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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와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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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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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탈학교생

지난해 권인숙씨의 자서전 <선택>이 출간되고 부산을 찾은 저자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강의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기억을 공유하는 아주머니들 틈에 끼어 강의를 듣던 난 그녀에게 “여성주의가 뭐예요?”라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했다. 성고문 폭로 사건의 세대가 아닌 난, 사실 여성이 공개적으로 성폭력에 관한 발언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고 그저 여성주의가 뭔가 해서 참석했기에 당당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아마 그때 그녀의 답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로 기억된다.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1년이 지난 지금, 내게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3월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펼쳐진 ‘3·8 여성무지개 시위’의 선언문에 낭독된 “우리는 장애여성이며, 성소수자 여성이며, ‘국민’의 이름을 거부한 여성”이란 말은 내가 페미니즘을 받아들인 맥락에 맞닿아 있다. 이 글에 난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라 말하지 않았다. 난 페미니즘을 마초라는 개별자와 가부장적 남성주의라는 권력구조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일 뿐, ‘젠더’ 구분에 따라 남성 혹은 비여성을 배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라 명하지 않은 이유이다. 성소수자라는 나의 성정체성은 차별받아야 하는 주변적 위치에 놓여 있었고, 여기에서 페미니즘을 내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을 발견했다. 편안하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나의 친구들은 대다수 페미니스트였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상처받은 그들은 이성애중심 사회가 가한 억압의 상처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페미니스트의 적은 동시에 나의 적이기도 했다.

호주제 폐지를 외치며 부모성을 갖고 쓰기를 주장하는 이들의 ‘성’이란 양쪽 모두 가부장적 역사의 유산이기에 언젠가부터 난 이름에서 성을 아예 떼어버렸다. 그리고 호주제 폐지 행사 때 퍼포먼스를 함께했고, 사회의 진보를 구현하는 데 남성적인 운동에 대한 회의감을 갖기도 했다. 그 밖에 드러나지 않는 삶의 영역에서 페미니즘은 여성과 약자들이 살아가기 좋은 세상을 위해 얄팍하나마 나에게 고민과 실천을 이끌었다. 하지만 가끔 남성이라는 이유로 소외되는 여성들의 행사를 볼 때면 자매애로 뭉친 언니들에게 혼자 일방적으로 악수를 건네며 그들의 틈에 끼어들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서글픔도 들었다. 그렇지만 커밍아웃에 따른 상대방의 반응을 예상하며 선별적으로 상대를 대했던 게이로서의 나를 떠올리면,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자리에 남성의 육체를 가진 이들에게 거부감을 갖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여성이기 때문에 ‘낄’ 수 없는 남성의 영역이 얼마나 많았던가.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내게 페미니즘이란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두 (남)동생의 대학 뒷바라지를 하고 직장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엄마, 그리고 (여)동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와 여성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조금 더 좋은 사회를 살기 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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