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가면을 통해 세계문화의 본능, 우리 안에 감춰진 또다른 얼굴을 보다
나는 당신의 벌거벗은 표정을 볼 수 있는데 당신은 내가 보여주는 이미지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것. 가면의 마력은 대단히 원초적이다. 원시공동체사회 샤먼들이 사용한 가면으로부터,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탐 크루즈가 썼던 가면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간, 어느 장소를 불문하고 가면의 목적은 한 가지다. “나를 감추고 내 안의 나를 드러낸다”는 대단히 인간적인 욕망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목적은 같을지라도 이 신비한 오브제는 때와 곳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왔다.
고대 이집트, 부활의 욕망을 담아
<마스크, 투탄카멘에서 할로윈까지>(개마고원 펴냄, 1만5천원)는 인간에게 가면이란 무엇인가를 밝히는 책이다. 세계 곳곳의 가면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 가면이 가진 기능을 논했다. 대영박물관 민족지학부 책임자 존 맥을 비롯해 여덟명의 큐레이터 또는 연구소 소장들이 같이 쓴 만큼 컬러사진이 풍성하고 고증이 충실하다.
흥미로운 것은 가면이 욕망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도구이면서 반대로 적나라하게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가면은 부활이라는 욕망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투탕카멘의 가면이 입증하듯이, 미라가면은 시신을 지키고 부활의 힘을 주는 가면이었다. 가면이 산 자만의 것이 아니요, 죽은 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집트에서 잘 드러난다. 시신에 씌운 미라가면이야말로 이집트인에게 아주 중요했다. 이집트인들이 가장 두려워한 재난은 죽은 뒤 주검에서 머리가 없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라가면이 있는 경우에는 혹시라도 머리부분이 없어져도 부활이 가능했다. 이집트에서 가면은 또한 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들은 신의 머리카락이 군청색 청금석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면 머리칼에 청색을 입혔고, 신들이 황금빛 피부를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면에 금박을 입혔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금박 대신 노란색을 칠했다. 이렇게 미라가면은 돈없는 사람이나 돈있는 사람에게나 필수품이었기 때문에, 똑같은 모양으로 대량생산되었다. 단 왕족처럼 이미 신과 같은 존재이면서 돈이 많은 경우에는 얼굴의 특징을 살려 주문제작을 했다. 얼굴 특징을 살려봤자 사실적인 가면은 아니었다. 신의 모습을 본따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상징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로마시대에 와서 미라가면은 사실주의적으로 변한다. 당시 로마인들은 사람 모습 그대로인 자기들을 신이라고 생각할 만큼 자민족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과 연계해서 살펴보면 재미있다.
오세아니아에 와서 가면은 완전한 예술작품이 된다. 파푸아뉴기니의 서부 엘레마족은 2m짜리 가면을 주기적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한번 만들 때마다 120개씩 대량으로 만들었다. 이는 숲의 정령과 바다의 정령에 바치는 의식에 쓰인 가면이었다. 숲의 정령을 위한 의식은 코바베, 바다의 정령을 위한 의식은 헤베헤라고 불리는데, 놀랍게도 헤베헤를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는 데는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 나무와 야자잎으로 만든 이 탈은 엄청난 인력이 소요되므로 풍작일 때만 만들 수 있었다. 헤베헤 의식은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밀을 모르는 어린이를 비밀을 아는 어른으로 성숙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 막 어른의 문턱에 들어선 소년들은 가면을 쓴 사람들이 정령의 딸이 아니라 변장한 성인남자라는 것, 정령인 척 가장하는 시끄러운 소리도 의식에 가담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내는 소리라는 것을 배운다. 즉 가면 아래 있는 진짜 얼굴을 직시함으로써 우리 삶이 환상과 사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얼굴을 가리는 행위가 주는 자유
(사진/일본의 가면극 노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연극인 도조지의 한냐가면.미녀인 기요히메가 승려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분노로 변신할때 쓴다(맨위).나무껍질로 만든 파푸아뉴기니의 연안지역 엘레마족의 가면(아래).높이 154cm로 숲의 정령에게 바치는 의식 코바베에 사용했다) 그러나 오세아니아니 아프리카니를 다뤘더라도 이 책 역시 서구인의 펜으로 쓰인 책이다. 예를 들어 저자들은 ‘가면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답을 서구사회에서 이끌어낸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유럽의 가면놀이에서 그 해답을 찾는 것이다. 유럽의 가면놀이는 대개 계절이 변하는 시기, 환절기에 이루어진다. 이렇게 인간 심리가 불안정할 때 자신을 고정된 이미지로 가다듬고 익명의 공동체 속에서 불안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 가면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반면 아시아에서의 가면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잘 홍보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예술적인 가면들은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일본 정도가 중요하게 다루어질 뿐이다.
