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생물체들이 46억년 지구 역사의 증인 노릇을 하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수백만년 동안 마치 압력솥에서 요동을 치며 조리된 것처럼 지진과 변이 속에서 매몰과 노출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더러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구 역사의 85%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암석들은 매몰되어 비틀렸다가 접히는 과정에서 새로운 물체를 공급받기도 한다. 이들은 순식간에 70km 아래의 땅속으로 가라앉아 700도 안팎의 온도에서 구워지는 ‘고통’을 겪기 일쑤였다. 이렇게 역동적인 지구의 활동을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운석과 충돌해 바다가 들끓고 지구의 대기가 불타는 듯한 수증기가 가득했던 험악한 시기에 출현한 생명체들. 원시 생명체들은 순수 탄소물질인 흑연의 검은 얼룩 형태로 이뤄졌다. 분자 화석이라 불리며 27억년 이상된 암석에 ‘묻어’ 있는 이들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전자빔이 물체 표면을 체계적으로 이동하며 조사하는 주사형 전자현미경(SEM)이 있어야만 겨우 실체에 다가설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화석은 고생물의 유체나 배설물들이 바위나 돌멩이처럼 굳어진 것을 일컫는다. 이들이 수천년 뒤 인간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일단 생물체가 썩지 않아야만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화석으로 남을 수 있다. 대개의 화석은 물의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바다와 호수 밑바닥 같은 곳에서 발견된다. 그런 곳이라야만 박테리아의 침입이 자유롭지 않고 진흙 같은 것으로 덮여 산소가 끊겨 화석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막이나 건조한 지대도 모래강풍이 불면서 사체를 먹는 동물들과 박테리아가 다가서기 쉽지 않기에 화석이 곧잘 발견된다. 탄산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호수 주위에서는 가스에 중독된 박쥐 같은 동물이 화석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실제로 카메룬의 니오수 호수는 1986년에 폭발이 이뤄지면서 공기보다 무거운 탄산가스를 내뿜어 사람과 가축을 일거에 몰살하기도 했다. 시베리아 같은 동토도 화석 생성에 유리한 환경이다. 이곳의 화석은 자연적으로 냉동보관이 이뤄져 멸종동물을 복원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화석으로 남은 생명의 타임캡슐은 우리가 모르는 과거의 흔적일 뿐일까. 화석에는 지구가 탄생한 뒤 상상할 수조차 없는 오랜 시간 동안 발생했던 주요 사건들의 단서가 담겨 있다. 거기에는 생물체의 구체적 모습뿐만 아니라 생태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숨겨져 있게 마련이다. 제주도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만 해도 들린 뒤꿈치나 중간 호(아치) 등을 살피면 발자국 주인공의 식성이나 크기, 걸음 속도 등을 짐작할 수 있다. 배설물에도 주인공의 식성이나 내장을 비롯해 생존 당시의 환경과 생태 등이 나타난다.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본부 장순근 책임연구원은 화석이 잃어버린 시간을 메워주는 구실을 한다고 밝혔다. “화석을 통해 먹이를 추적하며 기후와 환경을 유추할 수 있다. 많은 뼈들이 뒤죽박죽된 채 화석으로 남았다면 당시의 천재지변을 생각할 수 있다. 공룡의 경우 화석 연구를 통해 종류에 따라 거북이나 악어와는 달리 새끼를 돌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수백만년 오차 수두룩… 지구의 모래시계들 최근 지구 역사의 시간표를 작성하려는 거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리스어로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Chronos)라는 이름으로 미국지질조사국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화석을 통해 과거의 정확한 시간표를 작성해 지구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해석하고 더워지는 지구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이바지할 예정이다. 예컨대 기후변화의 원인과 이것이 생물의 진화와 멸종 등에 미친 영향에 관한 논쟁의 결론을 내리려는 것이다. 현재 화석을 기준으로 고생대(바다에 서식하는 무척추동물의 전성기), 중생대(공룡과 익룡이 활약하며 시조새와 포유류의 조상 출현), 신생대(포유류가 진화하고 새와 풀 발달, 인류 출현) 등으로 구분한 지질시대는 해상도의 오차 범위가 지구 탄생 뒤 2%가량인 수백만년의 오차를 보인다. 만일 크로노스 프로젝트가 2015년까지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면 불확실한 시기를 해상도 0.1% 범위인 수천년 단위로 낮출 것으로 예측된다. 오랫동안 지구는 녹고 식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마치 모래시계를 뒤집듯이 결집과 해체를 반복한 것이다. 이때 모래시계를 빠져나온, 붕괴되는 속도가 일정한 방사성 원소를 살피면 물질의 생성 시기를 추적하는 게 가능하다.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는 소량으로 존재하는 방사능 물질 탄소 14(반감기 5730년)를 주로 이용한다. 공기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동식물이 죽으면 수억개의 탄소 12는 그대로 있지만 하나의 방사성 원소인 탄소 14의 붕괴가 시작된다. 화석에 있는 탄소 12와 14의 비율을 추적해 화석의 연대를 추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은 3만5천년 이상된 것에는 적용할 수 없기에 아르곤 40, 39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여기에 해저의 주기적인 자기변환를 파악하거나 화산의 용암과 화산재의 시기, 세포의 분자시계 등을 이용해 연대 측정 등을 이용해 연대 측정의 정밀도를 높인다. 그럼에도 46억년의 장막을 걷어내지 않은 지구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 초기 인류의 흔적을 밝혀내는 것마저도 아직까지는 힘겨운 현실이다.< 인간과 유물의 연대 측정 방법 > @ 역사기록(지금부터 약 BC3천년까지) @ 연륜 연대측정법(나이테 연대 측정법)(지금부터 BC8천년까지 ) @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서기 1500년경부터 4만년 전까지) @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법(25만년 전부터 생명의 탄생까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