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자 플라스틱의 형태 변화 이용해 모터 대체… 미세체계에 생체근육 심은 생분자 로봇도 나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누군가 신기한 눈으로 소형 수족관을 바라본다. 수족관에는 원색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색깔을 입히지 않았다면 실제 물고기라 해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족관의 물고기는 우리 돈으로 17만원 정도에 팔리는 로봇 장난감일 뿐이다. 놀라운 것은 플라스틱 물고기에 어떤 기계적 요소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터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기어나 배터리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고기는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어떤 구동장치도 없이 물고기가 움직이는 비결은 플라스틱 내부가 앞뒤로 수축·이완하는 데 있다. 전기에 반응해 플라스틱이 움직인다는 말이다. 일본의 이에멕스사와 다이치코게이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이 로봇 물고기는 ‘전기활성 고분자’(EAPs·electroactive polymers)를 이용한 최초의 상업적 제품이다.
그동안 액추에이터(운동 발생 장치) 연구자들은 인체 근육을 대체할 물질을 찾으려 했다. 미세 전기 모터의 제작이 이뤄지지 않는 소형 구동장치에 인공근육(Artificial muscles)을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전기활성 고분자로 로봇팔을 제작해 팔씨름 선수에게 도전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나름대로 성과도 있어 인공으로 구동되는 탐사로봇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미국 애리조나대학에서 제작한 ‘바이오래드’(Biorad)라는 로봇은 전선이나 스프링에 전기가 통하면 실제 근육처럼 움직였다. 바이오래드는 화성 탐사로봇 스피리트(Spirit)의 원형으로 바퀴 달린 로봇이 넘보지 못할 지형들을 가로질러 움직이며 자신의 무게보다 1만7천배나 무거운 짐을 나르기도 했다. 게다가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고 바위를 뒤집거나 광물 샘플을 분쇄할 수 있었다
플라스틱 물고기… 구동장치 없는 로봇들 하지만 전선이나 스프링을 이용한 인공근육은 유연하지 않아 활용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전기 자극을 받게 되면 길이나 부피가 두드러지게 커지거나 줄어드는 경량의 재료를 개발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생물학적 시스템을 모방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경 자극의 반응을 바꾸면 인공근육이 눈꺼풀을 깜박이거나 역기를 들어올릴 정도로 힘을 쓰게 하는 식이다. 유연재료를 이용한 인공근육 액추에이터의 목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무수히 많은 전기모터를 대체하는 것. 새로운 인공근육의 기본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고전압의 전기장에 노출되면 실리콘이나 아크릴과 같은 ‘전기장 구동 고분자’(유전성 탄성중합체)가 전기장의 방향에 따라 수축하고 전기장 방향의 수직으로 팽창한다. 한마디로 말해 전기를 이용해 플라스틱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근육은 소형 우주탐사로봇에 응용되고 있다. 이미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인공근육연구팀은 적은 양의 전기에 재빠르게 반응함으로써 근육처럼 늘었다 줄어드는 인공근육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인공근육은 신축성이 아주 뛰어나면서도 가벼운 특수 재질의 전기활성 고분자로 만들어져 약한 전기에도 손가락 근육처럼 수축·이완 반응을 한다. 단순한 구조 때문에 물체를 집어서 들어올리는 등의 소형 로봇 기능에 주로 활용될 전망이다. 나사 연구팀의 요세프 바코헨 박사는 “머지않아 인공근육이 자연근육처럼 탄성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며 “개미처럼 땅을 파거나 고양이처럼 부드럽게 착지하는, 그리고 메뚜기처럼 먼 거리를 뛰는 소형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공근육이 실제처럼 움직이려면 지금의 전기활성 고분자를 더욱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인공으로 근육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는가 하면 실제 근육을 미세체계(Micro System)에 심으려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미세체계는 전자·기계·전기·화학 등 모든 분야를 경박단소화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로 미국에선 멤스(MEMS), 일본에선 마이크로머신(Micro Machine)이라 불린다. 