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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리는 한국전쟁을 아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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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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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대립의 그늘에 가려진 전쟁의 실체… 전쟁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남북 민중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태극기 휘날리며>가 아닌 ‘붉은기 휘날리며’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감독은 브루스 커밍스가 아니었을까?”

최근 <월간조선> 조갑제 대표이사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다.

정치적 판단이 한참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화가 나겠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는 ‘자유대한 수호’(남쪽)냐 ‘조국해방전쟁’(북쪽)이냐는 이념대립의 도식과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라는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 연구자들은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기원·성격·전개과정 등을 중심으로 ‘남침이냐 북침이냐’ ‘내전이냐 국제전이냐’ 같은 전쟁 성격 규정이나 ‘전투로서 전쟁’에 관심을 쏟았다. 이에 비해 한국전쟁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전쟁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남쪽으로 피난가려는 사람들이 흥남항 부두를 가득 메우고 있다(위). 전쟁 당시 국군이 북쪽 지역에 공중 살포한 전단.

전쟁 성격에 매몰, 전쟁 영향 연구 미진

1980년대 초반까지 연구자들은 전통주의 입장에서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느냐’에 매달려 옛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남침을 강조했다. 80년대 중반 이후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가 중요하다’는 수정주의 해석이 힘을 얻기도 했다. 이 논의의 물꼬를 튼 게 미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이었다. 하지만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는 냉전의 기원을 찾는 서구 국제정치학자들의 분석방법의 차이이지 전쟁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우리 민족의 시각은 아니다.

60대 이상은 한국전쟁을 몸으로 겪어서 잘 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강제규 감독은 “전쟁이란 극한의 상황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우리가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그 중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존재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1950년 여름을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보낸 소설 <오발탄>의 작가 이범선씨는 회고록에서 “아무리 우리가 동란 현장에 있었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의 가슴 면적만큼의 사실밖에는 확실히 증언할 수 없다”고 전쟁 체험의 한계를 설명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전쟁의 규모나 격렬도를 측정하는 사망자 수에서 1816∼1965년의 전세계 전쟁 50개 중에서 2차 세계대전과 1차 세계대전 다음으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쟁 기간 중 남북 군인이 191만3천명이 죽거나 다쳤고, 280만명의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태극기를 휘날리며>에는 이 격렬한 전쟁에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숨진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이 생생하게 담겼다.

이제는 남북화해의 출발선에 서야

예를 들어 전쟁 전 보리쌀 준다고 해서 얼떨결에 전향한 좌익 모임인 ‘보도연맹’에 가입한 양민이 전쟁 와중에 빨갱이로 몰려 반공청년단에 총살당하고, 북한 지역에서 후퇴하던 인민군이 우익 성향의 마을 사람들을 집단 학살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전쟁 때 남북 군대가 한반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쌍방이 번갈아 학살을 벌였다. 하지만 아직도 남쪽에서는 좌익이 저지른 학살만, 북쪽에서는 우익과 국군·미군이 자행한 학살만 강조하고 있다. 리영희 교수의 주장처럼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는 인식 전환이 남북화해의 출발점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전쟁과 사회>에서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남북한의 지배 집단이었고, 최대 피해자는 참전했다가 죽고 다친 군인과 가족, 이산가족, 피학살 민간인, 장기수, 미군범죄의 피해자, 기아선상의 북한 주민,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인해 응당 누려야 할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대다수 남한 민중들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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