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알바’로 무대를 지키며 험한 고생을 이겨낸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관객들의 박수뿐
글 오지혜(영화배우)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내가 연극을 볼 때 ‘재밌다’ ‘감동적이다’라는 감상을 뛰어넘어 감히 ‘행복하다’고 느끼는 때가 있는데 바로 극단 ‘목화’의 연극을 볼 때이다. 오태석이라는 세계적인 예술가의 환상적인 연출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도의 기술과 뜨거운 가슴으로 무장된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게 ‘행복’을 전해준 그 무대엔 언제나 그, 황정민이 있었다.
데뷔가 늦은 이유에 가슴이 아팠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왕 팬임을 떠들어왔지만 정작 그와 극장 밖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눠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체 쑥스러움을 잘 타는 내성적 성격이기도 하지만 실력과 경력에 비해 인터뷰 경험이 턱없이 적었던 탓에, 그는 시종일관 그 작은 눈을 더 작게 만들어 수줍게 웃으며 “모르겠어요” “생각 안 해봤어요”만을 연발해 속얘기를 듣기까진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그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인터뷰에 이골이 났어야 정상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쳐 시끌벅적한 곳만 찾아다니는 언론을 향해 눈을 흘기고 있었다. 198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서울예전 연극과를 나왔으니 1990년에 데뷔를 해야 ’계산‘이 맞다. 헌데 그의 대학로 데뷔는 93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뒤 ‘엄한 짓’을 하다 뒤늦게 대학을 갔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외모로는 잘 해야 식모 역할밖에 할 게 없을 거란 지레짐작으로 연극과 가는 거부터가 꺼려졌기 때문이란다. 뭐 꼭 데뷔가 빨라야 좋은 건 아니지만 늦은 까닭이 가슴아팠다. 배우가 되고 싶은 소녀 황정민 곁에 배우는 꼭 이뻐야 하는 건 아니라고, 너처럼 재주 있는 사람이 바로 배우를 하는 거라고 용기를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가난한 배우였고 늘 가난한 무대에 서야 했던 그는 11년 동안 끊임없이 무대를 지켜내면서 한쪽으로는 끊임없이 알바를 해야만 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메가폰을 붙잡고 “어서옵쇼”도 외쳤고 은행 끝자리에 앉아 골프 회원권도 받았다. 털실공장에서 시다 생활도 했다는 소리에 조금 놀라서 얼마나 했냐 물었다. “한 7, 8년쯤?” 하더니 까르르 웃는다. 11년 배우 생활 중에 공장 시다 생활 7, 8년이라…. 연기하는 거 말고는 연애질밖에 고민할 일이 없었던 내 청춘이 벌레같이 느껴져 다음 질문이 생각나질 않았다. 당황해하면 무안해할까봐 얼굴 근육을 조작하고 있는 사이 그는 환하게 웃으며 “참! 나 칼도 팔았드랬어요. 왜 비싼 주방용 칼 세트 있잖아요. 어휴…주변머리가 없어서 세일즈다운 세일즈도 못 했는데 순전히 주변 분들이 사주셔서 ‘이달의 판매왕’을 한 적도 있었다니까요”라며 또 까르르 웃는다.
공장 노동자의 삶을 직접 느껴보고자 ‘위장취업’을 했던 거라면 모를까 세계가 인정한 극단에서 10년 동안 거의 주인공을 맡고 춤, 소리, 연기에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그가 공연 때마다 강행군이 반복되는 연습과 그 힘들다는 공장 일을 병행해왔다니…. 내가 그의 처지였다면 예술가를 인민의 최고봉사자로 인정해 최상의 예우를 해준다는 사회주의 국가로 망명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부자에게는 더 많은 세금을 받고 공무원들은 차떼기 같은 짓 절대로 못 하게 해서 그 돈으로 가난한 인민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오게 해야 한다. 그래서 그와 같은 예술가들은 인민을 즐겁게 해주는 일만 해도 굶지 않을 수 있게 되는 세상 말이다. 그런 세상이 오긴 오는 걸까?
