고 구천의 입을 빌려 정의했으되, 2000년대 문학에서 자녀들은 때때로 아버지의 우아한 인생을 방해하는 존재다. 차현숙의 소설 ‘세상에 빛이 있어라’는 아버지 되기를 포기한 남자와 어머니 노릇이 지겨운 여자 사이에서 어린이가 어떻게 상처받는지를 그린다. 이혼한 아버지는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여자가 필요하다고 어린 자식에게 토로하고, 어머니는 “난 더이상 못 견디겠다”며 아빠에게 가라고 아이를 현관 밖으로 내몬다.

새로운 ‘피터팬’ 탄생의 의미는?

문학은 사회의 반영이다. 이렇게 아버지가 되기를 거부하는 남성이 문학의 한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에 대해 정신과 의사 하지현 박사는 두 가지로 풀이한다. 현재 30대 초·중반의 성인들이 30년 전의 부모들보다 자기애가 강한 편이다. 자기애가 강하므로 혼자 살 때의 행복에 만족해 다음 단계의 행복을 불필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또 한 가지는 성인이 요구받는 사회적 성과물이 점점 많아진다는 게 이유다. 나이는 있는데 이상은 높고, 이상에 맞춰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자기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음 발달단계, 즉 아이를 가진 성숙한 아버지의 역할로 넘어가는 것이 두렵고 싫은 것이다.

성장이 싫은 피터팬에게 아내의 반응은 싸늘하다. ‘2와 2분의 1’의 아내는 결별을 고하며 말한다. “이 모든 일을 하다 보면 당신도 뭘 알게 될 거예요. 자신에 대해. 당신이 좋아하는 인생에 대해서 말이에요. 연애에서만 자신을 알고 인생을 아는 게 아니거든요. 자신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걸 제대로 알려면 부모가 뭔지, 자식이 뭔지를 한번 지옥처럼 겪어봐야 해요.”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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