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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요셉] 신과 인류 최초의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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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4-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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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고난의 주인공 요셉, 그가 신의 은총을 받는 경영자로 부활하기까지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늙은 아비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소년 하나가 질투에 눈먼 배다른 형 10명의 음모로 웅덩이에 던져졌다가 결국 노예로 이집트에 팔려간다. 가나안 출신인 이 노예 소년은 뛰어난 재주를 보여 주인집의 총무가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침을 요구하는 주인 처의 유혹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이 여자의 무고로 다시 감옥에 갇혀버리고 만다. …그가 감옥에서 서른을 맞았을 때 이집트를 다스리는 파라오가 이상한 꿈을 꾼다. ‘물가에서 꼴을 뜯던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에게 먹히고…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다시 비리비리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에게 삼키운다.’ 온 이집트의 술객과 박사들이 이 꿈을 해몽하지 못할 때 신의 은총을 받은 이 노예는 ‘앞으로 일곱해 동안의 풍작과 일곱해 동안의 흉작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그는 이어 풍년 때 성마다 전체 수확의 5분의 1씩 비축해 흉년에 대비할 것을 건의한다. …이 놀라운 능력으로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 이집트 사람들을 먹여 살려낸다… 나아가 그는 자신을 죽이려 하고 노예로까지 팔았던 배다른 형들을 끝내 용서하고… 아버지와 온 형제의 가족들을 이집트로 인도해 멸망으로부터 구원해낸다.”

창세기 35~50장… 이집트 역사서엔 발견 안 돼


구약성서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가슴 아프면서도 감동적인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요셉의 이야기는 그 놀라운 예술성과 종교적 성격으로 수천년 동안 인류의 심금을 울려왔다.

요셉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구약성서 창세기 35장부터 50장까지에만 나와 있을 뿐 이집트 역사서에선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재했다면 거의 3700~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물인 것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정황적으로는 적어도 한번 이상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람들이 기근을 피하기 위해 이집트로 피난한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 이집트 세소스트리스 2세 시대(기원전 19세기 초)의 것으로 보이는 베니하산(Beni Hassan)의 크눔호텝 무덤벽화는 족장 입샤(Ibsha)의 인도로 37명의 아시아계 성인남녀와 아이들이 이집트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람들이 다양한 색채의 줄무늬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채색옷’을 연상시킨다. 요셉을 편애한 아비 야곱이 요셉에게 바로 ‘채색옷’을 입히고 있다. 나아가 메르넵타 8년에 작성된 ‘보고서’에는 파라오가 에돔에서 온 베두인족에게 ‘그들과 가족의 생명을 부지할 수 있도록’ 입국을 허락하고 있다. 일곱해 동안의 풍년과 일곱해 동안의 흉년에 대해선 당시 이집트의 농업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견해도 나온다.

이집트 농업을 보여주는 피라미드 내부 벽화. 구약에 따르면, 요셉은 정보경영과 국가 재해대책 시스템으로 국가 주도형 재테크를 실현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의 홍수량이 25~26피트 정도에 이르기를 간구해왔다. 이 홍수량의 수치를 기준으로 그해의 소출을 대략 결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홍수량이 20~21피트 정도에 그친다면 그해 곡식 소출은 약 20% 줄어든다. 반대로 홍수량이 필요량보다 20% 많은 30피트 이상을 기록하면 모든 수로와 제방까지 무너뜨려 많은 인명피해를 낸다. 나아가 요셉과 그 형제들을 기원으로 하는 유대인의 12지파가 나중에 이집트에서 빠져나와 가나안 지역으로 간 것은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1860년에는 성서의 요셉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두 형제 이야기’(The Tale of the Two Brothers)가 이집트에서 발굴된 바 있다. 여인의 유혹을 거절하자 모함으로 이어져 투옥되는 구조 등이 매우 비슷하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다음과 같은 가설이 가능해진다.

1. 기원전 17~19세기 무렵 이스라엘 지역에서 장기적인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들어온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2. 이 사람들의 지도자가 이집트의 농업을 주관하는 지위에 올라 장기 기근에 효율적으로 대처해 이집트는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도 구원해냈다.
3. 이 지도자가 동원한 방식은 전 국가적 식량 비축, 치수 사업, 광대한 토지 재개발 사업 그리고 경작지의 국유화 사업 등이었을 것이다.
4. 종교적·혈통적 측면에서 확실한 정체성 의식을 지녔던 이 집단은 당시 이집트에 있던 실화 또는 설화에 이 지도자의 전기를 결합시켰다. (아니면 그 자신의 실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점과 관련해 구약 역사학자인 유진 메릴은 흥미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요셉이 이집트에 온 것은 기원전 19세기 말엽 세소스트리스 2세 치하 때일 것이다. 세소스트리스는 많은 아시아 노예들이나 용병을 썼다. 그의 치하에서 광대한 토지 재개발 사업과 치수 사업이 벌어졌다. 당시 파윰 분지(Payyum Bassin)와 나일강을 연결하기 위해 수로를 팠는데, 이 수로의 유적이 오늘날도 ‘요셉의 강’(Bahr Yusef)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요셉의 핏줄들을 이집트 동부 삼각주에 정착하도록 초청한 것은 세소스트리스 3세일 것이다. …세소스트리스 3세 때 전무후무한 농업정책, 국가정책이 실시됐으며… 모든 종류의 장인들과 상인들이 정확하게 이 세소스트리스 3세 때 출현했다.”

