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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열린 노마드 ‘따로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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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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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 서상영씨와 설치미술작가 양혜규씨가 동업자로 미술관에서 패션쇼를 여는 까닭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공자님은 널리 배우고 많이 아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고 하셨지만,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선 널리 배우고 알고자 하는 것의 ‘코드’가 통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배움과 앎이 확장되고 쌓여가며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내고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

71년생 돼지띠. 패션디자이너 서상영, 설치미술작가 양혜규. 이들은 다르면서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다. 그러나 이들은 ‘친구’라는 말보다는 굳이 ‘동업자’라는 말을 고집한다. 이들의 사귐이야말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창작과 생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71년생 동갑내기인 패션 디자이너 서상영씨(오른쪽)와 설치작가 양혜규씨(왼쪽)가 전시회 ‘믹스막스’에 선보일 작품을 만들고 있다.(류우종 기자)


예술로 승화시킨 이색 패션쇼

2월21일부터 5월2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전시회 ‘믹스막스’(MIXMAX)에서 두 사람이 내놓는 작품이 특별하다. 전시 오프닝인 2월20일, 두 사람은 ‘사이즈 메이커’(SIZE MAKER)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으며 패션쇼를 연다. 한번도 디스플레이쇼를 열지 않았던 디자이너 서상영씨가, 쇼라는 형태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첫 번째 쇼를 하필 미술관에서 여는 까닭은 무얼까? 2월11일 강남 신사동 서상영씨의 매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대학에선 불문학을 전공한 서상영씨가 패션을 공부하고자 파리로 떠난 것이 1997년이고, 돌아온 것이 2000년. 이후 3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그는 강남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10평가량의 매장과 작업장을 차렸고 “돈이 한참 부족하긴 하지만” 패션계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가 촉망받는 신인 디자이너로 부상한 것은 앙드레김처럼 유명 탤런트들을 모델로 내세워 호텔에서 화려한 쇼를 펼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내면에 많은 멋을 간직한고도 멋을 낸 듯 안 낸 듯한 정말 멋쟁이 남자 20명”을 섭외했다. 뮤지션 백현진·권병준(고구마),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 다큐멘터리 감독 이난 등이 그의 레이더에 걸려들었다. 그는 이들에게 자기 옷을 입히고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고 여기에 뮤지션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별’의 음악을 얹어 한장의 CD로 구워 바이어들에게 보냈다. 14분30초가량 되는 이 짧은 영상물은 바이어 없는 쇼를 치르던 패션계에 경종을 울린 셈이 됐다. 지난해 10월엔 압구정동의 영화관을 빌려 패션쇼가 아닌 ‘상영회’를 열었다. 그는 “서로 종사하는 장르나 매체가 다르더라도, 각각의 분야에서 얼마나 질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선 서로 금방 느낄 수 있다. 충심이 느껴지니까.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말한다.

파격적 행보로 각자의 세계를 구축한 두 사람이 새로운 작품을 위해 동업자로 만났다.(류우종 기자)
이처럼 크로스오버에 대한 감수성이 진작부터 갖춰진 서상영이 설치 작가를 만나 함께 패션쇼를 여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필연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양혜규씨에 대해 일단 ‘잘나가는 작가’라는 관점에서 소개하자면, 독일에서 유학하고 파리에서 전시회를 하고 일본에 초청돼 작품을 만들었으며, ‘현재는’ 9개월짜리 작가지원 프로그램에 초대돼 영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 여러 나라를 누비며 활동하는 그를 두고 한 평론가는 ‘신 유목민’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그가 단지 여러 장소를 옮겨다니기 때문만이 아니고, 작업실이나 거주지, 조건이나 상황의 맥락에 따라 작품을 만들어 공간의 의미를 새로 창조해나가기 때문이다. 가령 그가 2001년 ‘베를린 아트포럼’에 내놓았던 작품만 보아도 그렇다. “당시 귀빈접대실(VIP 라운지)을 새로 꾸며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보통 그런 공간은 가구들이 한 세트의 똑같은 가구들로 통일돼 있지 않은가. 나는 TV쇼 사회자 같은 명사들을 비롯해 친구, 이웃들로부터 여러 가지 종류의 테이블과 의자를 빌려 그곳을 채웠다. 삐걱거리는 헌 의자, 교실의 나무 책상, 세련된 스틸 테이블 등 다양한 색깔과 형태들의 가구가 놓인 것이다. 부티나고 엄숙한 접대실을 예상했던 사람들은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웃음을 터뜨렸고 즐거워했다.”

