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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기주봉] “당신이 보는 건 연극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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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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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다시 한번 관객을 모독하는 배우 기주봉은 기인과는 거리과 멀더라

글 오지혜(영화배우)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성이 ‘기’씨라 그런가? 연극계 대선배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 자리에 있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를 잘 알지 못했던 난 그가 웬지 ‘기인’일 것 같았다. 배우하기엔 치명적일 정도로 작은 키에 연기 말고는 별다른 소문도 없는 그를 난 왜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오랜 시간을 실험적이고 삐딱한 연극만 주로 해온 ‘76극단’의 대표이자 간판배우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가 있게 했고 그를 있게 한 연극 <관객모독>이 연극열전의 세 번째 주자로 대학로에서 다시 한번 관객들을 ‘모독’하고 있기에 그를 만났다.

배우의 ‘가오’와 생업 사이


<관객모독>은 관객을 모독하는 척하면서 연극을, 나아가서는 기존의 세상질서와 관습과 통념과 권위를 모독하는 것이다. 독일의 천재작가 피터 한트케가 30년 전 스물다섯 나이에 세계 각국에서 자신의 작품이 공연될 것을 이미 예견(?)했는지 완벽한 열린 구조로 써놓은 이 작품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집단에서 공연되는가에 따라 내용과 형식의 변주가 다양해지는 것이 가능한 작품이다. ‘형식이 곧 메시지’인 이 도발적인 연극은 우리나라에선 마치 ‘76극단’밖에 소화할 극단이 없다는 듯이 그들의 ‘얼굴’이 됐고, 기주봉은 <관객모독>이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관객을, 연극을, 세상을 비웃어왔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바라본 자연인 기주봉은 기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대에서는 묘한 카리스마와 독특한 매력을 뿜는 이 중년의 사내가 ‘역할’ 없이 관객이 아닌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그지없이 선한 소시민의 모습 그것이었다. 몇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는 ‘명계남 나오는 영화와 안 나오는 영화’로 나뉘었는데, 이제는 ‘기주봉 나오는 영화와 안 나오는 영화’로 바뀌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쑥스럽게 웃으며 바짝 메마른 손바닥으로 얼굴을 두어 차례 쓰다듬었다.

기주봉(왼쪽)의 <관객모독>은 관객을 모독하는 척하면서 기존의 세상 질서와 관습, 통념을 모독하는 연극이다. 맨 오른쪽은 함께 연기하는 배우 정재진씨.
40대 초반까지는 가족이 굶든 말든 연극배우의 ‘가오’를 지키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굴러다니는 잡지를 주워 뒤적거리는데 ‘인생지사 새옹지마 우리 한번 같이 잘 살아봅시다. 월 200 보장’이라는 광고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정수기 외판원을 모집하는 광고였고, 그는 그 길로 배우를 버리고 정수기 외판원이 된다. 사이비 종교집단처럼 새벽마다 모여서 구호를 외치는 동안 물은 반드시 정수를 해서 먹어야 한다고 세뇌가 됐다(지금도 그의 집엔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세뇌는 됐는데 고객 앞에만 가면 ‘구라’가 안 돼서 실적은 처절했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신이 나고 어디서도 나서길 좋아하던 꼬마 기주봉이었지만 노는 게 아니라 돈을 벌려고 하니 입이 안 떨어졌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고 있는데 식당 하는 친구가 왜 딴 생각을 하냐며 자신의 식당 한쪽에 모노드라마를 올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준다. 후식을 먹으면서 공연을 보는 형태이니 오래가진 못했다. 그래도 친구의 애정 어린 충고에 용기를 얻고 다시 배우로 돌아온다. 그리고 배우의 ‘가오’보다는 가족이 더 중요하다는 걸 40대 중반이 돼서야 깨닫는다. 영화판을 들쑤시기 시작했고 단 몇년 만에 충무로에서 제일 잘나가는 조연배우가 됐다.

