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전고투 끝에 탄생한 서울시네마테크가 ‘작가’들의 요람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영화가 가장 사랑받는 문화상품이 된 시대에 ‘할리우드 키드’란 더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미 많은 영화감독들이 자신의 청소년기를 극장과 함께 자란 헐리우드 키드로 소개했고, 젊은이들에게는 할리우드영화 수십 수백편의 제목과 감독, 그리고 배우를 줄줄이 꿰는 것이 ‘기본 소양’이 됐다. 그러나 ‘할리우드 키드’가 넘쳐나는 오늘날 한국에는 단 한명의 ‘시네마테크 키드’도 없다. 시네마테크란 것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개봉관에서 볼 수 없는 고전영화 필름들을 주제나 시기, 작가별로 묶어 소규모 극장에서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의 존재 가치는 산업적 측면에서 본다면 하잘 것없다. 그러나 “비디오대여점에서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는 <펄프 픽션>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조차 “시네마테크에서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는 시네마테크 키드 장 뤽 고다르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임을 자처한 프랑수아 트뢰포와 고다르는 주류와 비주류를 아우르는 60년대 영화혁명인 누벨바그의 기수가 됐다. 영화산업의 중심지인 미국의 할리우드에서 ‘꿈의 공장’이 부지런히 가동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뉴욕의 현대미술관과 링컨센터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낡은 흑백영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국제 규모의 영화제가 3개나 되고 대학에는 30개가 넘는 영화학과가 생겨났지만 우리에게 존 포드의 <수색자>나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독일영년>의 필름을 보는 것은 결코 향유할 수 없는 사치에 불과했다. ‘검소절약’만 강조한 한국의 영화문화는 고전기가 비어 있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 평론가 김영진씨는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조차 하워드 혹스의 <레드 리버>나, 오슨 웰스의 <위대한 앰버슨가> 같은 고전을 모른다”고 말한다. <춘향전>을 모르는 국문학도나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는 영문학도와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불균형 성장’
물론 유사 시네마테크라고 할 수 있는 비디오테크들은 간간이 존재해왔다. 80년대 젊은 영화광들의 목을 축였던 프랑스문화원과 지금도 운영되는 문화학교 서울은 그나마 고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필름과 영사기, 그리고 스크린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기본전제가 거두절미된 비디오는 이미 반 이상의 생명을 빼앗긴 채 재생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조악한 화면과 부정확한 번역자막으로 ‘키드’를 불러모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몇개의 예술영화전용관이 시도되기는 했지만 최소한 1만명대의 관객을 담보해야 하는 상업적인 조건들로 인해 결국 좌절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지난 11월18일 서울 정동의 멀티플렉스 스타식스 6관에서 문을 연 서울시네마테크는 영화광들뿐 아니라 한국영화의 미래에 큰 자극이 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 나라의 독서문화를 가늠하는 기준에는 서점뿐 아니라 도서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을 읽으며 축적된 지식이 전수되는 것처럼 시네마테크는 고전영화들을 현재의 자산으로 만드는 일종의 영화도서관인 셈입니다.” 서울시네마테크의 기획을 총괄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임재철씨의 말이다. 그 자신이 할리우드 키드로 자란 임씨는 영화기자를 그만두고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시네마테크를 처음 접했다. 그때 시네마테크를 다니며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일일이 필름을 섭외하면서 거의 혼자서 서울시네마테크의 개관을 밀어붙였다.
“우리나라 영화산업에 규모에 비춰볼 때 이제야 시네마테크가 만들어지는 것은 너무 늦은 셈입니다. 그러나 영화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을 설득하기가 힘들 정도이니 한국의 영화문화가 얼마나 불균형 상태인지 아무도 체감을 못해온 거죠.”
너무 늦은 시작임에도 그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문화관광부나 서울시쪽에 일부 지원을 요청했지만 지금까지도 응답이 없는 상태.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나 캐나다의 온타리오 시네마테크 등 외국의 시네마테크들의 경우 국가와 시에서 발벗고 나서 전체 경비의 90% 이상을 지원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필름 수급은 순전히 임씨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완성됐고 번역 등 나머지 작업도 100% 자원봉사를 통해 가능했다. 현재 임씨가 추산하는 시네마테크의 1년 예산은 7억5천만원.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정부와 기업, 어느 곳에서도 지원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다.
국가가 발벗고 나서야
안정적인 공간확보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개관기념전이 열리는 스타식스 6관은 입장료 수익으로 대관한 극장이다. 입장료 수익이 대관료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 당장이라도 짐을 싸야 할 판이다. 바람직한 것은 100석 규모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상업영화를 개봉하는 기존 극장의 경우 고전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6mm 필름을 돌릴 수 있는 영사기도 구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악전고투였지만 어쨌거나 시네마테크는 문을 열었고, 영화 100년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히는 <시민 케인>의 오슨 웰스의 회고전으로 첫 테이프를 끊는다. 비디오로만 볼 수 있었던 <시민 케인>을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위대한 앰버슨가> <상하이에서 온 여인> <오셀로> <악의 손길> <아카딘씨> <심판> <심야의 종소리> 등 11월18일부터 12월1일까지 총 10편이 상영된다. 또한 웰스의 촬영감독으로 일했던 게리 그레이버가 내한해 TV 출연물, CF 등 웰스의 모습을 담은 <보여지지 않은 웰스>도 보여준다. 웰스 회고전 이후에도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포르투갈 현대영화 특별전, 30년대 프랑스영화 특별전 등 이미 많은 프로그램들이 기획되어 있다. 체제만 안정적으로 구축되면 일년에 200편 이상의 ‘말로만 듣던’ 영화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임씨는 ‘한국에서 시네마테크가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주위의 우려어린 시선을 축구의 예를 들면서 일축한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16강에 못 들었다고 축구를 없앨건가. 시네마테크는 (상업적인) 성공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문화라고 생각하는 사회라면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해서도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의 존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서울시네마테크는 일반회원과 후원회원을 모집한다. 회비 10만원(학생 10만원)인 일반회원은 1년간 입장료 50% 할인과 매달 프로그램 가이드가 우편으로 발송된다. 50만원 이상을 내면 되는 후원회원은 2년간 전 상영작을 무료로 볼 수 있고 후원회원을 위한 특별시사회 때 초청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문의: 02-720-8702).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사진/11월18일 개관한 서울시네마테크를 찾은 관객들)

(사진/서울시테마테크를 기획총괄한 영화평론가 임재철씨)

(사진/개관기념 오슨 웰스 회고전 포스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