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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반역’ 수준의 멍청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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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4-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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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들의 눈으로 게릴라전을 본다면 이라크 화약고로 뛰어든다는 건 단순한 멍청함이 아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우려했던 것처럼 이라크 전쟁은 제2의 베트남 전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 연인원 32만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고도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반성도 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또다시 미국의 동맹국된 도리를 다한다며 대규모 병력의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 이웃 일본만 해도 3명의 민간인이 납치되어 나라가 공황 상태에 빠졌건만, 우리는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됐던 목사 일행이 무사히 풀려난 것에 대해 한국인이 이라크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아서 그렇다는 허황된 설명을 내놓고, 총선에만 관심을 보내고 있다.

이라크 게릴라들에게 납치된 일본인 인질들. 민주주의 발전은 이제 꼭 유력인사나 그 가족이 아니라 시민 누구나를 납치해도 본국 정부에 엄청난 압력으로 가해지게 되었다.(사진/ AP연합)

중동국가 대부분과 원수가 되려나


한국군의 파병지를 정하지 못해 전국민에게 이라크 지리에 대해 공부시키기로 작심한 듯 여기저기를 찍어대던 정부가 급기야 이라크 북부의 에르빌과 술라이마니야 두곳 중의 하나에 한국군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이라크 민중들이 교파를 초월해서 반미 항전에 나서는 마당에 하필이면 쿠르드 지역이라니! 장기나 바둑에서 흔히 보는 장고 끝에 악수를 연상케 한다. 아니, 그보다는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에서 거듭된 거짓말과 오판이 쌓여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국군이 이라크에 가게 된다면, 한국군은 ‘평화재건’과 ‘전후복구’라는 애초의 목적과는 매우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미군의 주둔 자체가 이라크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깨뜨리는 직접적인 요인인데, 미군을 도우러 이라크에 간다면 이라크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평화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 파병 세력은 전쟁이 끝났다고 호도하면서 추가 파병을 추진했지만, 이미 이라크 전쟁은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전쟁터에 군대를 내보내면서 안전한 주둔지를 찾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유격전에서 게릴라들에 의해 공격을 받을지 안 받을지는 100% 게릴라 마음이다. 엿장수 가위질을 몇번 하느냐가 엿장수 마음인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군 파병지로 예정된 쿠르드는 중동에서는 거대한 화약고이고, 미군의 주둔으로 마치 활동을 재개한 휴화산과 같은 지역이다. 지금까지 폭발이 없었다는 것은 안전성의 증거가 아니라, 다가오는 위험의 증거일 뿐이다. 터키가 미국이 제공하는 8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원조에도 이라크 파병을 포기한 것도 쿠르드 문제의 복잡성 때문이다. 당장 한국이 쿠르드 지역에 주둔하기로 하자 터키는 한국에서 수입하기로 한 10억달러 규모의 방산품목에 대한 구입 취소를 검토한다는 압력을 행사했다.

점점 더 궁지에 몰리는 미국이 이라크의 종족 갈등을 부추겨 누구도 이라크를 유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거나, 아니면 이라크 내 투르크족의 분리독립을 추구하게 된다면 미군을 대신해서 투르크 지역에 군대를 파견한 한국은 터키·이란·이라크·시리아 등 중동 국가 대부분과 원수지간이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이미 폭발한 화약고라면 쿠르드 문제는 엄청난 폭발을 기다리는 제2의 화약고이며, 주변국과의 관계뿐 아니라 쿠르드족 내부 역시 복잡하기 짝이 없다. 변변한 투르크어 통역 한명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지난 몇달간 큰 사고가 없었다는 이유로 대규모 병력을 그 화약고에 보내겠다는 것은 단순한 멍청함이 아니다. 반역 수준의 멍청함이다.

문제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한국군에 대한 공격이나, 한국인들에 대한 납치 등 테러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히딩크 감독 식으로 표현한다면 매일 1%씩 높아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 역시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불행한 예측을 하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한국인의 이미지가 이라크에서 좋다는 말로 허황되게 냉엄한 현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한국군이나 한국인이 공격을 받을 것인가의 여부는 철저하게 이라크 저항세력의 입장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라크전의 상황 판단을 위해선, 게릴라의 눈으로 게릴라전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병전쟁과 독립전쟁이라는 아주 훌륭한 게릴라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 경험을 참고하면서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어떤 대접을 받게 될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의 의병전쟁과 대입해 본다면…

