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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배꼽을 뽑아 그들에게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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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4-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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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시대에서 탄핵 정국까지, 발랄한 보복과 유쾌한 응징의 정치풍자 변천사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우리는 어이없는 소리를 들으면 ‘개가 웃는다’는 말을 쓴다. 그냥 비유로 그렇다는 얘기였는데, 요즘 촛불집회에 나가면 키득키득 입을 가리고 웃고 있는 ‘개죽이’ 깃발을 볼 수 있다. 그 뒤에는 “이게 다 꿈이었음 좋겠어”란 팻말이 따라간다. 대박의 꿈을 쪽박의 현실로 바꿔버린 누군가의 쓰린 심정을 대변하나 보다. 2004년 3월12일, 그날만 놓고 보면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이고, “땅을 치고 발을 굴러 울분에 떤 날”이라 해도 시원찮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1991년 강경대군이 경찰에 맞아 사망한 이후처럼 분신 정국이 오는 것이 아닌가 염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딱 하루 만인 3월13일부터 광장은 더할 나위 없이 유쾌했다. 살다보면 현실이 꿈보다 더 극적인 경우도 가끔 있다.

박정희의 첫 등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를 유머와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싶어하지 않았다.

유머가 실종됐던 이승만 · 박정희 시대


지금은 가히 풍자와 패러디의 전성시대이다. 80년대의 시위나 집회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했고, 또 비장하기는 왜 그리 비장했던지! 지금도 사안에 따라 그런 분위기의 집회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최근의 촛불시위만큼은 쿠데타군에 대한 발랄한 보복과 유쾌한 응징이 넘쳐난다.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글이나 동영상을 보면 정말 뒤집어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물은 셀프’ ‘병렬연결의 특징’ ‘개죽이의 미소’ ‘아무개 의원의 탄핵일기’ ‘야당 속~보였습니다’ 같은 작품들은 정말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문화사적인 작품으로 길이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서동요나 정읍사나 “경기 어떠하니잇꼬” 하던 경기체가보다 훨씬 재미있고 시대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이 만발한 풍자와 패러디의 전성시대를 더불어 즐기면서 나는 한국 정치사에서 그동안 왜 풍자와 패러디를 찾아볼 수 없었는지 궁금해졌다. 이승만 시대, 하긴 살벌했던 민간인 학살과 부역자 처벌이 지배한 시대에 무슨 유머가 통했을까? 평화통일을 주장한 조봉암이 이북 간첩과 내통한 것으로 몰려 사형을 당해야 하는 현실은 그 자체가 비극과 코미디가 뒤섞인 것이었다.

더구나 이승만은, 그 오만하고 권위주의적인 성격은 차치하고라도, 유머의 대상이 되기에는 출발부터 너무 나이가 많았다. 주변의 아첨배들이 이승만이 방귀를 뀌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 하고, 이승만이 무슨 말을 하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 ‘지당 장관’이라 불리거나 감격의 눈물을 흘려대 ‘낙루 장관’이라 불린 것 정도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승만 주변의 유머였던 것 같다. 외국인이었던 프란체스카 여사도 유머의 대상이 되기에는 대중들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국민들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오스트리아계인지 호주(오스트레일리아)계인지도 잘 몰라서, 그를 ‘호주댁’이라 부르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오스트레일리아군 비행기를 보고 프란체스카 친정에서 보내줬다고 했다 한 것이 대통령 부부 주변의 유머라면 유머일 것이다.

박정희 시대도 유머가 실종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반인들에게 비친 박정희의 모습 자체가 유머와는 거리가 멀었다. 실내에서도 벗지 않는 까만 선글라스를 낀 채 험상궂은 얼굴에 수류탄을 단 차지철과 날카로운 눈매의 피스톨 박, 박종규가 버티고 선 박정희의 첫 등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를 유머와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싶어하지 않았다. 권위와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박정희에게는 반체제 세력도 조금은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또 풍자를 해보았자 별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인간이 박정희였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그 시절 박정희를 소재로 한 웃기는 얘기래봤자 청와대에서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가 부부싸움을 하면 그게 뭐냐는 수수께끼 정도였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별명 지을 때 제일 재미없는 별명이 이름 갖고 짓는 것이었다. 하나 덧붙인다면 유신 이후 박정희가 스스로 작사·작곡한 <조국찬가>인가 하는 왜색 물씬 나는 ‘건전가요’를 널리 보급할 때, 그 가사를 바꿔 “길이길이 보존해서 내 딸에게 물려주세”라고 불렀던 것 정도일까? 정말 박정희 시대는 웃기지도 않은 시대였다.

