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감춰뒀던 당신만의 발랄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싶지 않은가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황사 속에서, 여자의 봄은 어떻게 오는가?
의류학자들이 제시하는 의복의 기원과 변천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탈리아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개인적으로 ‘이성 유혹설’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도시 문명인들 중에서 이탈리아 사람들만큼 색(色)을 노골적으로 밝히는 종자들이 없는데, 그 때문인지 돌체&가바나, 발렌티노, 베르사체, 카발리 등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은 누구나 섹스 어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패셔너블하고 매력적인 인종으로 보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은행원이든 상점 점원이든 누구나 일은 뒷전이고, 각자 나름대로 옷으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표현하는 데 더 열중한다.
그런데 이탈리아 남자들이 환호하는 섹시한 여자들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이다. 얼마 전 밀라노에 갔을 때 디자이너 카발리가 주최하는 파티에 간 일이 있었는데, 그 파티에서 남자들의 뜨거운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카발리 애인인가 무슨 영화배우인가 하는 여자는,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쳐주어도 소프트 포르노 스타밖에 안 돼 보였다. 그런데 그런 ‘모넬라’(이탈리아의 에로영화. 화면 가득 엉덩이가 나온다) 이미지가 이탈리아 남자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상형이라고 한다. 하기사 그러니까 포르노 스타가 국회의원이 되고, 그녀가 토플리스 차림으로 국회에 출입할 마음도 먹었겠지.
그리고 밀라노에서 가장 물 좋다는 ‘G 라운지’에 갔을 때 확신했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공적인 장소에서 가슴을 반쯤 드러내놓고 좌우로 흔들어대는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탈리아 여자들이 수술 과정이 생중계되는 프로그램에 나가서라도 기를 쓰고 가슴 확대 수술을 받으려고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애처로운 생각마저 들었다. 자기 여자를 발가벗겨 놓은 채 의사가 검정 펜으로 엉덩이나 가슴 등의 수술 부위에 등곡선 같은 걸 그리고 있는데도, 스튜디오에 앉아 그 광경을 태연히 구경하는 그 남자친구를 보고 있으면 참으로 비천한 인간들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어찌하리? 원래 인간이 만든 문명이라는 건 한편 고귀하고 한편 비천한 것인데.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시각성(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는 믿지 않는 성질. 그 때문에 디자인·패션 등의 문화산업이 발전한 듯)이 있다고 하니 그렇다 치고, 걸핏하면 내면의 중요성을 운운하는 우리나라 남자들은 제발 이걸 좀 알아줬으면 한다. ‘공적인 장소에서 나체가 되지 않는 여자는 사적인 장소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나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일례로 어제 아침 한 여자 후배는 재킷 지퍼를 내리고 자기가 그 안에 무슨 옷을 입었는지 보여주었는데, 나는 재킷 안에 숨겨진 그 아이의 발랄한 생명력에 기분이 묘해지고 말았다. 재킷 안의 옷은 그저 가슴 윗부분과 팔을 노출시킨 프릴이 달린 연분홍색 톱에 불과했지만, 그건 분명히 봄을 맞아 그 기운에 몸을 맡기는 한 젊은 여자의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이었다. ‘와, 정말 예쁘다’는 나의 사심 없는 칭찬에 그 애는 말했다. “그럼 뭐해요? 내내 재킷을 입고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 아이도 언제, 어디선가 재킷을 벗어던지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오늘 아침엔 서울에 올 들어 첫 황사가 발생했다. 오후에 창밖을 보니 도시 전체가 누런 흙먼지에 갇혀 불길한 미래 도시처럼 표류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몇 차례 더 온다는 황사에 대비해서 즐겁고 쾌활한 색상의 저지 스커트라도 사두어야겠다. 마스크 안에 감춰두고 싶은 핑크빛 스위트 루즈도….

영화
그리고 밀라노에서 가장 물 좋다는 ‘G 라운지’에 갔을 때 확신했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공적인 장소에서 가슴을 반쯤 드러내놓고 좌우로 흔들어대는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탈리아 여자들이 수술 과정이 생중계되는 프로그램에 나가서라도 기를 쓰고 가슴 확대 수술을 받으려고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애처로운 생각마저 들었다. 자기 여자를 발가벗겨 놓은 채 의사가 검정 펜으로 엉덩이나 가슴 등의 수술 부위에 등곡선 같은 걸 그리고 있는데도, 스튜디오에 앉아 그 광경을 태연히 구경하는 그 남자친구를 보고 있으면 참으로 비천한 인간들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어찌하리? 원래 인간이 만든 문명이라는 건 한편 고귀하고 한편 비천한 것인데.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시각성(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는 믿지 않는 성질. 그 때문에 디자인·패션 등의 문화산업이 발전한 듯)이 있다고 하니 그렇다 치고, 걸핏하면 내면의 중요성을 운운하는 우리나라 남자들은 제발 이걸 좀 알아줬으면 한다. ‘공적인 장소에서 나체가 되지 않는 여자는 사적인 장소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나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일례로 어제 아침 한 여자 후배는 재킷 지퍼를 내리고 자기가 그 안에 무슨 옷을 입었는지 보여주었는데, 나는 재킷 안에 숨겨진 그 아이의 발랄한 생명력에 기분이 묘해지고 말았다. 재킷 안의 옷은 그저 가슴 윗부분과 팔을 노출시킨 프릴이 달린 연분홍색 톱에 불과했지만, 그건 분명히 봄을 맞아 그 기운에 몸을 맡기는 한 젊은 여자의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이었다. ‘와, 정말 예쁘다’는 나의 사심 없는 칭찬에 그 애는 말했다. “그럼 뭐해요? 내내 재킷을 입고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 아이도 언제, 어디선가 재킷을 벗어던지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오늘 아침엔 서울에 올 들어 첫 황사가 발생했다. 오후에 창밖을 보니 도시 전체가 누런 흙먼지에 갇혀 불길한 미래 도시처럼 표류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몇 차례 더 온다는 황사에 대비해서 즐겁고 쾌활한 색상의 저지 스커트라도 사두어야겠다. 마스크 안에 감춰두고 싶은 핑크빛 스위트 루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