이라크 게릴라들의 최종 목표는 미국 없는 이라크의 재건이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손을 떼도록 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라크 침략을 감행한 부시가 11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해야 한다. 부시 입장에서는 엄청난 전비와 미군의 지속적인 손실이 큰 부담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국제사회가 자신의 이라크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모습을 미국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유엔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 손을 들어주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라크에 추가 파병을 하겠다고 자원한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그동안 일련의 사태 진전으로 터키는 파병을 철회했고, 스페인·이탈리아 등이 철군이나 감군을 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부시가 국제사회로부터 큰 지원을 받으면서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있던 지원마저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다국적군 내에서 3위에 해당하는 대병력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이라크 게릴라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파병 철회는 부시가 미국 내에서 이라크 전쟁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내보일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찢어버리는 것이 된다. 독자 여러분이 이라크 저항세력의 지도부라면 한국이 그동안 중동건설 등으로 비교적 좋은 이미지를 쌓았다고 공격 대상에서 제외하겠는가?

1905년 일본군에게 처형당하는 조선 의병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가 특정 지역에 동남아나 아프리카 군대를 끌어들여 주둔시켰다면, 그 군대가 아무리 대민사업을 잘해도 우리가 그들을 환영할 것인가.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는 우리 의병전쟁이나 독립전쟁에다 대입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가 우리 민중의 저항에 직면하자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군대를 끌어들여 특정 지역에 일본군을 대신하여 주둔시켰다고 생각해보자. 그 군대가 아무리 대민사업을 잘해도 우리가 그들을 환영할 것인가? 아니면 몰아내야 할 점령군의 일원으로 볼 것인가?

미국의 이라크 해방론이나 이라크 민주주의를 위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로 20세기 초반기에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써먹었던 논리와 유사하다. 조선은 전제군주하에 신음하고 있으니, 문명개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보호가 절실하다는 일제의 주장은 전쟁과 침략을 문명전파의 수단으로 정당화하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 논리의 선배 격이다.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미국은 진심으로 후세인을 몰아내면 후세인의 독재 아래 신음하던 광범위한 이라크 민중들이 거리로 나와 미군을 환영할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은 당시 대한제국의 내각을 장악하고, 또 일진회를 통해 친일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지만, 대중들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었다. 반면 미국은 이라크에서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으로 믿었던 시아파와도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은 한국을 강제병합한 뒤에 일진회를 버렸지만, 일진회 출신들이 독립운동에 대거 가담하는 사태를 맞지는 않았다. 이와 비교한다면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은 20세기 초반 일본의 조선 점령 당시 받았던 저항보다 더 큰 저항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과학 및 통신 기술의 발달은 유격전의 양상을 확 바꿔놓았다. 지금 일본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고, 우리도 피해가기 어려울지 모를 납치만 해도 그렇다. 납치는 게릴라전이란 말이 생기기 아주 전부터 사용돼온 고전적인 수법이다. 과거에는 납치의 대상이 주로 유력자의 자식이나 부자, 또는 그 가족이었고, 납치의 목적도 주로 몸값을 얻어내거나 붙잡힌 자신들의 동료와 교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민주주의의 발달은 납치라는 고전적인 수법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필자가 전공한 만주의 항일 유격전쟁에서도 납치는 주로 현지의 부자들로부터 몸값을 뜯어내거나 (때로는 협조적인 부자들이 일제나 만주국 당국의 처벌을 피하면서 유격대를 지원할 수 있도록 짜고서 납치하기도 한다), 아니면 일본인을 잡아다가 유격대가 살인, 방화, 약탈, 강간을 일삼는 파렴치한 범죄집단이 아니라 기율이 확실히 잡힌 혁명군대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일어났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1930년대만 해도 현지인들 이외에 외국 민간인들이 유격전의 현장 근처에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 유격전의 현장에는 기자나 평화운동가를 비롯해서 많은 민간인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납치의 양상은 어떻게 바뀌었나

통신수단의 발달도 납치의 양상을 바꿔놓았다. 동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인질들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은 납치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이제 꼭 유력인사 본인이나 그 가족이 아니라 시민 누구나를 납치해도 본국 정부에 엄청난 압력으로 가해지게 되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제국주의 세력은 자국 시민이 공격당한 것을 침략의 구실로 삼곤 했는데, 이 와중에서 강조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는 제국주의 국가와 싸우는 세력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공격 목표를 제공해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산 채로 불태워 죽인다는 끔찍한 경고, 그러나 소이탄이 떨어지는 그 현장에서 산 채로 타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일상일 뿐이다.