웃기지도 않은 시대, 그래 그것이 박정희 시대의 특징이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고 출생의 의미부터 규정당한 우리는 사회적 웃음을 잃어버렸다. 나는 박정희가 죽은 대학교 2학년 때까지 학교 벤치에 앉아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목 좋은 곳의 벤치에는 다 짭새들이 둥지를 틀고 앉아 있었으니까. 캠퍼스 내에 학생들이 놀 만한 공간이면 어김없이 전경들이 닭장차를 세워놓고 있었고, 갑옷 같은 옷을 입은 우리 또래의 전경들이 우유팩 차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대형 가수’ 김지하의 ‘전설적 콘서트’

유머가 교살당한 시대에 선지자 역할을 한 사람은 김지하였다.
학내 시위를 하려면 주동자가 먼저 “학우여!” 하고 외치며 <정의가>를 부르는 게 그때의 공식이었는데, 어떤 열혈 투사들은 ‘학우여’를 외치려다 ‘학’에서 바로 옆에 있던 짭새에게 입이 틀어막히고 허리가 꺾인 채 들려가기도 했다. 이런 선배 징역 살고 나오면 ‘학’ ‘학’ 하고 놀려먹던 게 가학과 피학이 범벅이 된 웃기지도 않던 시대의 씁쓸한 추억이었다. 판자촌 철거현장에서 철거반원에게 “야, 이 김일성보다 나쁜 놈아”라고 소리친 것이 반공법 위반으로 걸리던 시대였다. 왜냐고? 김일성은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인데 그보다 더 나쁜 놈이라 말하는 것은 감히 김일성을 세상에서 두 번째 나쁜 놈의 지위로 옮겨주는 것이고, 그만큼이 고무찬양이라는 것이다. 시대가 거대한 코미디인데, 풍자가 어디 가 붙을 수 있겠는가?

유머가 교살당한 이 시대에 광야에서 홀로 외친 선지자 역할을 한 사람이 김지하였다.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겄다”고 나선 그를 박정희 정권은 볼기만 때리지 않고 사형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차관, 장성 등 다섯 도둑들이 재주를 겨루는 광경을 묘사한 그의 장시 ‘오적’은 원래 <사상계>에 발표되었는데, 당시 제1야당이던 신민당의 기관지 <민주전선>에 전재되면서- 요즘으로 치면 퍼나르기- 사건이 커졌다. 김지하는 또 다른 풍자시 ‘비어’에서 시골에서 올라와 아득바득 살아보려던 안도란 청년이 하는 일마다 안 되어 ‘개 같은 세상’이라 한마디 내뱉었다가 범한 죄목을 늘어놓아 또 사람들을 뒤집어놓았다. 너무 죄목이 많아 다 옮길 수는 없지만 몇 가지만 추려보면 건방지게 무허가 착족죄, 가난뱅이 주제에 직립적 인간본질 찬탈획책죄, 못난 놈이 사유시간 소비죄, 불온하게 흉곽팽창죄, 촌분무휴 증산수출건설적 국가정책 기피죄, 혹세무민적 유언비어 사출죄, 동 발음의욕죄, 동 발음죄, 동 살포의욕죄, 동 살포죄, 이심전심적 반국가단체 조직 가능죄 등등이다.

김지하의 불행은 그가 너무 일찍 태어났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당시 사람들은 ‘오적’이나 ‘비어’에서 김지하가 내뿜는 통쾌한 독설을 들으며 박수치고 즐길 수는 있어도, 여기에 동참할 수는 없었다. 복사기도 없었던 시대에 중앙정보부가 책을 쫙 수거해 갔으니 끽해야 필사본이 고작이었다. 웃기지도 않은 시대에 김지하라는 대형 가수의 전설적인 콘서트를 그저 추억으로 전하는 것이 1970년대였다면, 지금 21세기는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나 전국노래자랑처럼 자기식 풍자를 만들어 가지고 나오게 되었다.