국내에서도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 사업으로 ‘지능형 마이크로시스템 개발사업단’(www.microsystem.re.kr)이 발족돼 미세체계를 생의학(Biomedical)에 접목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사업단은 ‘캡슐형 내시경’과 자신의 질병을 손목시계형 컴퓨터로 자가 진단하는 ‘마이크로PDA’(MICO)를 개발했으며, 앞으로 내시경에 운동 기능을 첨가해 인체 구석구석을 통증 없이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사실 이런 기기는 극소형의 미세체계에서는 ‘초대형’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나노생물공학자들은 극소형의 금속추진기를 장착한 ‘생분자 모터’를 개발하고 있다. 생분자 모터의 길이는 약 750nm(나노미터)이고 직경은 150nm에 지나지 않는다. 바이러스 정도의 크기인 셈이다. 이 생분자 모터는 살아 있는 세포들이 에너지원으로 삼는 ATP 효소를 그대로 이용하며 니켈로 구성된 추진기가 회전하면서 추진력을 얻는다. 이렇게 만든 생분자 모터는 박테리아에서 추출한 ATP가 포함된 용액에 들어가면 모터를 작동한다. 이 연구는 머지않아 나노 약물의 전달체 구실을 하거나 손상된 유전자를 건강한 것으로 바꾸는 데 쓰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생분자 모터가 움직이기만 할 뿐 계산을 하거나 사물을 알아채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체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집합체를 생성하는 등의 지능적 활동이 생분자 모터 활용의 관건인 셈이다.
실제 근육의 힘으로 움직이는 극미세 로봇
최근 생분자 모터는 근육의 힘으로 움직이는 극미세 로봇으로 거듭났다. 미국 코넬대학 나노생물공학자 카를로 몬케마그노 박사팀이 사람 머리카락의 절반 두께의 실리콘으로 만든 극미세 로봇에 살아 있는 심장 근육을 이식해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다. 50㎛의 아치형의 근육 로봇은 심장 근육 섬유의 줄을 이용해 아치를 구부리고 뻗게 해서 동작을 취한다. 근육은 접시에 글루코오스 자양분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다. 만일 근육 로봇이 작업하는 곳의 표면에 글루코오스를 발라 두면 스스로 에너지를 얻어 활동활 수 있다. 근육로봇은 초당 40㎛의 속도로 이동한다. 몬케마그노 박사팀이 근육조직을 실리콘 기판에 고정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기계에 생명현상을 그대로 심은 셈이다.
근육로봇은 미세체계의 일대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전신마비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근육에 기반한 신경자극기를 이용하면 통풍관이 없이도 호흡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우주 공간에서 걸어다니는 근육로봇떼들이 활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소운석에 의해 구멍 뚫린 우주비행체를 수리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형태를 바꾸는 플라스틱 인공근육과 근육로봇이 결합해 극미세 세계 밖으로 나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플라스틱 인공근육을 이용한 로봇팔이 인간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생명현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다. 극미세 세계 밖에서 생명현상을 이뤄낼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기 활성 고분자로 만든 로봇팔(<사이언스 올제>)
플라스틱 물고기… 구동장치 없는 로봇들 하지만 전선이나 스프링을 이용한 인공근육은 유연하지 않아 활용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전기 자극을 받게 되면 길이나 부피가 두드러지게 커지거나 줄어드는 경량의 재료를 개발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생물학적 시스템을 모방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경 자극의 반응을 바꾸면 인공근육이 눈꺼풀을 깜박이거나 역기를 들어올릴 정도로 힘을 쓰게 하는 식이다. 유연재료를 이용한 인공근육 액추에이터의 목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무수히 많은 전기모터를 대체하는 것. 새로운 인공근육의 기본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고전압의 전기장에 노출되면 실리콘이나 아크릴과 같은 ‘전기장 구동 고분자’(유전성 탄성중합체)가 전기장의 방향에 따라 수축하고 전기장 방향의 수직으로 팽창한다. 한마디로 말해 전기를 이용해 플라스틱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멕스사 연구원이 플라스틱만으로 움직이는 로봇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다.

생체 효소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생분자 모터의 분자 형상 이미지(위). 이들이 로봇으로 변신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