백성들의 토지 박탈과 노예화 불렀다?

과연 이집트 세소스트리스 부자의 치세 때 벌어진 일은 무엇일까? 그 일에 요셉은(실제로 그 시기에 존재했다면)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 사라진 고리를 이어주는 것은 현재로선 구약밖에 없다. 구약에 따르면 요셉은 추수기에 비축해둔 식량을 팔아… 곧 그 땅의 모든 돈을 모아들인다. 이어 그는 양식을 위한 대가로 가축을 받았으며, 나중에 토지와 사람들까지 받았다. 그 뒤 사람들에게 종자를 주어 파라오의 소유가 된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하고 그 추수의 5분의 1을 세금으로 내게 했다. 나머지 5분의 4는 종자와 양식으로 삼게 했다.

형들에 의해 웅덩이에 던져지는 요셉. 그는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 나중에 총리직에 오른다.
정확한 농업생산량을 예측하는 정보경영, 풍작 때 흉작을 대비하는 국가 재해대책 시스템,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백성들을 먹여 살리고 그 반대급부로 토지 국유화를 관철시키는 국가 주도형 재테크…. 이건 아무리 현대의 날고 기는 통치자들이나 경영자들도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거기다가 외국 이민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경지를 확대하는 한편 축산업이라는 새로운 첨단산업도 도입한다. 이로써 고난받는 자 요셉은 ‘신의 은총을 받는 경영자’ ‘먹여 살리는 자’ 요셉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러나 요셉의 사업은 역사적으로 논쟁거리가 돼왔다. 그 실재성과 상관없이 성경에 나타난 그 재테크의 도덕성 때문이다. ‘신이 실행한 인류 최초의 거대한 재테크’가 결국은 백성들의 토지박탈과 노예화라고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사회주의자는 물론 진지한 도덕주의자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1세기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

이에 대해 요셉 연구자이기도 한 작가 토마스 만은 이런 견해를 내보인 바 있다. “당시 돈이 없을 때로서 보물과 귀한 금속을 낼 수 있는 대지주나 귀족들에게는 비싸게 팔았을 것이다. (국가 경영에 전혀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그들이 표적이었다.) 그리고 돈을 대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가축들은 형식적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원래 있던 축사와 집에 그대로 있었다. 일종의 담보를 잡은 형식이라고 보는 것이 더 가깝다. …토지도 영주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토지의 소유권을 파라오에게 넘기고 작은 영토로 나누어 소작인들에게 경작을 맡긴 것이다. 나아가 5분의 1만 국가에 세금으로 내도록 한 것은 이전의 세금 비율과 사실상 같다. …이걸 악의적인 착취와 노예화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

그래도 모든 회의가 확실하게 풀리지만은 않는다. 동양에 있었던 것과 같은 국가 창고, 재해 때 무상지원 방식은 재난의 규모가 너무 크기에 적용할 수 없었던 것일까. 어쨌든 유진 메릴은 세소스트리스 3세 때의 정책이 중산층의 형성을 도왔을 것이며, 실제로 다양한 장인과 상인들이 등장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이 풀리지 않는 회의랄까, 의문은 신의 도덕성, 재테크의 정당성에 대한 인류 근원으로부터의 목소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요셉, 스탈린, 괴벨스, 티토, 풀리처…

유고 지도자로 비동맹운동을 이끈 요시프 브로즈 티토.