누구에게나 묻는 ‘단골질문’을 했다. 제일 힘든 건? 특별히 힘든 건 없으나 작품 할 때마다 연기의 한계를 느끼는 것이 제일 견디기 힘들단다. 연기 말고 다른 건 무엇이냐니까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고민 말고는 세상에 중요한 게 뭐가 있겠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듯이 한참을 생각한다. 겨우 고민거리를 ‘찾아내서’ 대답을 해준다. 두번째 고민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였다. 그 다음에는 노처녀로서 고민 정도가 ‘가볍게’ 뒤따랐다. 결혼보다는 일이 늘 중요했지만 요새 와선 이러다 평생 못 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면 맘이 허해진단다. 하지만 그의 두번째 세번째 고민은 내가 물어봐서 억지로 찾아낸 고민일 뿐 그의 영혼과 몸뚱아리 세포 하나하나는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로지 ‘당면한 역할을 어떡하면 충실히 관객에게 전달하느냐’ 그거 하나인 거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연기만 죽어라 하는 것이 행복한가 물어봤다. “무대 위에 있을 땐 행복 그런 거 잘 몰라요. 역할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사실, 연습도 괴롭고… 공연 준비하는 것도 괴롭고… 다 힘들고 괴로워요. 그런데 어느 한순간 행복을 느낄 때가 있긴 해요. 커튼콜 박수 받을 때요. 그럴 때는 내가 이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달했구나. 잠깐이나마 내가 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아져요.” 자신이 출연한 연극을 보고 한명이라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갖는다면 너무 행복할 것이지만 그건 너무 큰 바람이고 그저 잠깐의 재미를 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단다. 그 험한 고생을 하고서 관객에게 많은 걸 건네주는 그가 정작 관객에게 바라는 건 박수뿐이라니 웬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를 지켜라>의 순이, 한국의 젤소미나
그는 지난해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 출연했다. 오래 전부터 그의 팬이자 친구 사이였던 장준한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할 때부터 신하균의 애인 역인 순이 역에 그를 출연시킬 작정을 하고 그를 모델로 썼다고 한다. 그는 그 영화에서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전 지구인이 함께 단체상영을 한 뒤 심각하게 생존을 위한 대책회의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죽이는’ 영화였고 배우들의 연기도 완벽했다. 특히 조금은 모자란 듯하면서도 진짜 사랑을 보여준 서커스단 소녀 순이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에서 줄리에타 마시나가 연기한 젤소미나의 오마쥬였는데 <지구를 지켜라>에서 그의 연기는 한국의 젤소미나, 한국의 줄리에타 마시나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지금 연극열전의 네번째 주자인 <남자충동>(조광화 연출)에서 주인공 장정의 어머니로 출연중이다. 순이를 할 때는 영락없이 조금 모자란 십대 소녀였는데 <남자충동>에서는 누가 봐도 질곡의 삶을 ‘정말로’ 살아온 60대 할머니로 살고 있다. 나는 이 공연을 인터뷰하고 며칠 있다가 봤는데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행복할 때가 관객의 박수를 받는 때라던 그의 말이 생각나 정말 손바닥이 화끈거릴 정도로 손바닥을 쳐댔다. 그것만이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거였다. 여러분도 그의 연기를 보게 되면 공연이 끝난 뒤 그가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으며 커튼콜을 하거들랑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박수를 보내주길 부탁드린다. 그대가 내는 관람료 중 그에게 돌아가는 몫은 몹시 적을 뿐이고 그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힘찬 박수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부탁이 없어도 그의 연기를 보게 된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손바닥에 불이 날 것임을 나는 믿는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왕 팬임을 떠들어왔지만 정작 그와 극장 밖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눠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체 쑥스러움을 잘 타는 내성적 성격이기도 하지만 실력과 경력에 비해 인터뷰 경험이 턱없이 적었던 탓에, 그는 시종일관 그 작은 눈을 더 작게 만들어 수줍게 웃으며 “모르겠어요” “생각 안 해봤어요”만을 연발해 속얘기를 듣기까진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그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인터뷰에 이골이 났어야 정상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쳐 시끌벅적한 곳만 찾아다니는 언론을 향해 눈을 흘기고 있었다. 198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서울예전 연극과를 나왔으니 1990년에 데뷔를 해야 ’계산‘이 맞다. 헌데 그의 대학로 데뷔는 93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뒤 ‘엄한 짓’을 하다 뒤늦게 대학을 갔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외모로는 잘 해야 식모 역할밖에 할 게 없을 거란 지레짐작으로 연극과 가는 거부터가 꺼려졌기 때문이란다. 뭐 꼭 데뷔가 빨라야 좋은 건 아니지만 늦은 까닭이 가슴아팠다. 배우가 되고 싶은 소녀 황정민 곁에 배우는 꼭 이뻐야 하는 건 아니라고, 너처럼 재주 있는 사람이 바로 배우를 하는 거라고 용기를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연극을 볼 때 ‘재밌다’ ‘감동적이다’라는 감상을 뛰어넘어 감히 ‘행복하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그 무대엔 언제나 그, 황정민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