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내세운 소비적 트랜드에 전사회 도취… 얄팍한 상술 벗어난 ‘웰빙’은 없는 걸까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지난 마감 때 일이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새벽 3시에 귀가했다. 도시의 모든 독신자들이 그렇듯 내 집 소파에 가여운 몸뚱아리를 눕히자마자 텔레비전부터 켰다. 배우 서갑숙씨가 홈쇼핑 채널에서 ‘서갑숙의 웰빙 좌욕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왠지 초현실적인 기분이 들어 나는 한참 동안을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새벽에 분홍색 보자기 같은 볼품없는 치마를 둘러 입고 좌욕기 위에 앉아서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들을 보는 일은 어딘지 굉장히 쓸쓸했다.
도대체 ‘웰빙’이 뭐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트랜드를 쫓지 못해 난리일까? 웰빙(Well-being)이란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몸과 마음이 본질적으로 원하는 최적의 상태로 돌보자는 움직임이라고 하는데, 내 보기에 작금의 열풍은 마치 쓸모없는 물건을 팔아치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캐치프레이즈 같다. 한때는 연예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패션계에서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꽃피우고 있는(특히 <바자>의 스페셜 에디터로서의 활동이 돋보임) 멀티 플레이어 오제형은 ‘웰빙 트렌드 과열 열풍’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록시땅의 풋크림이나 갤러리아백화점의 유기농 야채를 산다고 저절로 웰빙이 되는 건 아닐 거야. 하지만 확실한 건 등골이 휘도록 열심히 돈을 벌자는 과거의 슬로건보다는 훨씬 낫다는 거야.”
과연 그럴까? 한편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새로운 트렌드는 또 다른 소비의 욕망을 부추길 뿐이고, 우리는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또다시 등골이 휘도록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웰빙 때문에 웰빙이 안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니체는 인간이 소유한 것들이 결국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 거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자연주의를 지향한 제품들이 결국 우리를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얼마 전 <바자>의 일본 통신원에게서 요즘 일본인들의 의식주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오가닉 열풍’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으며 나는 잠시 미세한 구토증을 동반한 격렬한 현기증에 시달렸다. 재배 산지가 표시된 무공해 야채라면 나 역시 언제든지 환영이다. 하지만 요즘 최고의 히트 아이템이라는 유명 브랜드의 유기농 수면제나 가슴 알약 같은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집안 구석구석에 이끼를 깔아 장식하고, 콘크리트 벽 사이로 삼나무 향을 맡는 생활은 과연 자연을 숭배하는 현대의 일본인들이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가? 한편 패션 피플 중에서 최근 오랫동안 공들여 쌓은 화려한 커리어를 버리고, 진짜 자연 속에서 소박한 웰빙 라이프를 찾은 여자 선배들이 있어, 내게 절망 끝에 희망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들의 용기 있는 선택과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진정 충만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 하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얼마 전 <바자>의 일본 통신원에게서 요즘 일본인들의 의식주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오가닉 열풍’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으며 나는 잠시 미세한 구토증을 동반한 격렬한 현기증에 시달렸다. 재배 산지가 표시된 무공해 야채라면 나 역시 언제든지 환영이다. 하지만 요즘 최고의 히트 아이템이라는 유명 브랜드의 유기농 수면제나 가슴 알약 같은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집안 구석구석에 이끼를 깔아 장식하고, 콘크리트 벽 사이로 삼나무 향을 맡는 생활은 과연 자연을 숭배하는 현대의 일본인들이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가? 한편 패션 피플 중에서 최근 오랫동안 공들여 쌓은 화려한 커리어를 버리고, 진짜 자연 속에서 소박한 웰빙 라이프를 찾은 여자 선배들이 있어, 내게 절망 끝에 희망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들의 용기 있는 선택과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진정 충만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 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