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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공연- 분단의 통증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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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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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 김선명씨 내세운 영화 <선택>의 홍기선 감독이 20년 만에 다시 본 연극 <한씨연대기>

<태극기 휘날리며>가 떠들썩하게 극장가를 공략하고 있는 요즘, 역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연극 <한씨연대기>(극단 연우무대, 원작 황석영, 각색·연출 김석만, 2월29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가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대학로를 달구고 있다. 지난 시대의 명작들을 다시 보는 ‘연극열전’의 첫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한씨연대기>는 의사 한영덕이란 주인공의 삶을 통해 분단과 전쟁이 개인의 삶을 먼지처럼 무화시켜나가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장기수 김선명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분단의 문제를 발언한 <선택>의 연출가 홍기선 감독이 <한씨연대기>의 감동을 전한다. -편집자

홍기선/ 영화감독

<한씨연대기>의 주인공 한영덕은 거대한 역사의 풍랑 속에 파묻힌 수많은 ‘개인’의 전형이다.
영화 <선택>의 개봉이 끝나고 비디오며 DVD에 관한 뒷마무리로 시간을 허비할 즈음, <한씨연대기> 소식을 들었다. <선택>의 주인공이었던 김중기씨가 나오고(박가 역 등), 안면 있는 김석만 선배(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연출을 한다기에, 좀처럼 ‘기타의 문화생활’에는 틈을 내지 않는 내가 중기씨에게 연락하여 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5공화국에서 <한씨연대기>를 본다는 것은…

연극에 문외한인 내가 ‘연극다운 연극’으로 기억하는 첫 작품은, 20여년 전 대학생 때 이화여대에서 본 <노비문서>(임진택 연출)다. <에쿠우스>나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대학 무대극을 접한 것이 전부인 상태에서, 마당극 <노비문서>가 보여준 새로운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탁 트인 노천광장에서 어깨를 맞대고 앉은 수천명의 젊은 관객들, 횃불이 일렁이는 마당에서 춤과 연기, 노래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열기,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 모든 관객들이 참여하여 펼쳐지던 난장. 당시 공연 뒤풀이는 독재정권에 대한 시위로 자연스럽게 발전했고, 그렇게 80년 봄은 내게 풍물소리와 시위의 함성소리로 남았다. 그 뒤 5월 광주가 있었고, 나는 80년 ‘민주화의 봄’을 짧은 추억으로 간직한 채 군대로 향하는 입영열차를 타야 했다.

2년쯤 지나 복학을 하고 보니, 서울영화집단을 만든 동료, 선배들은 마침 ‘연우무대’가 공연한 <판놀이 아리랑고개>를 영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 나도 자연스럽게 연우무대의 선배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뒤풀이 술자리에서 10년 동안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석만 선배를 만나게 되었고, 술 몇잔과 함께 김석만 선배의 탈춤사위가 펼쳐졌다. 난 춤을 몰랐지만, 당시 석만이 형의 춤 마다마디엔 그 시대의 분노처럼 힘이 넘쳐흘렀다.

78년 창단된 극단 ‘연우무대’는 실험적인 존재였다. 당시 서구극은 번역극 위주였는데, 연우무대는 창작극,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시도하던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그건 80년 이후, 농촌이나 노동현장 등으로 진출을 꾀하던 다른 민족극 연희패들과도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즉, 노동현장에서 연희되는 민족극이 아니라, 민족극을 서구 무대극으로 이전시키는 실험을 하는 극단이었다.

85년 <한씨연대기> 초연 당시 문성근 · 양희경씨 등이 출연했다.
85년 처음 공연된 <한씨연대기>는 이런 연우무대가 기존의 무대극판이나 마당극판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리는 작품이었다. 아직 분단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표현이 조심스럽던 5공화국의 사전검열 시대에 <한씨연대기>의 공연과 관람은, 그 행위 자체가 긴장을 주는 것이었고, 그 긴장은 뜻밖의 성공을 거두게 해주었다. 물론 작품이 탁월했기에 그랬지만.

분단시대 보편적 삶 대변한 한영덕

그리고 20년 뒤, <한씨연대기>가 김석만 선배의 연출로 다시 공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솔직히 궁금해졌다. 20년이란 물리적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가 정치, 사회 환경이나 남북관계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이 시점에서, 이 공연이 당시와 같은 긴장을 유지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분단이란 소재가 이미 많은 장르에서 여러 형식으로 소개되었고, 이미 낡고 구세대적인 소재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는 이 시점에서. 내가 최근에 비전향 장기수를 소재로 만든 영화를 개봉하며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지난 얘기가 아니냐’ ‘한창 장기수들 문제가 언급되던 90년대에 만들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씨연대기> 또한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의구심을 갖고 극장에 앉은 나는 평일인데도 좌석을 꽉 메운 젊은 관객들에 놀랐고, 공연이 시작된 1월 초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거의 좌석이 매진된다는 얘기에 다시 한번 놀랐다. 현실을 직설적으로 다루는 것을 싫어하고, 분단도 코미디 소재의 일부가 돼버린 요즘, 더군다나 이 연극의 10배도 넘는 제작비로 만든 영화 <선택>의 썰렁한 극장 좌석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20년 전의 공연이 커다란 대본의 변화 없이 공연되는데도 관객들이 줄기차게 좌석을 메우는 것에 부러움이 솟기까지 했다.

<한씨연대기>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간략하게 전쟁과 분단으로, 남과 북, 양쪽 사회에서 모두 소외된 삶을 사는 산부인과 의사 한영덕의 인생유전이다. 한영덕처럼 남과 북 사이에 끼어 있는 이같은 인물은 분단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문학작품들에서 여러 번 다뤄져왔다. 하지만 그는 남과 북에 모두 회의를 느끼고 제3국을 선택하는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과도 다르며, 좌도 우도 아닌 중간의 민족주의의 길을 선택하는 <태백산맥>의 김범우와도 또 다르다. 내가 <선택>에서 다룬 인물- 인민군으로 생포돼 통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감옥에서 40여년을 산 주인공 김선명과도 큰 차이가 있다.

이 인물들 모두 전쟁과 분단으로 성처받고 갈등한 것은 같지만, 차이점은 다른 인물들이 자신의 길을 능동적으로 선택한 반면, 한영덕은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남과 북의 사회에서 소외되는, 수동적인 인간이란 점이다.

사실 전자들은 비현실적인 소수의 삶이라면 후자 한영덕은 대중의 보편적 삶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공연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 관객들은 한영덕의 삶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의 아픔을 공감할 것이고, 나이든 관객들은 그동안 말 못하고 속으로만 응어리졌던 자기 삶의 일부분을 반추하고 있지 않을까.

일상에 드리운 분단의 그림자 되새겨

<한씨연대기>의 미덕이라면, 이런 아픔을 특별하지 않은 잔잔한 톤으로 시종일관함으로써 분단은 엄연히 현재에도 진행 중이고, 그 분단으로 인한 상흔이 우리 삶의 어딘가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조용히 얘기하는 데 있다.

세계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은 다 갈 수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다 만날 수 있는 이 세계화 시대에, 반세기가 넘는 기간을 지척에 두고도 부자간에, 부부간에, 형제간에 생이별의 아픔을 아직도 겪고 있는 우리 민족의 현실이 얼마나 낡고 구시대적인 것인가를, 또한 현재진행형의 아픔인가를, 20년 만에 공연되는 <한씨연대기>는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결코 잊혀지지 않을 음색으로 촘촘히 들려준다. 연극 속 대사처럼 분단은 ‘정지된 폐허’로 남아 있다.

홍기선/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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