전두환 시대에 시작한 대통령 유머는 불법이지만 구전으로 전래됐고, 김영삼 시대에 합법화되어 유통되기도 했다.(사진/ 이용호 기자)
광주학살이라는 참담한 일을 겪었지만, 전두환 때는 최고 권력자를 소재로 한 유머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전두환은 최근 ‘내 재산은 29만원뿐’이라고 외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을 웃기는 비상한 재주를 타고났다. 그의 등장부터가 그랬다. 박정희 암살 사건의 수사발표가 끝난 뒤 사람들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살벌한 대머리가 누구냐고 수근댔다. 요즘이야 사람들 인권의식이 많이 높아져서 외모로 사람을 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때만 해도 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사치스럽게 여겨진 탓인지 그의 대머리는 끊이지 않는 유머의 소재였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또 한명의 대머리가 등장했다. 둘 다 대머리에 데뷔 시기가 비슷하고 무지무지하게 웃긴다는 점이 공통점인데,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한명은 웃기려고 작심하고 웃기는 사람이고, 다른 한명은 웃기려고 하는 것은 아닌데 너무 웃기는 사람이었다. 뒷사람이 권력을 장악하자 진짜 웃기는 사람 이주일은 ‘뭔가 보여주지도 못하고’ 한동안 무대에서 “나가 있어”를 당했다.

말당, 토관과 신토, 오뎅…

전두환의 등장은 한국의 정치풍자 역사에서 획기적인 것이었다. 풍자에 등장하는 전두환은 무식한 인간으로 나온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말당 선생- 서정주가 또다시 용비어천가를 불렀는데, 전두환이 무식해서 서정주의 호 미당(未堂)을 말당(末堂)으로 잘못 알았다는 이야기- 이고, 그가 좋아하는 영화는 <토관과 신토>- <사관과 신사>(士官과 紳士)를 잘못 읽어서- 라는 등등이다.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조각가의 이름을 쓰라는 시험은 옆에 앉은 노태우의 답을 잘못 베껴 써서 ‘오뎅’으로 적었다는 이야기도 한동안 우리를 낄낄대게 했다.

학살자의 이미지를 벗으려면 아이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참모의 말에 전두환이 시골에 가서 놀고 있는 아이 하나를 안아들었다. 그 시절 흔히 그렇듯이 아랫도리를 벗고 있는 아이였다. 한 팔로 아이를 안은 전두환은 만면에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다른 손으로 고추를 가리켰다. “이거 뭐니?” 아이가 빤히 전두환의 얼굴을 보더니 왈 “×도 모르는 게 대통령이야?” 아무리 전두환이지만 아이를 붙잡고 어떻게 하리오. 이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옆에 마을로 가 또 아랫도리 벗은 아이를 안아들었다. 이번에는 선제공격. “나 이거 뭔지 안다.” 아이는 또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만 아는 게 대통령이야?” 광주의 학살자란 이미지를 벗어보려는 전두환의 몸부림은 오히려 유머의 소재가 될 뿐이었다.

김영삼 시대는 대통령을 소재로 한 유머가 만발한 시대였다. 취임 초기에 김영삼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그를 소재로 한 유머집도 여러 권 나왔다. 전두환 시대에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한 대통령 유머가 아직 불법이지만 구전으로 전해진 것이었다면, 김영삼 시대는 합법화되어 기록으로 남았을 뿐 아니라, 코미디 방송작가가 자기 이름을 걸고 유머를 만들어 유통시키기도 했다(장덕균, ). 이 책의 성공에 힘입어 후속편 는 아예 1500만원이라는 웬만한 문학상 상금을 뺨치는 거액의 상금을 걸고 국민들로부터 현상공모를 받아서 우수작을 가려 출간되었다. 이 책의 광고처럼 사람들은 ‘갱제’는 몰라도 YS시리즈는 ‘학실히’ 아는 듯했다.

아무리 전문작가가 가세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현상공모에 응했음에도 최고의 YS시리즈는 역시 YS 본인에게서 나왔다. 그의 말실수는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라는 그 엄청나게 감격적인 취임사를 하는 순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 장면을 그린 김동원 감독의 <송환>, 완전히 뒤집어진다) 관광도시가 ‘강간도시’가 되고 ‘광섬유’가 옷 해입으면 삐까번쩍 광나는 옷감으로 둔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YS가 서울대 졸업장을 가진 것도 ‘역사의 아이노리(아이러니)’이지만, 그가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며 열심히 조깅을 할 때 사람들은 다 고개를 끄덕여줬다.