서로 파격적 행보… “고정관념에 철퇴를 ”

양혜규씨와 서상영씨가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2003년 에르메스 수상 후보 전시회’에서였다. 당시 양혜규는 ‘악타 비스타-자유롭게 종사하기’를 내놓았는데, 관객들이 전시된 책을 집어들고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을 골라 이를 녹음하고, 다시 이 녹음을 들으며 뜨개질을 하는 ‘참여형 작품’이었다. 어떤 이는 꽈배기뜨기 같은 고난이도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고, 어떤 이는 뜨개코를 빠뜨려 폭을 갑자기 줄이기도 해 아주 자유로운 모양의 기다란 손뜨개 목도리가 탄생했다. 서상영씨는 여러 사람들의 손길이 묻은 니트 작품을 보면서 이를 자신의 작품으로 끌어들이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양혜규씨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서상영씨가 디자인한 깃없는 트렌치코트.
이들이 이번 전시회에 내놓는 ‘사이즈 메이커’는 두 사람이 따로따로 행하던 파격을 합쳐놓은 것이다. “보통 기성복은 스몰(S)·미디엄(M)·라지(L) 세 종류로 나뉜다. 하지만 이것은 산업적 필요에 맞춰 임의대로 정한 표준형 사이즈일 뿐 결국엔 어느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 사이즈다. 우리는 기성복 사이즈 라벨에서 누군가가 정해놓은 제도, 관습, 관행 따위를 읽는다.” ‘사이즈 메이커’는 결국 새로운 제도, 시스템을 만들어가겠다는 선언적인 이름인 셈이다. 서상영씨는 본래 자신의 옷에 하얀 견출지 모양의 라벨을 붙여왔다. 그의 옷에는 브랜드를 알리는 어떤 흔적도 없다.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견출지나 일부러 깃을 뗀 트렌치코트, 트럼프 문양을 앞면 전체에 인쇄한 티셔츠 등이 그의 심벌이었다. 브랜드를 명시하지 않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이제 ‘사이즈’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

“패션쇼에선 6명의 모델이 나와 ‘사이즈’가 몸에게 휘두르는 구속을 보여주거나, ‘큼’과 ‘작음’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묻는 옷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합쳐진 목도리나 모자 같은 소품들도 나온다.”

지난해 크로스오버 CD를 만들 때 함께 작업했던 뮤지션 ‘별’도 이번 쇼에 참여한다. “별도 무대에 출연한다. 하지만 그는 실제 노래하지 않는다. 미리 녹음된 별의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올 것이다.”

양혜규씨가 2001년 베를린 아트포럼에서 전시한 ‘귀빈접대실’.
15분가량 진행될 이 쇼가 끝나면, 이들의 작품은 두달 남짓 계속될 전시장에서 어떻게 보여질까. 찰나의 순간에 사람의 몸에 얹혀 명멸하는 패션과 미술관에 박제처럼 남아 전시되고 저장되는 미술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그들은 “쇼의 ‘흔적’을 보여주겠다”며 대답을 비밀에 부쳤다.

“경계를 넘는 교류로 활력 얻는다”

“우리는 예전엔 동업·협업 하려면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했다. 그때는 아마도 시간이 많아서 함께 머리를 맞대야 뭔가가 나온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이 전시회를 위해 몇달 동안 전화와 이메일로 많은 문제들을 논의했다. 파리에 있든 한국에 있든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든 작업을 진행시키고, 교류한다는 점이다.”

신선한 풀을 찾아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향하는 유목민들은 최대한 짐을 줄여 몸을 가볍게 한다. 그렇다고 이들의 방랑을 즐겁다고만 할 수 있을까. 서상영·양혜규 두 사람은 유목의 낭만성 때문이 아니라, 새 풀을 찾아야 하는 절실함 때문에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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