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음악을 들으며 국적을 따져야 하는지…창법과 무드는 있지만 장르는 없다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이상한 용어가 많습니다. ‘마이낑’, ‘빽디씨’ 등 비즈니스 용어뿐만 아니라 ‘싸비’, ‘삑사리’, ‘우라까이’ 등 음악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구장(다마장)을 방불합니다. ‘일제 잔재’라서 인상이 찌푸려진다구요? 싫지만 저도 어쩔 수 없답니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시다구요? 오늘은 ‘우라까이’라는 용어만 설명해 드립니다. 주로 고음 부분을 열창하다가 목소리가 ‘뒤집어지는’ 증상입니다. 갑자기 김광석이 보고 싶어집니다. 목에 힘주고 ‘싸비’ 부분을 부르다가 목소리 뒤집히면 씩 웃고 다시 부르던 모습이. 아, 가을이 깊어가나 봅니다.
순수한 ‘아일랜드적’인 것이 있을까
옆길로 샜군요. 무슨 이야기하냐구요? ‘우라까이’를 ‘창법’으로 승화시킨 인물들이 있습니다. ‘대머리 여가수’ 시냐드 오코너와 크랜베리스의 보컬 돌로레스 오리오든 같은 분들입니다. 이들의 창법을 국산화시킨 케이스도 있죠. 주주 클럽의 주다인, 자우림의 김윤아, 더 더의 박혜경 등입니다. 물론 몇몇 곡에 한정된 것이지만. 따지고 보니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여성 록 가수들’의 쟁쟁한 계보를 이루는군요. 그래서 언론 기사나 보도자료를 보면 가끔 ‘아일랜드 창법’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저분들이 아일랜드 출신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아일랜드 사람이 들으면 배꼽잡고 웃을 말이지만, ‘글로벌 시대의 한국 사투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갑시다.
‘아일랜드’는 창법뿐만 아니라 ‘무드’이기도 합니다. ‘신비스럽다’는 말을 동반하죠. 여기에는 오코너나 크랜베리스보다도 엔야의 ‘뉴에이지’음악이 여기에 적격이지요. 유럽의 추운 나라에 사는 요정이나 ‘얼음 공주’의 이미지가 아일랜드라는 기호를 따라다닙니다(스코틀랜드, 스웨덴, 노르웨이도 이런 이미지를 한몫 거듭니다). 라틴팝이 ‘화끈함’의 상징이고, 아일랜드 팝은 ‘서늘함’의 상징입니다. 좀 ‘오버’하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아일랜드 팝(Irish Pop)이라는 ‘장르’는 없습니다. 시냐드 오코너와 크랜베리스 말고도 올해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코어스(the Corrs)도 있고, U2라는 세계적 슈퍼밴드도 있는데 뭔 말이냐구요?(나이 지긋한 분들은 게리 무어와 밴 모리슨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 정보 없이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 정말 ‘아일랜드’를 떠올리셨을지는 의문입니다. 음악을 들을 때 국적 따지면서 듣나요? 저 같은 ‘아저씨 평론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보통 팬들도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국적(nationality)이 아니라 민족(ethnicity)이라구요? 아일랜드 민족 고유의 정서라는 게 과연 있을까요? 그분들에게 ‘진짜’ 아일랜드 민속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피들(바이올린과 유사한 민속악기), 아코디언, 파이프, 휘슬, 보드란(bodhran:북) 등의 악기가 등장하는 ‘포크 댄스’ 음악 말입니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서도 가끔 들을 수 있는 음악 말입니다. 그래미상 월드뮤직의 단골손님인 치프턴스의 음악만 해도 쉽게 친숙해지긴 힘듭니다. ‘포크’를 ‘통기타 발라드’로 정의하는 분들은 ‘포크가 아니라 컨트리네’라고 (조금 무식한)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음악들은 지금도 영국 각지의 ‘아일랜드 선술집’(Irish Pub)에 가면 들을 수 있죠. 나이든 분들끼리 술잔과 더불어 문화적 정체성을 다지는 음악인 셈입니다. 음악의 대양에 아일랜드라는 물방울 하나
아일랜드(그리고 스코틀랜드) 주민의 다수인 켈트족이 브리튼섬의 ‘원주민’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신가요? 앵글로-색슨족들이 ‘쳐들어 와서’ 변방으로 밀려났고, 결국 켈트족은 대영제국의 ‘소수민족’이 되었죠. 그렇다면 ‘브리티시 팝’이란 것도 각지의 민속음악들이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전영(全英) 대중음악’(British Pop)으로 통합된 것이겠네요. 정치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 아일랜드인들이 ‘가무’(歌舞)에서 표현 수단을 찾고 그 결과 영국 대중음악의 형성에도 많이 기여했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치 미국의 흑인들처럼 말입니다. 앨런 파커의 영화 <커미트먼트>를 보니 실제로 “아일랜드인은 유럽의 흑인이야”라는 말이 나오더군요(이 영화는 아일랜드의 솔 밴드의 ‘좌절’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입니다). 아일랜드인들이 정착한 곳이 리버풀, 맨체스터 등 잉글랜드 북부 지역이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팝 음악에서 한가닥 하는 곳’이 된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비틀스의 존 레논이 아일랜드계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합니다. 아들 이름을 아일랜드 식으로 션이라고 지은 걸 보면 분명합니다. 케이트 부시와 엘비스 코스텔로같이 팝 음악사에 한획을 그은 ‘브리티시’ 음악인도 아일랜드계입니다.
쓸데없는 말이 왜 이렇게 많냐구요? 그러니까 제말은 ‘순수한’ 아일랜드 대중음악이란 없다는 것이죠(크라잉 너트나 노 브레인을 정말 ‘순수 조선 펑크’로 생각하십니까). 아이리시 팝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국제적 팝 음악의 여러 스타일들 중 하나일 뿐이고 매우 유동적입니다. 장사가 잘되는 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뿌리’를 찾으려는 이유는 뭘까요? 갈수록 뿌리를 식별하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추세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에 정식 수입된 ‘러프 가이드’(the Rough Guide to) 시리즈도 좋지만, 포그스의 음악이 더 좋습니다. 누구냐구요? 아일랜드 민요를 펑크 록으로 난도질한 괴짜들이죠. 시중에서 구하기는 힘들지만. 코어스나 U2는 뭐냐구요? 국제적 팝 음악이라는 대양 어딘가에 아일랜드 색채를 가진 물감 한 방울을 똑 떨어뜨린 음악이죠. ‘좋은 음악’이라는 뜻입니다.
신현준/ 음악평론가 http://shinhyunjoon.com.ne.kr

