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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실미도> vs <태극기 휘날리며>- 남성과 가족, 광기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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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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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관객 1천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실미도>. 개봉 당일부터 32만4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위력을 떨치고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 한국 영화사에 기록적인 대박을 터뜨리는 두 ‘큰손’, 강우석·강제규 감독이 내놓은 두 작품을 놓고 누가 흥행 경주에서 승리할지 호기심 어린 눈길이 쏟아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대작이라는 점에서, 또 군인이 등장하는 ‘남성영화’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한데 묶여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으나, 사실 두 영화는 무척 다른 영화다.

<태극기 휘날리며>
‘남성영화’?

<실미도>엔 성폭력을 당하는 여교사 외에는 별다른 여성 등장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근육질의 남성들이 치고받고, 달리고, 뭉친다. 탈취한 버스 안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기까지 684부대원들을 끈끈하게 묶어주는 힘은 ‘조직’에 대한 신념 같은 것인데, 이들은 ‘반사회적인 조폭’ ‘빨갱이를 혐오하는 국민’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군인’ ‘국가에 배신당한 부대원’ 등 여러 양상으로 변주되면서도 의리와 믿음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는다. 국가주의의 희생양인 주인공들이 어느 결에 ‘영웅’으로 둔갑하는 과정은 좌충우돌형 인간들이 쌓아가는 ‘남자 연대’에 힘입은 것이다.

한편, <태극기…>의 주인공 진태와 진석은 남성이지만, 형이 동생에게 보이는 애정의 내용을 보면 어린 동생을 알뜰살뜰 보살피는 누나와도 흡사하다. <태극기…>는 선 굵은 전쟁영화지만 속을 뜯어보면 남성영화보다 ‘가족영화’에 가깝다.


<실미도>
‘광기’

<태극기…> 시사회 직후 ‘장동건이 갑자기 설경구로 변하더라’는 평이 나돌았는데, 과연 두밀령전투에서 장동건이 흰 눈자위를 허옇게 드러내고 거친 숨을 내쉬는 장면은 갈수록 강렬해지는 그의 연기력을 느끼게 한다. 연인과 동생을 다 잃었다는 절망에 살인광이 돼가는 모습은 개인의 광기라기보다는 전쟁의 광기를 재현하는 분신이다.

설경구 역시 <실미도>에서도 특유의 광기 연기를 보여줬다. 그런데 광기가 분출되는 지점은 빨갱이 아버지를 둔 죄로 받았던 능멸의 기억과 동시에 그 세월을 반전시켜보겠다는 목표의식 사이의 균열이다. 빨갱이 자식이라고 욕하는 기간병을 사납게 족치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장면은, 냉전시대 반공주의의 섬뜩한 광기 대신, 거칠고 좌충우돌하는 무의식의 발작처럼 느껴진다. <실미도>에서 역사가 뒷배경으로 물러나고 인물이 튀는 것은 이런 맥락에 닿아 있다고 보인다.

강우석 감독(왼쪽)과 강제규 감독
‘두 강 감독’

‘코미디 감독’으로 성장해온 강우석 감독은 스펙터클보다는 직설적인 드라마에 치중해왔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에서 보듯, ‘새로운 볼거리’와 멜로를 효과적으로 섞어내는 강제규 감독과 달리, 강우석 감독은 스스로도 “난 멜로는 못한다”고 말해왔다. 대신, 충무로의 이름난 독설가이기도 한 강우석 감독은 코미디에서도 지식인에 대한 비판, 상부 기득권층에 대한 냉소 같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내되,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막지하게 내지르기를 택한다. 두 감독의 차이점은 이번 두 작품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강우석 감독이 잊혀진 미제 사건을 소재로 택해 그를 “촌스럽고 솔직한 블록버스터”로 표현했다면, 강제규 감독은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전쟁을 ‘때깔나는 영상’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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