그레고리 어빈에 의해 쓰인 일본에 대한 장은 제법 무게있게 다뤄져 있고 정보도 충실하다. 가구라, 기가쿠, 부가쿠, 불교의식, 사자춤, 교겐,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가면극 노(能)에 이르기까지 망라되어 있다. 어빈의 독특한 점은 옛날 일본 가면을 설명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일본의 싸구려 플라스틱 가면까지 주목했다는 것이다. 일본 축제 때 가면은 아이들이 주로 쓴다. 이때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 예를 들어 울트라맨이나 안판맨(호빵맨) 같은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해서 기꺼이 가면을 구입한다. 어른들이 축제에서 가면을 쓰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어른들은 절제된 페르소나를 던져버리고 자유롭게 즐기기 위해서 쓴다. 그러나 얼굴을 가린다는 행위를 통해서 가면이 우리에게 주는 자유는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동일하다.
결국 여덟명의 저자들은 가면이라는 매개를 통해 세계문화의 본능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아한 베니스산 도자기 가면을 바라볼 때, 술집 할로윈 파티에서 쓰는 값싼 나비가면을 쓸 때 우리의 심장은 두근거린다. 가면은 우리 안에 감춰져 있는 또다른 얼굴이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가면을 집어들게 하는 것이며, 이 오래된 문화유산이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가지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이유다.
이민아 기자 mina@hani.co.kr


(사진/이집트의 제18왕조 초기 사트제후티라는 여성의 미라가면.신의 외양을 본뜨고자 금색피부를 푸른 머리칼을 한 것이 눈에 띈다)
흥미로운 것은 가면이 욕망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도구이면서 반대로 적나라하게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가면은 부활이라는 욕망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투탕카멘의 가면이 입증하듯이, 미라가면은 시신을 지키고 부활의 힘을 주는 가면이었다. 가면이 산 자만의 것이 아니요, 죽은 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집트에서 잘 드러난다. 시신에 씌운 미라가면이야말로 이집트인에게 아주 중요했다. 이집트인들이 가장 두려워한 재난은 죽은 뒤 주검에서 머리가 없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라가면이 있는 경우에는 혹시라도 머리부분이 없어져도 부활이 가능했다. 이집트에서 가면은 또한 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들은 신의 머리카락이 군청색 청금석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면 머리칼에 청색을 입혔고, 신들이 황금빛 피부를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면에 금박을 입혔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금박 대신 노란색을 칠했다. 이렇게 미라가면은 돈없는 사람이나 돈있는 사람에게나 필수품이었기 때문에, 똑같은 모양으로 대량생산되었다. 단 왕족처럼 이미 신과 같은 존재이면서 돈이 많은 경우에는 얼굴의 특징을 살려 주문제작을 했다. 얼굴 특징을 살려봤자 사실적인 가면은 아니었다. 신의 모습을 본따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상징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로마시대에 와서 미라가면은 사실주의적으로 변한다. 당시 로마인들은 사람 모습 그대로인 자기들을 신이라고 생각할 만큼 자민족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과 연계해서 살펴보면 재미있다.

(사진/길짐승이 날짐승으로 변신한다는 설화와 관련된 변신가면.아메리카 서북해안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북부에서 발견된 것이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