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기생하던 건축가들이여, 이젠 이웃의 삶을 담는 일에 시선을 돌려라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런 경향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건축은 특히 권력을 위해 복무해왔다. 건축은 권력의 위세를 드러내주는 존재이자 방법으로서 권력이 존재하고 유지되는 것을 돕는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권력과 건축의 관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그런 유착관계가 기막히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오로지 웅장함만이 강조됐던 건축문화
왜 그럴까? 그런 관계를 통해 권력은 권력대로 또한 건축은 건축대로 자신의 이권을 탈없이 지속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권력의 산물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축물들을 바라보며 오로지 건축의 휘황찬란함만을 경하하게 되었다. 가까운 것으로는 예술의전당부터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그리고 조금 멀리보면 국회의사당에서 경복궁 안의 민속박물관이나 세종문화회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주요한 건축물로 꼽히는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어느 하나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권력은 당대를 장악하고 건축은 후대를 독식하는 이 기막힌 상호부조를 사람들이 별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치 최고의 아름다움처럼 우리의 앞에 서 있는 이 웅장한 건축물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고통과 피해를 보았다. 이런 건축풍토 속에서 삶의 뜨거운 쟁투는 사리지고 물체만이 남아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권력도 위에서 아래로 행사된다. 예전에는 권력이 사회체계 바깥이나 위에서, 초사회적으로 존재했다. 그런데 현대의 소비사회로 접어들면서 권력은 거기에 맞춰 모습과 자리를 바꿨다. 예전과는 달리 권력이 행사되는 방법도 조작과 관리로 바뀌었다. 이제 권력은 도처에서 매일 생산되며 일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더이상 권력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일부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특정한 권세”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사회 속에서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부여되는 이름”의 모습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자신의 먹을 것을 챙기는 경제논리의 다툼이다.
아무리 문제가 있고 부작용이 커도 이 경제논리, 즉 잇속챙기기는 돈벌 거리만 있으면 달려들어 도시를 불야성으로 만든다. 종로 화신백화점 자리에 들어선 라파엘 비뇰리의 건물이 떠받치고 있고 또한 떠받들여지는 가치는 바로 이런 현대적 권력인 자본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권력적인 속성은 감각과 소비의 새로움에 씌워져 그런 사실을 잊게 만든다. 또한 재벌들은 자본이라는 권력으로 우리 건축가들보다는 외국 건축가들에게 우리 삶의 환경을 맡기고 있다. 재벌들의 본사는 거의 대부분 외국 건축가들의 작품으로 사실상 수입품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 건축은 자본이라는 새로운 권력에 빌붙어 국적까지 잃은 지 오래라는 점을 보여준다.
권력은 반드시 계산을 깔고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단순화시켜 말하면 소비를 통한 효과다. 소비의 전략으로 권력은 사람들의 인식과 감성을 공격해 비판능력과 사유능력을 무력화시킨다. 눈장난에 불과한 이 전략에 대중은 현혹되는 것이 현실이다. 일상을 지배하는 이 엄청난 흐름에 역류하기도 불가능할 지경이다. 저항 또한 쉽지 않다.
방책은 한 가지다. 본디의 토대를 지키는 것뿐이다. 삶을, 사회를 건축가가 지켜야 하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것을 통하지 않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삶과 사회를 건축가들이 맨몸으로 껴안아야 한다.
물체의 미학보다 공간의 시학을
이 점은 건축의 본디 모습이자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에 기생할 때 건축은 패션에 불과하다. 그저 상품으로만 연명할 뿐이다. 이제 우리 건축, 건축가는 그동안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던 보잘것없던 작은 프로젝트나, 서민주택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진심으로 이웃의 삶을 담는 건축으로 변해야 한다. 건축가 이일훈의 ‘기찻길 옆 공부방’은 그 좋은 예다. 재벌의 호사적 취미와 상업적 음모와 결탁하는 ‘눈’ 건축에서 이제 삶을 이어주는 ‘몸’ 건축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 우리의 건축까지 함께 살아날 것이다. 또한 사물의 조형성, 곧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사물의 가용성, 곧 보이지 않는 공간의 문제로 관심을 옮겨야 한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런 변화의 시도를 귀하게 여기는 우리의 안목이 가장 필요하다. 물체의 미학보다 공간의 시학에 주목할 때, 그것은 분명 하나의 힘을 형성할 것이다. 번지르르한 빌딩들과 으리으리한 관료 구조물들이 휩쓸고 가는 지금의 건축은 이런 안목이 늘어날 때 새롭게 변할 것이다. 이제는 건축이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삶의 공간에 주목할 때다. 무척 소박하겠지만, 그런 물꼬가 터지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이종건/ 건축가·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이종건/ 건축가·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문제는 권력은 당대를 장악하고 건축은 후대를 독식하는 이 기막힌 상호부조를 사람들이 별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치 최고의 아름다움처럼 우리의 앞에 서 있는 이 웅장한 건축물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고통과 피해를 보았다. 이런 건축풍토 속에서 삶의 뜨거운 쟁투는 사리지고 물체만이 남아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건축가 조병수씨의 강화도 온수리 장애인 작업·생활공간 ‘우리마을’. 이제 우리 건축, 건축가는 거창하고 권위적인 굵직한 건축, 경제논리만을 추구해 삶을 담지 못하는 건축에서 벗어나 낮은 사람들의 삶을 담는 건축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