요셉은 영어식으로는 조지프로 발음된다. 스펠링은 ‘Joseph’이다. 이 이름은 고난을 받은 사람들, 신의 은총을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의 이름으로 그 역사를 이어왔다. 이런 인기를 반영해 무수히 많은 사람이 이 이름을 썼다. 그 결과 성인으로부터 독재자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수많은 사람이 또다시 역사에 요셉(조지프 또는 요십, 요제프 등)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법적 아버지도 이 이름이다. 마리아와 정혼한 그는 마리아가 혼전에 임신한 셈인데도 ‘천사에게서 계시를 받고’ 그대로 결혼한다. 그는 성자로서 나중에 가톨릭교회 전체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다.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아버지도 이 이름을 썼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금융업과 조선업, 영화산업 등으로 백만장자가 된 조지프 피츠제럴드 케네디는 그 자신이 영국 주재 대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아들들이 각각 미국의 대통령, 법무장관, 상원의원이 됐다. 소련의 스탈린(Joseph Stalin)도 이 이름을 썼다. 레닌이 죽은 뒤 트로츠키와의 권력투쟁에서 이긴 그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30여년 동안 소련공산당 서기장, 총리로서 절대권력을 누리며 소련을 통치했다. 나치 독일의 선전상을 지낸 괴벨스도 요제프라는 이름을 썼다.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로 비동맹운동을 이끈 티토도 정식 이름이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다. 나치 독일에 대한 빨치산 투쟁 등의 경력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지녔던 그의 죽음은 유고연방의 해체로 이어졌고, 그 결과 발칸반도 지역은 처참한 민족분규로 20세기 후반 대표적인 비극의 현장이 돼버렸다.

영국의 해양소설가로 콘래드(Joseph Conrad)도 ‘조지프족’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폴란드계의 이 작가는 <로드 짐>(영화로도 나왔음), <노스트로모> <어둠의 심장> 등의 작품을 남겼다. 미국 퓰리처상의 기원이 되는 언론인 퓰리처의 이름에도 조지프가 들어간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었던 조지프 퓰리처는 현대신문의 기초를 닦았으며, 그의 이름을 딴 상은 1917년 이래 미국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저널리즘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1년 정보격차에 따른 시장이론의 기초를 세운 공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으로 받은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도 이 이름을 쓰고 있고, <신화의 힘> <신의 가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등 신화학의 걸작을 남긴 캠벨(Joseph Campbell)의 이름에도 조지프가 들어간다.


토마스 만이 사랑한 요셉

요셉의 이야기는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의 손으로 거의 4천년 만에 다시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인류 앞에 부활한다. 만은 장편소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일반적으로 <마의 산>이 대표작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요셉 이야기를 다룬 <요셉과 그 형제들>을 최고의 걸작으로 꼽을 정도로 아끼고 사랑했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토마스 만은 이 이야기를 깨알 같은 글씨로 7천장을 써내려가 4권의 소설로 만들었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1926년 12월부터 1943년 1월까지 13년이 걸렸다. (중간에 <바이마르의 로테>를 쓴 4년 정도를 빼고 계산한 것이다.) 원래 요셉의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많은 성화로 재현되곤 했다. 벨라스케스도 그 가운데 하나다. 세계적인 문호 괴테도 이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어했다. “(성서 속의 요셉 이야기는) 너무 짧다. …작가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세세하게 그려내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괴테가 아닌 만이 이 일을 완성한 것이다. 그는 이 대소설을 쓰기 위해 문헌연구나 답사여행도 엄청나게 해야 했다. 이렇게 투여한 기간까지 합치면 소설이 나오기까지 거의 16년이 걸린 것으로 집계된다. 모두 4권으로 된 소설의 첫 번째인 <야곱 이야기>는 1933년 나왔다. 바로 그해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했다. 당시 강연을 목적으로 국외여행 중이던 토마스 만은 체포령이 떨어져 귀국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전에 ‘반공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어리석음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꼬투리 삼아 나치 당국이 그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몰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공언했다. 공산주의자 논쟁이 아니더라도, 유대인을 주인공으로 하기에 이 소설은 독일에서는 출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나치 당국에 의해 재산을 모두 몰수당하고 국적까지 빼앗긴다. 마치 자신이 요셉이 된 것 같은 고난을 겪으며 토마스 만은 대작 <요셉과 그 형제들>을 써나갔다. 만 자신도 힘든 상황을 이길 수 있게 도와준 것이 이 소설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역사·신화·유적 등은 물론 유럽의 지성사를 두루 섭렵하는 산고 끝에 소설이 세상에 나오자 평론가들은 맨 먼저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독서량에 혀를 내둘렀다. 나아가 같은 시대를 살던 헤르만 헤세,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격찬하는 등 소설은 세상의 높은 평가를 받는다.


[ 온 + 오프 항해지도 ]

▶ 중고생
-<성경 창세기 35~50장>

▶▶ 대학생 이상
-<요셉과 그 형제들> 토마스 만/살림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 제사장의 나라> 유진 메릴/기독교문서선교회
-<구약성서배경사> 문희석/대한기독교서회(사진)
-〈JOSEPH〉 Charles Swindoll/W Publishing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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