박리다매일까? 그가 안 나오는 영화가 없건만 아직 작은 집 한채 마련을 못했단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나라 영화배우의 출연료에 주·조연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고 일침을 놨다. 자본의 논리는 이해하지만 조연이 받쳐주지 못하면 주연도 빛이 나질 않고 수십년 동안 내려온 ‘배우들의 질서’가 있는 법인데 심한 박탈감을 느낄 정도로 몸값이 차이난다면 현장 분위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예술을 하러 왔다지만 30년 연기한 자신보다 수십배 많이 받는 어린 배우들을 대할 때마다 선배로서 다정하게 연기의 노하우와 인생의 지혜를 전해주고 싶어도 머릿속에서 몸값 숫자가 떠나질 않아서 자꾸 주눅이 든다는 거다. ‘동감’하고 ‘공감’하고 ‘통감’하는 부분이다.

주연과 조연의 출연료 차이

이번에 민예총의 새로운 수장이 된 황석영씨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최근 며칠 동안 국회에 들어가서 새 문예진흥법을 들고 쫓아다녔는데 별 성과 없이 사실상 폐기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국회의장이 급박한 민생 문제는 아니잖냐고 되묻더란다. 황석영씨는 그게 왜 ‘민생현안’이 아니냐며 열 받아 하더란 얘기다. 20년이 넘게 100편이 넘는 연극을 한 대학로 최고의 배우가,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 정수기 외판원이 된 상황이 급박한 민생이 아니라니. 배우는 ‘민’이 아니라는 걸까? 가난이 시가 되는 함민복의 시구도 생각났다. “시 한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후략)” 기주봉은 다행히도 ‘영화판’에 뽑혀서 가난을 면했지만 수많은 기주봉들은 지금도 정수기 외판원과 무대 사이를 갈팡질팡하고 있다. 소를 키우는 일이나 땅을 일구는 일은 ‘급박한 민생’이고 딴따라는 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굶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건 참으로 섭섭하고 답답하다.

올해 그는 50의 배우가 됐다. 서른, 마흔 그리고 쉰. 무엇이 달라졌는가 물었더니 몸이 달라졌단다. 세상을 바라보는 어쩌구 하는 현학적인 답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 몸이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지는 법. 더 이상의 정확한 답변이 어딨을라고. 요즘 제일 걱정되는 것이 무엇이냐 했더니 역시 자기 몸이 늙어간다는 것이란다. 이 나라의 정치·경제도 아니고 누구처럼 세계평화도 아닌 자기 몸뚱아리에 대한 연민이 그의 가장 큰 관심사였고 너무도 어린 아이 같은 솔직한 대답에 그나마 있지도 않은 경계심 따위가 무장 해제된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옆의 사람까지 덩달아 착해지게 만드는 사람 말이다.

정수기를 팔 때는 수돗물과 정수기물이 얼마나 다른지 기를 쓰고 설명해도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 그였다. 하지만 지금 <관객모독>을 보러 간 관객들은 그가 “당신이 보고 계신 건 연극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그래, 이건 연극이 아닐 거야” 하고 금세 그에게 홀려버린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무대였던 것이다.

형님의 충고 “너나 잘해라”

배우가 된 동기가 어려서부터 그저 나서기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서 떠들기 좋아했기 때문이란다. 아니, 이 말 없고 수줍음만 타는 아저씨가? 상상이 안 간다 했더니 자신이 조용해진 계기가 있다고 한다. 그가 20대 중반일 때 그의 형이자 대학로의 중견 연출가이고 <관객모독>의 연출가인 기국서 선생이 툭 하면 나서는 그에게 “너나 잘해라”고 따끔하게 충고를 했다고 한다. 그 이후, 떠들고 나면 밀려오는 공허감과 허탈감을 견디지 못했고 베케트 작품 같은 부조리극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배우로서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다. 그때부터 나서기 대장이던 그가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말 없는 사람이 됐다는 거다. 분명 자신의 얘길 하고 있는 것임을 알면서도 나는 땀이 쭉 날 정도로 뜨끔했다. “너나 잘해라.” 내 근간의 화두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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