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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출판- 나무는 그 날을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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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24 00:00 수정 : 2008-09-1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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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나무토막에서 삶을 복원시키는 자연과 인문학의 대화 <역사에 새겨진 나무 이야기>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도시에서 자라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나는 “엄마, 이건 무슨 나무야? 무슨 꽃이야”라는 아이의 질문에 “나도 몰라”라는 한 가지 대답만을 준비해두고 살아간다. 도시라고 꽃과 나무가 없지 않고 엄연히 우리가 살아나가는 환경의 일부이건만 나는 그 인식의 큰 공간을 휑하게 비워두고 있다.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온 나무학자 박상진 경북대 임산공학과 교수의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김영사 펴냄)는 새삼 나의 무지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는 나무를 통해 역사와 삶과 문화와 대화하는 사람이다. 그는 썩어서 형체조차 보존하기 힘든 수천년 전 나무 조각에서 역사를 읽고 그 시대 사람들을 만난다. 박 교수의 전공은 ‘목재조직학’, 커봐야 손톱만하고 작으면 가로세로 1mm도 안 되는 표본을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해 그는 수많은 나무 문화재들의 숨은 비밀들을 밝혀냈다.

1970년대 말 일본의 옛 수도 교토의 대학에서 유학하며 아무리 커도 머리카락 굵기의 나무 세포를 하루 종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던 그는 오랫동안 기숙사와 실험실만 오가느라 그 유명한 교토의 문화재에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기숙사 식당에서 또래의 한국인 유학생 한명을 만났다. 경주박물관장을 거쳐 현재 이화여대 교수인 미술사학자 강우방 교수였다. 그로부터 한·일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박 교수는 나무로 만들어진 문화재 속에 숨겨진 역사를 찾아내는 일에 빠져들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대화를 시작했던 것이다.

박 교수의 나무 역사 해석 첫 작업은 1981년 온 나라를 흥분시켰던 신안 앞바다 보물선이었다. 그 선체에 일본에서만 자라는 삼나무가 일부 섞여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가 이유도 모른 채 안기부의 조사를 받으며 두려움에 떨기도 했던 그는 이제 어떤 사학자 못지않게 문화재 분석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1971년에 발굴된 백제 25대 무령왕릉은 광복 뒤 가장 가치 있는 유적이라는 명성 속에서 지나치게 서둘러 발굴한 탓에 수많은 귀중한 자료가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1990년 그는 발굴보고서에 적힌 단 한줄 “목관 재질은 밤나무다”에 주목해 관의 재질을 알아냈다. 문화재관리국장으로부터 받은 작은 표본을 분석해 그 재질이 일본에서만 나는 금송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혀낸 그의 발견으로 무령왕이 어린 시절 일본에서 자랐다는 역사적 기록이 증명됐고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제시됐다.

이 밖에 거북선이 박치기 명수로 일본 함선들을 박살 낼 수 있었던 것은 배의 겉판을 만든 소나무와 주요 부위를 보강한 참나무·가시나무·녹나무 등이 매우 단단한 목재여서 무른 삼나무나 편백나무로 만든 일본 배가 맥을 못 췄기 때문이라는 것, 자작나무로 제작하였다는 전설과는 달리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우리나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신라 천년의 신비로 불리는 천마도의 캔버스가 된 백화수피(흰 나무껍질)는 방부제와 방수 성분을 가지고 있어 수천년 땅속에 묻혔어도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는 이야기 등을 나무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주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나무는 선조들의 삶을 지켜온 현장 목격자다. 5천년 민족의 삶 가운데는 언제나 나무가 빠지지 않는다. 집 짓고 음식 해먹고 살림살이를 만드는 인간생활 모두에 나무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그래서 선조들과 삶을 같이했던 옛 나무의 사연들은 바로 우리 역사의 편린을 알아내는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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