유격전에서 게릴라들의 공격을 받을지 안 받을지는 100% 게릴라 마음이다. 엿장수 가위질을 몇번 하느냐가 엿장수 마음인 것과 마찬가지다.(사진/ AP연합)
통신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제국주의 세력은 게릴라전에 대한 유력한 수단을 행사하는 데에서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되었다. 1991년의 걸프전 때만 하더라도 전 세계의 많은 시청자들은 을 통해 패트리엇 미사일의 성능에 감탄하면서, 전쟁을 산뜻하고 경쾌한 전자오락같이 즐겼다. 미국의 전쟁 세력은 철저한 언론통제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장면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0여년 만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게릴라들은 자신들의 방송을 통해 전쟁 세력이 감추고자 했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강조하듯이 산뜻한 전자오락이 아니라, 잘려나간 팔다리, 그리고 으깨진 머리통에서 흘러나오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피와 허연 골이 범벅이 된 참혹하기 짝이 없는 행위라는 점은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거실에까지 막힘없이 전달되게 되었다.

김일성 덕분에 베트남 추가파병 면했다?

특히 당연히 이라크에서 환영받을 줄 알았던 자국 병사들이나 요원들이 참혹하게 살해되고, 그 주검까지 손상당하는 광경을 거실에서 보게 된 미국인들은 과연 이 끔찍한 전쟁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

유격대에 의해 공격을 받으면 침략군들은 유격대의 기반이 되는 인근의 마을을 공격하여 초토화하는 전술을 자주 써왔다. 미군 안전요원들의 주검 훼손에 대한 보복으로 미군이 팔루자에 엄청난 화력을 퍼부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보복전술도 이제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사실이 즉각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미군은 민간인 피해가 전혀 없다고 강변했지만, 그런 변명은 끔찍한 현장의 사진에 묻혀 들리지도 않게 돼버렸다. 과거에는 이런 보복전술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이제는 전쟁범죄에 대한 전 세계적인 분노를 가져올 뿐이다.

한국의 ‘묻지마’ 파병론자들은 한-미 동맹 때문에 이라크에 하루빨리 군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 군대를 보내주면 그것으로 끝일까? 베트남전에서 박정희가 처음부터 32만 대군을 보내려 했을까? 박정희도 처음에는 의무대와 태권도 시범단을 보냈고, 2차 파병으로 공병인 비둘기 부대 2천명을 보냈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박정희가 자원해서 보낸 병력일 것이다. 심지어 <조선일보>조차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 진 빚을 비둘기 부대 파병으로 다 갚았다고 사설에서 썼다. 그런데 미국은 3차 파병으로 1개 사단 2만명을 요구해 박정희는 1만8천명을 보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은 4차 파병에서 또다시 1개 사단을 요구하면서 3차 파병에서 완전히 채우지 못한 사단 병력을 채우라 해서, 정부는 2만3천명을 보내야 했다.

미국은 다시 5차 파병으로 3천명을 요구하여 정부가 이에 응하자 다시 6차 파병 교섭에 들어갔다. 한국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식으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미국의 파병 압력을 벗어난 것은 역설적으로 김일성 때문이었다. 박정희를 암살하려고 1968년 1월21일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청와대를 습격하고, 이틀 뒤에는 미국의 최신예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끌고 감으로써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던 것이다.

국제사회의 약속이라 해서 우리가 그 위험한 지역에 우리 젊은이 3천여명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금방 추가 파병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때 추가 파병에 가장 목을 맬 사람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목표가 돼버린 자이툰 부대장이다. 베트남에서 우리가 끊임없는 파병놀음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이른바 ‘독자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과연 어느 규모를 보내야 독자 작전이 가능한 것일까? 베트남전 때에는 군단 규모의 5만명을 보내고도 제대로 독자 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병력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윤동주의 <서시>를 생각하며

교수 생활을 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라크에 내 학생이 둘이나 가게 되었다. 군복무 중이었던 한명은 어릴 때 터키인가에 오래 살아서 아랍어를 잘한다고 통역요원으로 가고, 다른 한 학생은 평화운동가로서 이미 여러 차례 이라크를 다녀왔고 다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베트남 파병을 공부하면서 슬펐던 것은 아무도 그 젊은이들에게 베트남에서 무엇이 기다리는지를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 역시 통역요원으로 이라크에 가게 되었다는 제자의 전화를 받고는 몸조심하라는 말밖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가 쏜 총알은 그 자신의 일생을 관통할 터인데….

얼마 전 어느 콘서트에 갔다가 윤동주의 ‘서시’에 곡을 부친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사회자는 ‘서시’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가 사랑하는 시라고 소개했다. 국익을 위해서는, 한-미 동맹을 위해서는 파병은 어쩔 수 없다는 마음과 잎새에 이는 한점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그 두 마음 속에서 어느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진짜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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