DJ 시절의 히트작, 배칠수 성대묘사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은 웃음을 잃기 시작했다. 자기 머리보다 별로 성능이 좋을 것 없는 아들에 의존하는 YS를 보면서, 사람들은 대통령이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누구 머리를 빌려야 할지 판단할 머리는 자기 것으로 달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의문을 품었다. ‘이놈의 손가락으로 찍었어’라고 김영삼을 찍은 죄로 잘려나간 손가락이 아침마다 쓰레기차에 가득하다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내가 눈이 삐었지” 하고 빼버린 눈알이 골목마다 즐비하더라는, 유머라 하기에는 너무 섬뜩한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재임 5년간 YS의 최대 업적은 남북간 소득 격차를 현격히 줄인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우리 역사의 첫 문민 대통령은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퇴임해야 했다.

전두환 시절의 유머는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군부에 대해 ‘무식한 집단’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실 전두환 개인이나 군부가 그런 식의 무식한 부류는 아니었고, 그렇게 보아서는 한국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에서 군부독재 출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래도 그 시절의 유머는 독재자 저놈만 쫓아내면 다 잘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김영삼 초기의 유머들은 더 희망찼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대통령을 소재로 한 유머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 자체가 민주화의 상징인 듯싶었다. 그러나 이 환상이 깨지자 절망이 엄습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군사독재만 몰아내면 다 잘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개인 김대중은 유머가 풍부한 사람이라 하지만, 대통령 김대중은 ‘선생님’의 권위와 빈틈없는 노력과 지식으로 인해 유머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김대중 시절에 그를 주인공으로 한 걸작 유머가 별로 나오지 않은 것은 유머의 생산과 유통의 주체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수구는 머리가 나빠서, 보수는 좋게 얘기해서 점잔빼느라 유머를 만들어낼 수 없거나 만들어내지 않는 것 같다. 신랄한 풍자를 날릴 만한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김대중과 같은 편이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입을 다물었나 보다. 김대중 시절에 나온 최대의 히트작은 배칠수의 성대모사라는 새로운 기법이 가미된 부시와의 전화통화이다. FX사업을 겨냥하여 낡은 무기 팔아먹는 부시를 우리 김대중 대통령이 쌍코피 터지게 만든 이 작품은 웃다가 숨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수작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김대중을 풍자했다기보다는 이랬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컸다.

탄핵이란 대사변을 유쾌한 축제로 만들어버린 시민들의 유머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비유한다면 시민들은 모차르트의 경쾌함인데, 저들은 살리에리 식으로 이미 깨져버린 엄숙주의를 고집한다. 그리고 그게 안 통하면 강금실 법무장관과 문재인 전 수석의 만남을 중년남녀의 불륜 운운하는 식의 막말로 표현하는 것밖에는 대응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미 우아를 떠는 엄숙주의자들에게 “똥꼬 깊숙이” 똥침을 날리는 것을 표방한 <딴지일보>가 등장한 지 여러 해가 지났고, 공중파 뉴스에서조차 YTN의 <돌발영상>을 본뜬 꼭지가 방영되고 있으며, <웃긴 대학> 장학생들은 각종 알바들을 무찌르고 인터넷을 평정하고 있다. 인터넷과 각종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인해 네티즌들은 유쾌, 상쾌, 통쾌에 경쾌까지 곁들여 기발한 작품을 발빠르게 만들어낸다. 적당한 참여의 방식을 찾지 못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버린 정치에 대해 시민들이 인터넷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참여의 양식을 개발해낸 것이다. 이제 자기들만의 리그를 고집하는 정치적 엄숙주의자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탄핵 정국 속에서 터져나온 '병렬연결의 특징' '개죽이의 미소' '물은 셀프' 등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문화사적 작품이라 할 만하다.

실제론 풍자가 아닌 치료의 대상

저들은 말한다. 촛불시위가 부화뇌동이라고. 부화뇌동? 그래, 나도 촛불시위에서 부화뇌동 조금 했다. 수만명이 모인 탓에 음향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앞 사람들 하는 대로 촛불도 흔들고, 소리도 지르고 했으니까. 저 수많은 사람들의 ‘배후’에 앉아서 내가 한 짓은 그런 ‘부화뇌동’이었다. 광주 때는 독침 운운하며 간첩이라고 겁주는 것이 먹혀들었지만, 아이들 데리고 나온 가족 단위 참가자가 부쩍 늘어난 21세기의 촛불시위를 향해 북의 지령 운운하는 것을 보면 저들은 풍자가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은 셀프”가 전국을 강타한 이 상황에서 조순형 대표에게 사퇴하라고 집으로 찾아간 민주당 공천자들은 굳게 닫힌 대문 앞에서 인터폰으로 집안의 누군가에게 물 한잔 주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물타령인가? 정말로 추락하는 것에게는 날개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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