(사진/엔야)

(사진/U2)
‘아일랜드’는 창법뿐만 아니라 ‘무드’이기도 합니다. ‘신비스럽다’는 말을 동반하죠. 여기에는 오코너나 크랜베리스보다도 엔야의 ‘뉴에이지’음악이 여기에 적격이지요. 유럽의 추운 나라에 사는 요정이나 ‘얼음 공주’의 이미지가 아일랜드라는 기호를 따라다닙니다(스코틀랜드, 스웨덴, 노르웨이도 이런 이미지를 한몫 거듭니다). 라틴팝이 ‘화끈함’의 상징이고, 아일랜드 팝은 ‘서늘함’의 상징입니다. 좀 ‘오버’하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아일랜드 팝(Irish Pop)이라는 ‘장르’는 없습니다. 시냐드 오코너와 크랜베리스 말고도 올해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코어스(the Corrs)도 있고, U2라는 세계적 슈퍼밴드도 있는데 뭔 말이냐구요?(나이 지긋한 분들은 게리 무어와 밴 모리슨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 정보 없이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 정말 ‘아일랜드’를 떠올리셨을지는 의문입니다. 음악을 들을 때 국적 따지면서 듣나요? 저 같은 ‘아저씨 평론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보통 팬들도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국적(nationality)이 아니라 민족(ethnicity)이라구요? 아일랜드 민족 고유의 정서라는 게 과연 있을까요? 그분들에게 ‘진짜’ 아일랜드 민속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피들(바이올린과 유사한 민속악기), 아코디언, 파이프, 휘슬, 보드란(bodhran:북) 등의 악기가 등장하는 ‘포크 댄스’ 음악 말입니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서도 가끔 들을 수 있는 음악 말입니다. 그래미상 월드뮤직의 단골손님인 치프턴스의 음악만 해도 쉽게 친숙해지긴 힘듭니다. ‘포크’를 ‘통기타 발라드’로 정의하는 분들은 ‘포크가 아니라 컨트리네’라고 (조금 무식한)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음악들은 지금도 영국 각지의 ‘아일랜드 선술집’(Irish Pub)에 가면 들을 수 있죠. 나이든 분들끼리 술잔과 더불어 문화적 정체성을 다지는 음악인 셈입니다. 음악의 대양에 아일랜드라는 물방울 하나

(사진/코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