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그녀의 전형적인 정장 차림은 모든 걸 1류와 2류로 구분하는 그녀의 논법만큼이나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런 권위적인 옷차림이 어디 가서 큰 소리를 치기에는 아주 적당하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차림이 이효리를 원하던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구미에 어디 가당키나 하겠냐는 거다. 다시 말해 정치에 무관심한 20, 30대 여성들을 새로운 공약 대상으로 노리고 있는 ‘늙고 부패한 당’(이 표현은 전여옥 본인의 표현이었다)의 목표에 봉사하기 위해서는 보다 화려하고 섹시한 차림으로 국민들의 정치적 가치 판단을 흐리게 만들 필요가 있다. 정치적 정책과 비전이 취약한 당일수록 옷을 밝고 화사하게 입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그나마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여옥 선생처럼 고상한 취향을 사랑하시는 분이 이효리처럼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가운 드레스나 트레이닝 숏 팬츠를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보는 사람도 괴롭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떤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지방색 강한 한글 타이포그라피가 새겨진 티셔츠를 파워풀한 블랙 수트 안에 입는 거다. 영남을 대표하는 ‘무슨 무슨 고등학교 조기 축구회’라는 한글 타이포도 멋질 것 같고, ‘경상도는 있다’ 같은 보다 노골적인 문구도 파격적일 것 같다. 이탈리아 급진당 소속인 치치올리나가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좌익'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대중 앞에서 왼쪽 가슴을 드러내는 등 파격적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최병렬 대표에게 '영남당, 한나라당 최악의 격전지에 가서 장렬하게 전사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본인도 그런 각오 정도는 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 아니겠나? -
두 번째 제안은 ‘바람난 패션’의 리더로서 쿨 세대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는 강금실 장관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 하라는 거다. 강금실 장관처럼 권위와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화려한 옷차림을 멋지게 소화하면 '낡고 부패한 당'을 위해 일해도 보다 젊고 개혁적인 인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고집스럽게 ‘육영수 스타일’을 지켜오던 박근혜 의원처럼 느닷없이 청바지를 입어선 안 된다. (그 전까지 박근혜 스타일은 꽤 좋은 이미지로 어필했다. 그녀의 단단한 멋은 여당과 야당을 구분 못할 만큼 정치적으로 무지한 패션 피플들의 무조건적인 호감을 사왔다. 그런데 강금실 장관을 의식했는지 느닷없이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어서 홀딱 깼다.) 그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고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면 오히려 대중의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은근해야 한다. 마침 이번 시즌에도 크게 유행할 예정인 란제리 풍의 이너웨어를 셔츠 대신 정장 재킷 안에 입을 것을 권한다. 강금실 장관의 보라색 숄에 대항하여 올봄 트렌드 컬러인 분홍색 하이힐을 어두운 컬러의 포멀한 수트 아래 매치시키면 보다 시크하게 보일 수 있다. 물론 그런 트렌디한 아이템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살은 좀 빼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비처럼 젊고 섹시한 연예인과 스캔들을 일으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것이 퇴임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노는 것이며, 다시 사랑이 온다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던 '낭만적인 자유인 강금실 장관'의 인기 독주를 뒤집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카드다.
세 번째, 당시 효과적인 정치 수단이었으며 후대의 패션 피플들에게 세기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두고두고 사랑받고 있는 재클린 케네디의 감각을 1/10만 흉내내도 젊은이들의 호감을 끌어낼 수 있다. 타고난 멋쟁이었던 재키는 퍼스트 레이디로 있는 동안에도 딱딱한 정장 차림조차도 멋지고 세련된 패션으로 만들었다. 전여옥 선생 체형의 특징 상 몸에 딱붙는 민소매 원피스까지는 무리일 테지만, 천으로 감싼 단추가 달린 부드러운 느낌의 정장이나 복고풍의 선글라스는 남성성이 강해보이는 여자들도 한 번 시도해 만하다.
네 번째 방법은 이것저것 다 포기하고 애시당초 전여옥 편이었던 사람들에게 부동의 신뢰감을 주기 위해 보다 고상한 취향의 상류처럼 보이는 룩을 완성하는 거다. 브랜드로 치면 샤넬이나 이브 생 로랑과 달리,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감추고 보다 절제된 방식으로 가진 자의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는 프라다나 질 샌더가 좋겠다.
그런데 그조차도 쉽지 않게 됐다. 컬티즌이라는 웹진을 통해서 입수한 최신 정보에 의하면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열성 공산당원이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번에도 틀림없이 선거 막바지에 색깔론을 들고 나올 텐데, 프라다든 질 샌더든 옷장 속에 빨갱이 브랜드의 옷을 걸어두고 있다가는 제 도끼에 제 발등이 찍히는 수모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참고로 샤넬도 안 된다. 내가 알기로 코코 샤넬은 한때 나치에 대항하기 위해 아나키즘 단체에 가입했던 전력이 있다. -
인터넷에 떠도는 전여옥 대변인의 사진 중에는 미소니로 추측되는 촌스러운 니트를 입고 홈쇼핑 모델 같은 가식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도 있다. 그 사진을 보면 미의식이라곤 눈곱만큼 없어 보이는 여자에게 괜한 소리를 지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차림 따위에 관심 없다고 말한 전여옥 씨가 유시민의 복장 불량에 대해서 시시콜콜 씹었던 일이 기억나서 나도 장난 삼아 몇 마디 적었을 뿐이다.
농담은 그만두고 진심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전여옥 씨는 그동안 여성들에게 ‘테러리스트가 되라’며 몸소 ‘언어의 테러’을 보여주셨는데, 분명한 건 '테러'보다 '평화'가 낫고, '테러리스트'보다 '아름다운 여자'가 어디에서나 환영받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 대상이 개인이든 대중이든 논쟁으로 설득시키려는 것만큼 어리석고 촌스러운 짓이 없다. 입심은 그만하면 탁월하오니, 전여옥 씨도 이제라도 패션 감각을 갈고 닦는 데 전념하시는 게 어떠실지? 일찍이 세익스피어도 <햄릿>을 통해 역설하지 않았나? "옷은 그 사람에 대해 소리를 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